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다

화가 이경미 성장 에세이   지은이_이경미

지은이_이경미 || 분류_글/그림 || 면수_336쪽 || 판형_148×210mm 발행일_2012년 4일27월 || ISBN_9788946418219 || 가격_14,800원 || 출판사_샘터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경미 홈페이지로 갑니다.

온라인 책판매처 YES24 인터넷 교보문고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인터파크 도서 대교 리브로 도서11번가 영풍문고

샘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763.8961~9 www.isamtoh.com

"당신은 나를 가질 수 없어!" …하지만 난 네가 그리워. 가장 외로웠던 순간마다 고양이가 지나갔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마다 고양이를 그렸다. 가장 아름답던 순간마다 고양이와 함께했다. 더 슬퍼지기 전에 삶을 향해 전진한, 한 예술가의 아름답고 치열한 성장의 기록 서양화의 모델이 된 길고양이, '나나' '랑켄' '바마' '주디'! 늘 삶과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성장해온 젊은 화가 이경미가 전하는 산다는 것, 극복한다는 것, 예술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 그림의 화면 속에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인 나의 고양이들, 나나, 랑켄, 바마, 주디는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동물 친구들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수자를, 때로는 기피의 대상을, 때로는 소외를, 때로는 지난날의 나를 상징하기도 한다. 가장 깊숙한 어둠 속에 있을 때에도 나는 나나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이 작은 동물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하루를 견뎌냈다. 작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몰랐을 때였지만, 내 무릎 위에서 내 눈을 궁금한 듯 바라보며 나의 우울함을 날려버리는, 나를 이해해주는 듯한 신비하게 깊고 맑은 파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의 그림도 이러한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프롤로그 「But I Love You」에서.)

서양화의 모델이 된 길고양이! 일상의 소소한 기억과 고양이, 외롭고 아픈 유년과 현대문명에 대한 사색까지 그림에 담아내는 서양화가 이경미. 고단하고 가난했던 성장기와 화가로 활동하는 현재까지, 세계관과 생활에 깊은 영향을 준 고양이의 매력, 작은 일상마저 소중하게 만드는 그 교감과 사랑의 힘을 만나본다. 천형이자 에너지의 근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태어난 노란 고양이 '나나', 사고로 목을 다쳐 늘 20도 기울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프랑켄슈타인' 고양이 '랑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입양한 '바마', 미국의 동물 보호소에서 인연을 맺은 막내 '주디'는 단순히 그림의 소재를 넘어 화가의 예술과 영혼을 반영하는 '아바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이방인 화가로 살아가는 의미, 수년간 엄마와 떨어져 지낸 유년의 외로움, 작은 생명들과 그림을 통해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난을 극복해온 노력, 동반자와 문명에 대한 사랑 등 한 예술가를 만들어낸 성장통과 자양분을 함께 전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을 관통하는 기억과 경험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돌아보며 먹먹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아름답고 사색적인 수십 장의 그림은 그에 보탠 선물이다.

