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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화~금_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5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불편한 아름다움」아이러니의 극치 – 전쟁과 여성 ● 무엇인가 은폐되어야 한다면 그에 대한 환타지는 커지게 마련이다. 억압된 것을 해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최대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전쟁은 인간의 부조리함과 환타지가 최적화된 영역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괴가 자행되고, 두려워하면서도 잔인함이 행해지는 전쟁은 아이러니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쟁 속 여성의 존재는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성은 전쟁에서 보호되어야 할 연약한 존재이자 치유를 돕는 위안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희생양으로 파괴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것이 이미 익숙한 내용이라는 느낌자체가 이 아이러니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 임안나의 작업은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2011년 선보였던「Restructure of Climax」와「Romantic soldiers」시리즈는 전쟁의 아이러니함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었고, 그 연장선에서 전개된 또 하나의 갈래가 바로 여성과 전쟁의 아이러니에 주목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꽃, 거울, 가면, 새장, 빨간구두 등 여성성을 드러내는 대상을 등장시킨 작품들로 이뤄진다. 임안나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성이란 파괴, 거칠음과 반대되는 보호, 모성애, 치유, 부드러움 등을 포괄한다. ● 가면은 자신의 육체내지 사회적 성취욕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받고, 진정한 자아를 가려야만 했던 여성의 모습을 상기시키거나, 전쟁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여성이 성적 노예가 되어야 했던 이면을 은폐하는 도구로 비유될 수 있다. 가면으로 보장되는 익명성은 여성개개인의 상처를 가려주는 보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임안나의 화면에서 가면은 여성의 부드러움과 파괴되기 쉬운 연약함을 상징하는 깃털과 함께 구성되는데 그 속에 병정들이 나타남으로써 이 오브제들이 보호받는 것 같으면서도 파괴당하는 것 같기도 한 분위기가 아이러니한 느낌을 유발한다.
하얀 새장이 깃털 위에 알을 품고 있는 작품에서 또한 새장 안과 바깥에 날아다니는 군용기들로 인해 대상물이 보호되는 것인지 파괴되는 것인지 모호하고, 파괴적 내용을 부드럽고 정적으로 묘사하는 점이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거울과 창 시리즈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공간의 분위기는 아름다운 여성이 거울을 보러 다가올 것만 같은 꿈결 같은 상황을 연상시키는데 실상 파괴적 성향의 전투기가 거울앞을 차지하고 있다. 총을 쏘는 순간 거울이 깨지면서 자신의 모습도 깨져버린다는 점을 상상하면 결국 상대와 내가 서로 겨누는 총 앞에 함께 파괴되는 전쟁의 은폐된 진실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명쾌한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 꽃은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영혼에 위안을 주지만 쉽게 시들고 죽는다는 점에서 전쟁 속 여성을 비유하는 대상으로 등장했다. 임안나의 작품에서 묘사된 꽃들은 모두 맑고 찬란한(glorious) 미의 향기를 지녔다. 역시 함부로 만지기엔 그 영롱한 아름다움이 쉽게 훼손될 듯 한데 누구도 그것을 원치 않을 것만 같다. 병정들은 꽃의 잎사귀 하나도 다치지 않게 지켜줄 것 같고, 전체적인 화면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차분하다. 하지만 곧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격을 상상하면 무참히 깨져버릴 모든 것에 허무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 이와 같이 작품의 요소 요소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내용적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들은 극도의 미와 추(beauty and ugliness)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아이러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영상은 미 인데 그 이면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임안나 작품에서의 아이러니는 화면 구성의 대비감을 통해서 한층 더 부각된다. 대상을 지키는 병정들이 도리어 턱없이 작은 형상을 함으로써 누가 누구를 지키는 것인지 모순되어 보일 뿐 아니라 실제의 생생한 사물과 공간으로 인해 현실감이 있으면서도 한편 몽환적인 영화 속 환타지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을 주는 점도 아이러니다. 사물 크기의 대비와 더불어 색감의 대비는 환타지적 효과를 배가시키는데 특히, 가면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형광 빛은 대비효과를 흥미롭게 연출한 예이다. ● 임안나의 작품에서 아이러니한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작품을 유희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방법이며 그것을 찾는 동안 우리는 그 속에 이미 빠져든다. 아이러니에 중독된(Irony- addicted) 순간!이다. ● 임안나의 작품이 주는 유희의 스펙트럼은 넓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금지된 욕망 내지 부조리에 빠져서 즐겨보기도 하고 내 자신을 점검해보기도 하며 비평적 시각도 가져볼 수 있다. 작품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을 철저히 누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 신민
