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기억 Memories of journey

홍원석展 / HONGWONSEOK / 洪原錫 / painting   2012_0518 ▶ 2012_0616 / 일요일 휴관

홍원석_solitude_캔버스에 유채_50×16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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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1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포월스 GALLERY 4WALLS 서울 강남구 논현동 248-7번지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1층 Tel. +82.2.545.8571 www.gallery4walls.com

별 없는 밤의 주행 ● "...보석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별들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정말 다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말이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1931년)』중) "그날 밤은 무서운 밤이었다. 일찍이 그만치 춥고 그만치 어둡고 또 그렇게 무서운 생각의 협의 아래 하룻밤을 지내 본 짧은 생애는 가져 본 것이 없다." (『임화의 설천야 雪天夜의 대동간 반畔(1942년)』중)

홍원석_시발택시_캔버스에 유채_50×65cm_2012

비행사들에게 전시(戰時)가 아닌 평상시의 야간비행은 고독한 수행자처럼 세계와 자신을 향한 고요한 관조와 성찰의 비행이 된다. 반면, 별 하나 없는 검은 구멍에 빠져드는 야간운전은 불길하다. 삶의 관조와 성찰이 허락되지 않는 급박한 파국과 재난으로 폐허가 되어버리는 세계를 주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은 또는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이 가로지르는 공포의 세계다.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이들의 야간운전은 그야말로 투쟁의 현장이기 싶다. 어려운 경제현실 속에 도시와 도시를 운행하는 대형트럭, 촉박한 배차시간에 쫓기듯 헐떡이는 버스, 전철, 택시. 야간운전이 주는 초현실적이며 몽상적이기까지 한 야경(夜景)은 마치 램브란트의 「야경(夜警)」처럼, 실상 현실과 삶의 고투 속에 깊고 검은 생활의 구렁텅이를 가로질러가는 시민들의 행로를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죽음과 고통의 파국을 건너는 밤의 행군이다. 그런 밤은 무서운 밤인 것이다.

홍원석_Under Construction_캔버스에 유채_181×227cm_2012

야간운전으로 짙고 푸른 야경을 그려온 홍원석의 작업은 초기의 사실적인 도시풍경에서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점화하더니 최근에는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퍼포먼스, 다큐멘터리로 확장한다. 「홍기사 아트프로젝트(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10년)」, 「홍반장 아트택시 프로젝트-가시발(加始發)아트택시(제주 가시리창작센터, 2011년)」, 「홍반장 아트택시 프로젝트-아트자동차 ‘바람’(경북 영천 가상리, 2011년)」, 「시발始發공짜택시 프로젝트(창동창작스튜디오, 2012년)」. 2010년 이후 홍원석의 작업은 진행해온 일련의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최근 사회적 또는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경향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같은 시기 홍원석은 「June 2002」, 「용산미스터리」, 「pm 9:00 야간 구급차」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며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이면의 정치경제의 힘과 구조를 은유하는 작업을 병행해 왔다. 그러나 그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2005~2006년을 전후로 최근까지 제작되고 있는 사실적인 이미지와 초현실적 분위기가 어울려진 심미적 풍경이다. 현실의 관습과 제도와 갈등이 녹아들어가는 밤의 풍경은 페인팅이 여전히 사람들을 매혹하는 그 특유의 질적 속성과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쌓인 시간과 경험의 질(質)과 연동한다. 낮의 질서와 경계가 사라지는 밤의 세계는 사물과 이미지가 서로 녹아들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뉘앙스와 분위기, 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이다.

홍원석_샷~_캔버스에 유채_97×193cm_2011
홍원석_크리스마스의 악몽_캔버스에 유채_97×193cm_2011
홍원석_파주 자유로_캔버스에 유채_181×227cm_2012

우주인이 부유하는 강변 위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강물은 불꽃으로 반사되는 비늘 같은 물결이 퍼지고 어디선가 차 한 대가 달려온다. 불빛이 긴 빛의 기둥을 쏘아 보낸다. 꿈속을 달려간다. 야간 운전은 빛의 주행이기도 하다. 이즈음 홀로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고독해진다. 주위를 지나쳐 가는 사물은 뭉그러지며 경계가 사라지며 하나가 된다. 점차 풍경을 이루던 요소들이 단순한 몇 가지 형태와 색채로 통합되면 어둠보다 더 검은 세계와 더 몽롱한 환영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무중력의 우주인이 되어버린다. 현실을 떠난 어떤 공간을 막연히 부유하는 듯한. 오래전 임화는 밤의 어둠은 밝은 데서 평가되는 모든 가치를 불문에 부치는 횡폭한 죽음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임화가 살았던 일제식민기의 비관적 세계와 그를 극복할 미적 세계가 충돌하여 화려한 그러나 아주 검은 빛을 발하는 불꽃놀이처럼 보인다. 앰블런스를 운전을 경험한 작가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는 다소 관습화되어 버린다. 생존의 문제는 단지 평범한 일상의 과업으로 치환된다. 마치 전투폭격기 비행사의 무심하면서도 아주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보이지 않는 지상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수많은 야간운전자들은 그들의 일상의 과업과 치열한 현실의 고투 속에서 어떤 마음의 영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떠한 갈등도 고민도 멈춰버리는 무시간적 공간. 말 그대로 초현실의 체험이다.

홍원석_야간 여행_캔버스에 유채_60×150cm_2012

홍원석의 작업이 점차 일상과 현실을 다루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의 알레고리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그림은 언제나 한 켠에 빈구석을 남겨둔다. 뒷문을 살짝 열어둔다. 그것은 야간운전의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공간이다. 그림은 뉴스도 시사도 아니다. 그 이상이다. 삶과 세계는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도 죽음도 견뎌야하는 것이기도 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보르헤스의 푸네스처럼, 또는 영원한 삶을 사는 불사자의 망각처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홍원석의 작업에는 그러한 이중의 운동이 있다. 현실에 꽉 붙는 정신과 현실을 넘어서 초월하려는 정신이 병행한다. 밤의 세계, 특히 별빛조차 없어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밤의 주행은 철저한 준비와 오랫동안 견디는 의지 등을 요구한다. 결코 낯설지 않은 시험(試驗)이다. 홍원석의 그림은 일관하여 낮의 세계의 안온함에서 떨어져 나와 고독과 낯선 정서로 가득한 밤의 세계를 유영한다. ■ 김노암

Vol.20120518a | 홍원석展 / HONGWONSEOK / 洪原錫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