출판사 서평 고양이를 그리는 서양화가 이경미의 성장 에세이 ● 우리 시대 고양이는 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신비롭지만 까칠하고 냉정한, 하지만 귀엽고 매혹적이고 때로는 익살맞은.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고양이를 싫어하고 무서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제 고양이를 사랑하고 숭배한다. 함께하되 결코 하나가 되지는 않기에, 더더욱 현대인에게 동질감을 주는 신비로운 동물 고양이. 영화, 만화,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대중문화에서 고양이를 다루었지만, 여전히 벽이 높은 서양화단에서 고집스럽게 고양이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젊은 서양화가 이경미는 함께 살아온 고양이들만을 소재로, 르네 마그리트, 크빈트 부흐홀츠, 로브 곤살베스 못지않게 입체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며 한국 ㆍ미국 ㆍ홍콩 ㆍ대만을 주무대로 활동 중이다. 미술 전공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고단하고 가난했던 성장기를 지나온 저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외롭고 아픈 유년, 일상의 소소한 기억과 현대문명에 대한 사색까지 그림에 담아내며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성장 에세이 『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화가 이경미의 세계관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준 고양이들의 매력, 작은 일상까지 소중하게 만드는 그 교감과 사랑의 힘을 전한다. 1부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이방인 화가로 살아간다는 의미, 2부에서는 수년간 엄마 없이 지내야 했던 유년의 외로움과 아버지에 대한 공포, 3부와 4부에서는 작은 생명들과 그림을 향한 사랑만으로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가난을 극복해온 시간, 5부에서는 동반자와 환경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여전히 작가이자 하나의 인간으로서 현재진행형인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내러티브식 구성으로 진행되고, 외로운 서정이 깃든 섬세한 문장으로 쓰여, 미술 작품처럼 여운을 남기는 독특하고 새로운 에세이이다. 그 책장을 넘기며, 한 예술가를 길러낸 성장통과 자양분의 비밀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내면에 움츠려 있던 유년과 상처를 함께 만나고 다독이며 현재의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맛볼 것이다. 삶을 관통하는 기억과 경험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돌아보며 먹먹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수십 장의 그림은 그에 보탠 선물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사소한 것이다 ● 화가 이경미의 그림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번갈아 가며 자주 등장한다. 천형(天刑)이자 에너지의 근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태어난 노란 고양이 '나나', 사고로 목을 다쳐 늘 20도 기울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프랑켄슈타인' 고양이 '랑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입양한 고양이 '바마', 미국의 동물 보호소에서 인연을 맺은 막내 고양이 '주디'는 단순히 그림의 소재를 넘어 화가의 예술과 영혼을 반영하는 '아바타'이기도 하다. 화가의 분신이자 벗이고, 그림 속에서 유년과 현재를 연결하고 현대문명과 가상공간을 연결하는 메신저이다. 특히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도 살아 돌아온 첫째 고양이, 가장 힘겨웠던 20대를 함께 보내며 가장 큰 위안을 준 나나를 통해 저자는 고단한 삶을 한 발 한 발 디뎌간 스스로의 궤적을 확인한다. ● 화가 이경미가 끊임없이 고양이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화가 이경미에게 그림이란 '소중한 순간을 수집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그 소중한 순간이란 거대하거나 값비싼 가치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기억 그리고 일상이라는 가치이다. 그녀는 때로는 술병, 가구, 잼통, 주사위 등 일상 속 물건에 그림을 그려 넣어 소중한 대상을 기억 안에, 작품으로 영원히 수집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하나하나 다르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사소하고 작은 경험과 기억조차 그림이라는 예술을 거쳐 커다란 공감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성장이란 얼마나 극악하고 끔찍하고 눈물겹고 애잔한 단어인가"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무능력하고 술을 이기지 못했던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는 몇 년간 집을 떠났다. 서너 살이었던 그때 무의식에 각인된 첫 감각은 지독하고 끝없는 외로움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이별하던 날 내리던 눈발은 이경미의 그림 속에서 여전히 낯선 도시의 골목에 흩날리며 유년을 상기시킨다. 무엇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했던 일은 화려한 은박 풍선을 파는 일이었고,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한복을 지어 세 남매와 또 다른 어린 생명들을 살게 했다. 눈부신 광택에 황홀한 색감,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한복천은 이경미의 그림에서 잔잔하고 푸른 파도와 함께 자주 등장하고, 아버지의 은박 풍선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방 출신의 고학생이 대도시 서울에 와서 겪는 이질감과, 갑작스레 거대한 이국의 도시에서 살게 된 이방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외로운 이방인이라는 자각을 안고 살아온 화가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떠나간 우주인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물론 그 우주인은 지구로 다시 돌아올 운명에 속해 있다. 그렇게도 미웠던 아버지가 너무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저자는 '슬퍼지기 전에 삶을 향해 전진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 이렇듯 화가 이경미의 그림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등 돌린 어깨를 닮은 우리네 뒷골목, 현대문명의 상징인 거대 빌딩과 자동차가 다니는 대도시, 환상적인 우주 공간, 어딘가로 열려 있는 문, 가난한 삶을 굳건히 지탱해주는 듯한 책.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거대한 공간들은 주로 방 안, 건물 안, 책상 위에 펼쳐져, 예술가의 상상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하고 있다. 잔잔한 파도와 한복 천은 이질적이면서도 각각의 공간과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네 마리 고양이는 그 어떤 시공간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고 유유자적하고 있다. 고양이처럼 혼자였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니 그냥 가자! ● 힘겨운 환경에서 11년간 판화와 회화를 공부한 뒤, 유학 간 미국에서도 꿈꾸었던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린 이 화가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우주 비행사처럼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길은 분명 전과는 다른 길이다. 다행히 크고 작은 사랑을 받으며, 생명과 자연과 예술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그녀는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수집'하고 표현하며 오늘도 걷고 있다. 거대한 우주, 흘러가는 긴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행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깨달음. 그것은 성장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여전히 고양이처럼 혼자이지만, 어느새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게 된 저자는, '성장한 어른이 지닌 모든 정보가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모두 유전이 된다면 이렇게 길고 긴 시간을 실수하며 상처받고 후회하며 살지 않아도 좀 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인류는 놀랍도록 지적인 완벽에 가까운 문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연을, 그리고 막막한 안개 속의 여행자 같은 다음 세대를 다독인다. 어디인지 몰라도 그냥 가자고, 마음이 가리키는 그곳으로 함께 가자고 말이다. 그 길 끝에서 결국 무엇도 만나지 못한다 해도, 무엇도 얻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는 진실을 함께 나누자고 말이다.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마법 같은 그 공존의 시간은, 진솔하고 서정적인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양이처럼 혼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무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장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 화가 이경미가 그림을 넘어 내밀한 고백을 통해 전하는 성장과 삶의 비밀이다.

