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

김호석展 / KIMHOSUK / 金鎬䄷 / painting   2012_0523 ▶ 2012_0605

김호석_법정스님2_139×73cm_2012

초대일시 / 2012_0523_수요일_04:00pm

주최,기획 / 김호석_수묵화전 추진위원회 후원,협찬 / 솔출판사_스페이스 신정_공아트스페이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0.1144 www.gongartspace.com

웃다 그리고 깨다1. 현실의 골계(滑稽)와 인간군상의 고투(苦鬪) 김호석은 한국 화단의 수묵(水墨) 인물화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성취로 남다른 주목을 받는 작가입니다. 이러한 주목은 그의 작가적 역량과 함께 전통과 정체성, 정치적 환경과 사회적 힘의 긴장, 개인과 집단, 문화적 연관과 인간실존의 다양한 모순에 이르기까지 그가 관심을 갖는 주제의 요소가 사회적으로 예리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적인 어떤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속에 연관된 정체성의 정치학을 말하려는 듯한 김호석의 작품은 정체성의 보존과 새로운 창조 그리고 그것이 삶에 근거한 어떤 것이 되기 위한 회화이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김호석은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통적인 한국 회화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이 느낀다. 하지만 또한 나는 그 전통을 사람들의 삶에 근거한 것으로 만들 책임도 갖고 있다." ● 김호석의 책임의식은 그의 가계에서 근거한 전통, 즉 항일유학자인 고조부의 순절(殉節)과 몰락한 유학자이자 가난한 농촌의 서당 훈장, 그리고 농사꾼으로 생을 일관한 그의 조부에게서 받은 정신적 유산에서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산은 민족적인 자주의식과 선비가 가진 정신의 기개가 어우러져 화가 김호석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그러한 정신과 전통을 보존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의식하에 전통에 대한 존중과 그 전통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화가로서의 모색이 그의 인물화에 나타나 있고 그것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적 삶에 근거한 어떤 것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김호석이 표현하는 인간의 모습은 인물과 시대의 다양한 모순과 긴장이 부딪치는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물을 통한 역설과 풍자, 반어, 모순, 그리고 역풍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순정과 배반이 함께 하는 비루한 현실의 골계(滑稽), 실로 인간군상의 고투(苦鬪)라고 표현해야할 모습들입니다.

김호석_물질1_95×190cm_2009

2. 깨어진 태양, 선비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 김호석과 대화하던 중 가장 독특하게 생각되었던 말이 '태양이 빠개졌다'는 표현입니다. '빠개졌다', '깨지다' 혹은 '무엇이 크게 어긋나고 잘못되었다'는 이 말은 '깨다'라는 말의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판을 깨다'같은 파괴적인 뜻과 '잠을 깨다'처럼 건설적인 뜻이 함께 쓰이는 말입니다. 부정과 긍정, 파괴와 건설이 함께 하는 자리가 '깨다'입니다. 이 '깨어진' 자리, 빠개진 태양이 백안시 된 눈으로서 선비로 나타난 작품이 「빛 1」 그리고 「빛 2」입니다. 「빛 1」에서는 정신의 자리가 사그라들 듯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고인의 초상은 파천황(破天荒)의 상황을 맞아 먹의 얼룩이 한쪽 뺨을 스치며 백안(白眼)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다른 한쪽의 고요하고 단정한 눈동자와 부드러운 듯 굳게 다문 입술, 한 올 한 올 예리한 수염과 군더더기 없는 옷의 자태가 결백한 인물의 기질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빛 2」는 전체적으로 변한 흙빛의 얼굴에서 극단적인 절망과 분노를 나타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두 눈의 백안(白眼)상태는 오로지 정신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명징(明澄)한 하늘과 흰 도포가 순결한 정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흰 도포와 어울린 옷주름입니다. 강고한 선으로 그어진 칼날같은 필선의 힘이 인물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먹墨」에서는 정신의 부재와 훼손을 지워진 머리부분으로 표현하면서 이 결의에 찬 인물의 얼굴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두 눈은 한쪽은 짙게 그리고 한 쪽은 옅게 그려져 있고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강력한 집중을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불퇴전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수염은 꼬은 상태로 있으며 두 손은 굳게 쥔 채 무릎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굵고 대담한 먹선으로 옷주름을 표현하면서 풍채와 위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법法」에서는 「먹墨」에서 보였던 부재와 훼손이 더욱 극단화되어 얼굴은 거의 가려지고 빈 공간으로 강렬한 눈동자만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선비의 말은 법法과 같고 그의 행동은 초연하며 일체의 주저함이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 강력한 정신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옷 주름의 묘사와 번짐, 그리고 손과 발의 세부묘사를 치밀하게 하였습니다. ● 「빛 1, 2」, 「먹默」, 「법法」, 등에서 보이는 상황은 등에 화살을 맞은 정신성의 인물과 그 정신적 결기를 작품 속에 표현한 것으로 '태양이 빠개지는' 상황에 직면한 정신의 시차(時差)에 관한 문제입니다. 고인과 나와는 정신적인 시차(時差)가 없었으나 그 파국은 그것의 깨짐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정체성의 훼손이 화가의 작업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김호석의 대표작 「황희정승(1988)」에 표현된 네 개의 눈은 과거와 현재의 눈이 시차없이 바라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눈, 청백(淸白)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현재를 직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청백의 눈은 백안으로 바뀌는 파국을 맞았습니다. 이 파국에 직면하여 길을 묻고 있는 것이 선승초상입니다.

