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

김민수展 / KIMMINSU / 金珉秀 / painting   2012_0522 ▶ 2012_0527 / 월요일 휴관

김민수_모란꽃 속의 인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지름 2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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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블로그_blog.naver.com/kmsas1004 인스타그램_@kimminsu1004          

초대일시 / 2012_0522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2층 제3전시실 Tel. +82.(0)53.661.3081~2 www.bongsanart.org

화가 김민수의 작품을 비평하는 방식은 대체로 그 길이 정해져 있다. 그녀의 작업을 한국의 전통 민화가 서구에서 전해 온 현대 미술에 조응하면서 나타난 양식으로 보려는 게 보편적인 방식이다. 틀리지 않았다. 이 화가의 작업 경향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곤란하다. 장르의 구조가 작가 개인의 행위를 결정짓는 것으로 판단하는 관점인데, 이것이 통찰력을 실은 비평의 틀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구조 결정론이 김민수라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파헤쳐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구나 작가가 이번 전시 제목 그대로 행복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려는 마당에, 나는 지인비평이라는 저급한 형태의 평론을 피하는 범위 안에서 작가와 작품을 관찰하려고 애썼다. 여기서 나는 김민수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행복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 본인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 지금까지 수많은 전시 이력을 가진 그녀에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민화의 양식적 언급이 아닌 본격 비평을 할 시기가 온 것은 사실이다. 비록 불가능한 일이지만, '민화'라는 단어를 한 번이라도 쓰지 않고 김민수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고 싶은 게 내 욕심이었다. 모든 게 상대적인 수치이기는 하지만, 나는 생물학적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적지 않은 경력을 쌓은 그녀가 이번 개인전을 어떤 심정에서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 이후 모든 면에서 작가라는 조건과 신분을 긍정하는 자의식을 갖추었다. 일관된 소재와 스타일로 형성된 작품들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자신 안에 충전된 민화의 담론으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 이전, 즉 작가로 발돋움하던 시기부터 다양한 감성과 이성의 경험을 체득해 왔다. 영성과 교리라는 형이상학적 가치로부터, 작품 시장과 조직이라는 세속적 형태의 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숱한 애정과 연대, 갈등과 배신을 겪었을 것이다. 그 상호 관계의 끝은 제로섬으로 수렴되는 무無의 상태였다. 미술가이자 미술치료가인 그녀는 스스로 그림 속에 무를 유로 메워가기 시작했다.

김민수_모란꽃속에서 노닐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227cm×2_2012
김민수_모란꽃속의 인연과사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63cm_2012
김민수_연꽃속에 인연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2_2012

무엇이든 채워야 된다. : 만약 그녀가 미술이 아닌 다른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면(충분히 그럴 계기는 있었던 것으로 나는 안다), 결코 미니멀리즘 음악이나 하드보일드 문학은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에 대한 보상은 아방가르드 미술보다는 민화와 같이 다채로운 층위에서 반복되는 유려한 공간을 화폭에 담아내는 쪽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그림 속에 담아 낼 서사 구조를 머릿속에서 먼저 설계하여 밖으로 하나둘씩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녀의 작업은 민화가 가지는 컨벤션을 별 고민 없이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러하지 않다. 그것은 매우 더디면서 고된 과정이다. 여기에 이중성이 있다. 행복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예술적 명분은 우리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로 읽힌다. 그것은 작가 내면의 복합적인 성향이 단순화되고 유희화된 이 이중성의 역설을 파악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그녀가 준거하고 있는 민화는 하나의 질서에 의해 짜인 시공간의 결정체다. 민화는 장르나 사조라기보다, 내적 규율에 의해 작동되는 위계질서 있는 하나의 문화양식이다. 그것은 스포츠나 종교 의례(ritual)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민화는 여기에 참여하는 화가와 감상자와 소장가들의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주체들이 만들어가는 일종의 라이브러리다. 이는 과거로부터 지금 여기에 충분히 계승될 가치를 갖고 있다. 단순한 답습이라면 그것은 재미없다. 김민수의 회화는 그 중심에 현대 미술을 이끌어가는 혁신과 파격을 수용하며 좀 더 희귀한 가치를 뿜어내고 있다.

김민수_연꽃속에 인연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2
김민수_책거리 속 五福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지름 200cm_2012
김민수_책거리속 파랑새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3cm×2_2012

예술을 정의하는 수많은 명제 가운데, 일종의 비교 관계로서 예술은 예술이 아닌 일상보다 더 많거나 혹은 부족한 면을 일부러 과장되게 보여준다. 김민수의 그림에도 실재에 대비되는 과잉과 결핍이 관찰된다. 빨간 색은 과잉이며, 소재들의 다양함이나 밀도 또한 그렇다. 반면에 삽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대상의 단순함은 결핍으로 해석된다. 일관되게 천진난만하고 단순한 이 세계 앞에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그림 속에 이미지들이 정제되어 나열되지 않았다고, 붉은 원색에 집착한다고 비난한다면, 그들은 대안을 김민수가 아닌 다른 작가에게서 찾으면 된다. 작가가 가진 이상은 그녀가 스스로 부여한 하나의 질서를 상반되는 모든 물건과 캐릭터 속에 부여하려는 기획이다. 그녀의 그림들 대부분이 온통 빨간색으로 뒤덮여있는 것은 그 모든 감각의 층위를 가장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인지요소인 색으로 통일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 물론 그 기획이 비장하거나 진지한 투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그림이 좋다. 김민수의 그림에는 장난기가 충만하다. 작가는 자신이 장치해둔 여러 개의 비밀을 그림 속에 집어넣고서 우리가 호기심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즐긴다. 그녀는 늘 그런 식으로 산다. 그렇다고 그 비밀이 완벽히 봉인된 수수게끼는 아니다. 그림 속 꽃과 풀과 새와 호랑이와 책 그 전부는 모두 있어야 될 이유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그 세계 속에서는 보편타당한 상식적 존재인 셈이다. 그녀가 자신 속에서 품어내고 끄집어낸, 그래서 마치 자식들과 같은 이들 존재는 그 자체로 꾸밈없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하고 있다. 그것이 전통 문화의 영험한 기운이든, 현대 미술의 알싸한 농담이든 뭐든 말이다. ■ 윤규홍

Vol.20120522b | 김민수展 / KIMMINSU / 金珉秀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