아이러니, 영원한 한계이자 일탈 ●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죽음을 얻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종말을 향한다는 최고의 아이러니(irony)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생일은 자신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인 동시에 죽음에 더 가까워졌음을 확인하는 날이다. 공포와 절망에 함몰될 즈음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있기에 생명도 빛을 발한다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준다. 인간은 이내 자신의 종말을 망각하고 욕망에 사로잡힌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를 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더욱 더 욕망한다. 과도한 욕망은 허상(虛像)을 만들어내고 인간은 신기루를 잡기 위해 발버둥 친다. 허상(虛想)에 매몰된 인간은 지나친 자존감에 휩싸여 궤변을 늘어놓고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또 다른 아이러니를 생산한다. 인간은 모두 아이러니에 중독된(irony addicted) 것처럼 보인다. 태생적으로 아이러니한 존재가 만든 세상이 부조리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 여기, 지독한 아이러니의 제국을 창조하는 작가가 있다. 임안나는 아이러니에 중독된 세상이라는 대(大)주제 안에서 아이러니가 극대화되고 중첩되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는지 프라 모델(plastic model)이 등장하는 역할극을 통해 보여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이 둘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전쟁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이고 극단적인 아이러니로 규정하고 역할극의 소(小)주제로 채택한다. 그리고 이 모두가 인간 욕망의 허구성(虛構性)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극도로 정제된 인공적인 미장센(Mise-en-Scène)을 연출한다. ● 임안나가 아이러니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소재인 인형-프라 모델-, 거울, 꽃, 가면은 그 자체로 모순성을 내포하는 것들이다. 인형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생명이 없고, 거울은 마주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반사시켜 보여주지만 가상(假象)을 제공할 뿐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지만 이내 시들어 버려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물이며, 가면은 본질을 은폐시키는 수단인 동시에 그것을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 이번 역할극의 주인공인 프라 모델들은 「마지막 장면 Last Scene」과 「페인트볼 Paintball」 연작에서 꽃과 가면을 배경으로 전쟁 중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사진에서는 공격하거나 전진하는 자세이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방어하거나 숨는 자세이다. 전쟁은 공격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를 침입하고 수탈하는 것도 전쟁이요, 자신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방어하는 것도 전쟁이다. 전쟁에는 자신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다른 인간들의 자유와 존엄성을 파괴해야 한다는 모순이 숨겨져 있다. 또한 전쟁은 인간의 근본적 아이러니-삶과 죽음-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잔혹한 사건이다. 전쟁에는 생존의 욕구와 죽음의 운명이 공존한다. 그 속에서 인류는 인간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사람들과 생존 과정에서 무기력함을 경험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을 향한 신뢰의 가능성이 파괴되어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러한 악행을 벌일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임안나는 최근에 제작된 휴머니즘(humanism) 전쟁 영화들을 예로 든다. 전쟁의 현장 깊숙이 들어가면 어디에도 절대적인 악(惡)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쟁은 평범한(banal) 주체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이 작가의 논리이다. 단순한 선악이분법으로 전쟁의 주체와 객체를 획일화시켜서는 안 되며 보다 섬세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 따르면 전쟁에 가담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본래부터 악하지 않으며 도덕적 의미를 결여하지도 않았고 악마, 광신자, 사디스트(sadist)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양심이 집단적으로 실종된 상황에서 자신의 행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반성과 사유(thinking)를 포기했을 뿐이다. 사유하는 존재인 인간이 사유를 포기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전쟁과 같은 거대한 악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사회 구조가 자신에게 주입하는 당위성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비판적인 검토를 시행하지 않은 채 무의미하게 동조하거나 이를 방관하는 것이다. 자신의 악행을 악행으로 보지 않고 이행해야 하는 의무와 동일시하는 태도는 세계를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수용할 뿐, 행위의 영향력 안에 있는 타인의 관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전쟁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비판하면서도 순응한다. 자신의 역할과 자리에서 이탈할 능력과 용기가 부재하는 것이다. ● 바로 이처럼 무책임하고 무비판적인 악행의 주체를 상징하기 위해 임안나는 프라 모델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프라 모델은 외부에서 동력이 가해지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는 정지된 물체이다. 인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 존재와 의식의 관계를 비유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운명에 좌우되는 수동적 존재, 영혼이 없는 존재, 기계적인 대상을 비유해왔다. 자력으로는 공격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무능한 군대인 프라 모델들은 자신만의 지평에 갇혀 타성적인 삶을 영위하는 전쟁의 가해자들을 상징하기에 훌륭하다. ● 전쟁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이다. 적을 향하는 것으로 여겼던 창(spear)이 사실은 나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는 비극적 진실은 「모놀로그 Monologue」 연작에서 확인된다. 이 연작에서 탱크와 비행기 프라 모델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조준하고 있거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포(砲)가 발사되면 부서지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결국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자로 귀결되는 1인 2역의 비극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거울을 바라보는 프라 모델들은 나르시스(Narcissus)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연못에 빠져 죽었듯이 전쟁의 주동자가 자신의 모습에 취해 스스로 파멸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거울을 마주보는 상황은 낯익은 풍경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여성 누드화의 스테레오 타입(stereo type) 중 하나이다. 