김호석_빛2_198×96cm_2012

3. 선사(禪師)에게 길을 묻다. ● 김호석은 이러한 정신의 깨짐을 시대를 가로질렀던 선사(禪師)들의 영정을 그리면서 이겨내고자 하였습니다. 먹을 쓰는 인물화가로서 맑고 고결한 인물의 초상을 통해 그 정신의 감응과 사조(寫照)로서 위안을 삼고자 한 것입니다. 「법정스님 초상」은 조선 초상화가 가지는 절제된 필선과 맑고 은은한 색채, 단아한 인물상이 가지는 고고한 긴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고 기법과 재료에서 전통을 복구하고 새로운 초상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툭 튀어나온 눈두덩과 눈썹, 잔잔한 눈매의 진지한 힘은 그러나 각막의 외곽선을 진하게 하고 동공 주변으로 갈수록 옅게 하여 상대적으로 동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차분한 착색과 안정감 있는 가사(袈裟), 고요한 정관(靜觀)의 기품을 담고 있는 스님의 초상은 근래 들어 본 초상인물 중 단연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이 초상은 밝은 화면에서 나오는 빛의 느낌이 작품의 평면성위에 초월과 신성(神性)의 새로운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스님의 유골 잔해 중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사리를 발라 까실하게 표면을 덮는 효과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의 점과 주름 표면에 착색되어 자연스럽게 입체화된 평면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성철스님 초상」은 유머와 위트가 섞인 인간미의 선사를 수묵인물화로 그려내었는데 선화풍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어 자네왔는가?"라고 말할 것만 같습니다. 불도(佛道)에 당당한 정진으로 물러서지 않는 기백을 보여주었던 선사는 이제 천진한 표정을 짓고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둥근 타원형의 강력한 안면 윤곽선과 개성있는 얼굴묘사, 건장한 어깨선을 중심으로 한 대담한 가사 표현은 수묵이기에 더욱 가능한 장점이 되고 있습니다. 「지관스님 초상」에서 김호석은 정부와 불교계가 갈등했던 지난 시기 한 사건을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총무원장의 차량을 수색하는 과정의 이 장면은 경찰의 무도한 조치에 스님은 뒤로 외면한 채 서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연신 염주를 굴리며 이 얼척이 없는 상황에 망연해 하는 학승이 뒷모습입니다. 이 그림에서 백미는 뒷모습으로 보이는 스님의 두상(頭象)입니다. 정면초상 못지 않는 스님의 뒷모습이 정제되어 있습니다.

