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혁용展 / UMHYUKYONG / 嚴赫鎔 / sculpture   2012_0523 ▶ 2012_0606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110×190×60cm

초대일시 / 2012_0523_수요일_06:00pm_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초대일시 / 2012_0531_목요일_06:30pm_우진문화공간

2012_0523 ▶ 2012_0528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JEONBUK PROVINCE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실 Tel. +82.2.720.4363 www.jbartmuse.go.kr

2012_0531 ▶ 2012_0606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우진문화공간 WOOJIN CULTURE FOUNDATI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2동 1062-3번지 1층 전시실 Tel. +82.63.272.7223 www.woojin.or.kr woojin7223.blog.me

직지(直指),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 ● 2011년 11월 25일 국립중앙박물관에는 故 박병선 박사의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리고 외규장각 의궤의 국내 반환에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고인(故人)이 찾아낸 소중한 의궤 297권은 지난해 4월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대여'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지만 145년만의 귀환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 1999년에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인 『라이프誌』에서는 지난 1천 년 동안 있었던 사건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대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1위를 한 것이 놀랍게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 산업혁명이니 종교혁명이니 하는 그야말로 역사의 일획을 그었던 커다란 사건들을 모두 뒤로하고 금속활자 발명이 이렇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된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110×190×60cm_부분

1997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G7 회담에서도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가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고려 공민왕 시기의 조계대 선사였던 백운 경한(1287~1374)에 의해 1372년에 저술되었고 고려 우왕 시기의 1377년에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 되었던 직지(直指)는 이처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서 서양의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독일의 구텐베르그 금속활자 인쇄보다도 약 70여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필자가 서두에서 故박병선 박사와 '직지'에 대해 언급한 것은 바로 조각가 엄혁용의 이번 전시가 '직지'를 직접적인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고 주제 역시 다름 아닌, 『직지(直指),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 이기 때문이다. 엄혁용의 전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들이 출품이 될지 항상 궁금해 한다. 왜냐하면 1992년 등단 이후, 작가 엄혁용은 작품제작에 있어서 끊임없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오고 있고 이런 화와 시도들은 단순히 재료와 기법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료와 기법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설치방법, 작품의 형식과 내용, 작품의 의미와 주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고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측면이 강한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들은 '직지'라는 전통적인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지라는 재료와 상감기법 등 전통적인 기법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엄혁용의 작품은 사물의 외형적인 특징보다는 물성자체에 대한 탐구, 다시 말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성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이번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공통분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엄혁용이 자신의 작품에서 물성 그 자체만을 탐구하는 것에 최종적인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처럼, 단순히 예술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과 실용성의 조화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한다.

엄혁용_직지_나무에 한지,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265×70×65cm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190×110×60cm

조각가 엄혁용이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서 추구했던 주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만의 상상력과 철학을 담아내는 주제였을 뿐만이 아니라 아울러 동시대 우리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거나 그 당시 이슈가 되었던 현실적인 화두(話頭) 역시 담아내는 것들이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들이 작가만의 개인적인 관심과 상상력을 통하여 제작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故 박병선 박사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역만리(異域萬里) 머나먼 타국에서 영원히 묻힐 뻔했던 '직지의 영혼'을 작가가 오늘의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화두로 전환될 수 있다. 작가는 독창적이고 우수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헌정(獻呈)과도 같은 작품들을 이번 전시를 통하여 암시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작품들은 故 박병선 박사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표시를 담고 있는, 말하자면 오마쥬(hommage)로서의 성격 역시 강하다. 따라서 자연성을 그대로 살린 나무 위에 직지를 표현하고 있는 이번 『직지(直指),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에서 작가는 직지를 저술하였던 고려시대의 백운 경한선사가 그랬던 것처럼, 천년(千年)이라는 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직지'를 오늘의 생명력과 호흡으로 되살리고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직지를 저술하였던 백운 경한선사와 직지의 소중한 의미를 발굴해낸 故 박병선 박사, 그리고 이것을 새로운 미감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작가 엄혁용은 '직지'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215×150×65cm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275×200×150cm

작품의 표현적인 면으로 눈을 돌려보자. 자연(自然)을 상징하고 있는 나무와 그 나무로부터 파생된 한지는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매체(media)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무와 한지의 결합을 통해 표상화된 직지의 새로운 형상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간결하면서도 투박한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느낌은 나무와 한지의 인위적인 결합이 아닌 '상감기법'이라는 전통기법을 현대적인 조형감각으로 승화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결합 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만남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은 투박하면서도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스러움 역시 지니고 있다. 매끈하게 잘 연마되고 다듬어진 세련미는 없지만 자연스러움이 은은하게 배어나오고 있다. 인간적인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마치 우리네 고향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장승이나 당산나무, 혹은 서낭당의 그것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엄혁용_직지_나무에 우레탄, 먹물, 아크릴채색_150×310×70cm_부분

이런 느낌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 작품들이 과거의 전통을 현대적인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해 표현해낸 예술작품이자 '직지'와 故 박병선 박사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제의적(祭儀的)인 성격과 제의적인 가치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번 작품들은 결과물로서 작품자체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작품들을 다시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이처럼 작가 엄혁용은 '직지'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낡은 책 속에서 미래를 발견하 듯이, 작가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고난과 수난을 겪었던 직지는 엄혁용의 작품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고 있다. ■ 이태호

Vol.20120528a | 엄혁용展 / UMHYUKYONG / 嚴赫鎔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