남성 미술가와 감상자들은 자신들의 관음증적인 시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감상하고 그것에 취해 있는 상황을 연출했고, 여성을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진 허황된 존재로 규정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허상을 쫓은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었다. ● 전쟁의 허상은 「페인트볼」 연작에서도 찾아진다. 이 연작에 등장하는 가면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보호하거나,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기 위해 얼굴에 덧씌우는 도구이다. 임안나는 페르소나(persona)를 상징하기 위해 가면을 사용한다. 그것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사유하지 않는 껍데기뿐인 사람들을 암시한다. 또한 영웅주의와 자아 도취, 허황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생산된 아이러니들을 은폐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가면은 전쟁이 소수의 권력에 의해 연출된 가면무도회이자 연극임을 암시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가면이 이렇게 은폐의 부정적 의미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가면은 은폐와 보호라는 양가성을 갖는다. 가면은 획일화된 가치 체계에 맞서서 개인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보호 장치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작가는 전쟁의 상흔이 가신 뒤에는 언제나 가면 뒤에 숨겨졌던 선(善)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악이 평범한 만큼 선도 평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전쟁은 여성에게도 정복의 대상이자 보호의 대상, 남성성을 자극하여 참전을 유도하는 섹스 심벌(sex symbol)이자 전쟁의 상흔을 치유시키는 뮤즈(muse)라는 모순된 페르소나를 부여한다. 임안나는 전쟁과 가부장제의 주인공으로서 존재해온 남성을 재현할 때 프라 모델로 대체했듯이 여성 역시 꽃이나 노즈 아트(nose art)의 핀-업 걸(pin-up girl) 이미지로 대체한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언제나 지배되는 자연이었고 생산하는 모성이었으며 보편적 아름다움의 상징인 동시에 쉽게 시드는 허망한 꽃이었다. 그녀들은 오직 남성에 의해 재현된 허구적 이미지(image)로서만 존재해 왔다. ● 사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육체는 언제나 전쟁터였다. 여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탈의 대상이자 안식의 도구라는 아이러니에 지배받아왔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침략하고, 지배하고, 무력화시키는 데에 앞장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성들은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으며 여성에 의해 양육되었다. 여성은 주체에게 생명을 선사하는 동시에 죽음까지 부여한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이지만 남성과는 다른 인간이다. 이러한 모순적이고 불명확한 속성 때문에 여성은 인간사에 있어 최고의 역설을 제공하는 미스터리(mystery)한 존재가 되었다. 이에 남성은 여성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업신여기고, 숭배하는 동시에 혐오하며, 지배하고자 하는 동시에 치유 받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허무한 꿈이며 신기루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욕망의 허상에 불과하다. ● 이즈음에서 우리는 작가가 인간사를 둘러싼 아이러니에 관한 비판이나 해결책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작가는 그저 세계를 축소시켜 보여주는 연극 무대를 연출할 뿐이며 관람자가 연극에 몰입하든, 거리를 두고 관찰하든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러니가 가진 두 가지 의미로 설명 가능하다. 첫째, 아이러니는 모순이나 부조화의 상황을 뜻한다. 둘째, 그것은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 의도를 감추고 그것과 반대되는 의미를 말하는 수사법, 그 안에 중요한 진리를 함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반어법을 뜻한다. 임안나의 작업에는 두 가지 의미의 아이러니가 함께 한다. 즉 아이러니로 가득 찬 세계상, 그러한 세계상의 전복을 꿈꾸는 환상적 일탈로서의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것이다. 작가는 소크라테스(Socrates)가 대화 상대자의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기 위해 아이러니를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 정답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저 모순적인 세상을 인형극으로 보여주어 관람자 스스로 모순의 세계상을 깨닫고 해답을 끌어내도록 유도할 뿐이다. ● 아이러니한 세상을 아이러니의 수사법으로 담아내는 임안나는 인간의 대체물들을 인공적인 공간에 배치하고 그들에게 가상의 전쟁이라는 역할극을 맡김으로써 최종적으로 상상력이 발휘되는 판타지(fantasy)의 시공간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불가해한 것도 상상의 세계에서는 용납 가능하기에 우리는 편중되어 있는 관점을 수정하고 판단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들을 고찰할 수 있게 된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세상을 경험하는 것,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용이해진다. 타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위치에 서 보고 그들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는 포용의 자세는 모순과 부조리를 넘어서는 첫 걸음이 된다. ● 오늘도 아이러니에 중독된 인간들은 살기 위해 공격하고 사랑하며, 저항하고 용서한다. 수많은 개인들과 수많은 집단들이 만들어내는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기억과 망각, 상처와 치유 같은 역설의 이중주를 통해 역사는 건조(建造)되고 파괴되며 재구축된다. ■ 이문정
Vol.20120531d | 임안나展 / LIMANNA / 林安羅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