김호석_하늘에 눕다_126×111cm_2007

4. 웃다 그리고 깨다 ● 삶의 모순 가운데 웃을 수 있다는 것, 그러한 긴장 가운데 대상을 비판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가 생기는 여유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복잡한 생각을 한편으로는 말로 한편으로는 웃음으로 말하는 능력은 표리관계에 있으며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게 만듭니다. 웃을 수 있기에 인간이고 바닥의 삶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웃음입니다. 김호석의 작품에서 삶에서 찾아낸 웃음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날숨」은 며느리의 새치를 속아내는 시어머니를 그린 작품입니다. 시어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며느리의 새치를 골라내고 있습니다. 세월을 닮은 손과 주름진 얼굴이 이 서툰 작업에 동참합니다. 며느리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서 발끝이 오그라들고 흐르는 침을 입 끝으로 빨아들이며 애써 웃음을 참아냅니다. 「날숨 生」에서는 유건을 쓴 채 귀를 맡기는 아버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눈이 침침한 어머님은 가는 눈으로 최대한 집중을 하며 작업을 합니다. 꼭 쥐고 있는 손과 발에서 긴장이 서려있습니다. 인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머니의 의복 표현은 검은 먹으로 처리하여 무게감을 주었습니다. 이것과 다른 역설과 골계의 미가 「鼠 1」, 「鼠 2」의 작품입니다. 쥐에 대한 상징은 탐욕과 민첩함의 대명사이지만 그것이 쥐 수염으로 소용되었을 때 서수필(鼠鬚筆) 되었다는 상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동파의 아들 소과蘇過의 서수필(鼠鬚筆)이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大倉失陳紅 나라 창고에선 붉게 썩은 쌀 잃으니 狡穴得餘腐 교활한 쥐구멍에선 썩은 것을 얻었네 旣興丞相嘆 이미 승상 이사에게 탄식하게 했고 又發廷尉怒 또 정위 장탕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였네 磔肉餧餓猫 살점은 찢겨 굶주린 고양이에게 먹이고 分髥雜霜免 수염만 골라 흰 토끼털 섞어 붓이 되었네 揷架刀槊健 필통에 꽂아두니 창검처럼 억세 보이고 落紙龍蛇騖 글씨 쓰면 용과 뱀 꿈틀거리듯 웅장하네 物理未易詰 사물의 이치는 헤아리기 쉽지 않으니 時來卽所遇 때를 만나면 적절히 쓰이기 마련이네 穿墉何卑微 담을 뚫을 땐 얼마나 비천한 것이었나 託此得佳譽 어떤 이는 이 붓 빌려 명성을 얻었다네

김호석_법(法)_193×95cm_2012

인간이 탐욕의 대상으로 풍자하는 것이 쥐이지만 쥐는 죽어 서수필을 남기는데 이 붓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그대들은 아는가 하는 것이 이 시이고 쥐 보다 못한 인간을 함부로 풍자하지 말라는 경구로 쓰면 역풍자가 됩니다. 씁쓸한 미소가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역설이 있습니다. 「물질」은 물을 낚아 올린다는 작품인데 뜨거운 열사의 태양아래 사막에 한순간 비가 내리면 물길이 강처럼 생기는 마술적 상황이 벌어집니다. 모래바닥위에 물이 빠지지 않고 끓는 모래위에 물길을 이루는 이 모순적 상황의 역설이 삶을 구성하는 골계가 됩니다. 작가는 그 물을 낚겠다고 제목을 「물질」로 하였습니다. 이제껏 본적이 없는 물, 사막을 흐르는 물을 낚고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이 얼마나 역설이겠습니까? 사막과 물처럼 김호석 작품의 특징은 서로 반대되는 속성과 특징이 안과 밖을 이루고 표현과 내용의 다양한 층위를 만들고 있습니다. 부정과 긍정이 함께 하는 모순적인 자리 그것의 장소에 김호석의 작품이 존재합니다. 흑과 백, 남과 여, 분노와 기쁨, 온갖 모순된 상황의 긴장된 힘들이 삶의 해학과 풍자를 이루고 그 모순에 골계의 힘을 더하는 것입니다. '웃다'라고 표현된 김호석의 작품은 웃으면서 '깨고'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무수한 설계와 인간에 대한 관찰이 종합된 김호석 의지이기도 합니다. 바로 전통과 현실에 근거한 그의 회화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김호석의 집중된 의지 말입니다. ■ 류철하

Vol.20120525e | 김호석展 / KIMHOSUK / 金鎬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