책속으로 빈방에서 멍하니 창호지문을 바라본다. 문 밖은 따스한 초여름의 기운이 가득했다. 창호지문은 밝은 햇살 때문에 마치 등을 켜놓은 듯 훤하다. 가장자리는 은은하고 붉은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바람 때문인지 빈방을 채운 격자무늬의 그림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랑사랑 일렁였다. 내 눈가의 물기 때문인지 정말 그림자가 일렁이는지 알 수는 없었다. 문을 흘깃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엄마…." 나는 너무 절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목소리가 낯설다. 또다시 불러본다. "엄마…." 이번엔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준다. 의지와는 반대로 나는 점점 더 절실해져갔다. ● "엄마!" 이제는 계속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본 지 너무 오래되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그 이름이 무척 낯설었다. 어색한 느낌을 잊어보려는 듯 나는 더 크게, 더 또렷하게 불러본다. 문 밖에 엄마가 있는 것처럼. 저 문을 열고 엄마가 "왜?"라고 대답할 것만 같아 나는 더욱 목청껏 불렀다. 메아리도 없이 아른거리는 옅은 바람 소리조차 들릴 듯한 초여름의 고요함이 나를 짓누른다. 그런 고요함이 싫었다. (71~72p, 「아무리 불러도 없는, 엄마」에서)

사람들과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큰길과는 달리, 끝이 굽이쳐 가려진 골목. 도시의 골목이 생전 처음이었던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전부였다. 언제나 등 돌린 듯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누군가의 어깨처럼, 집집마다 담벼락에 매달린 석류나 감들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동경을 품게 했다. 여름이 가까우면 골목에는 어김없이 짙은 보랏빛 라일락 향내가 진동했다. (중략) 긴 고생을 하고 탈 많았던 남편도 먼저 보낸 엄마가 중얼대던 말이 있다. "한때는 하루하루 어찌 살아야 하나 싶을 만큼 긴 것 같았는데, 지나보니 인생은 저 골목어귀 같더라. 멀리서 올 때는 너무 멀어 보였는데 어귀를 돌고 나니 골목은 금방 끝이더구나……."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을 알기에 나는 너무나 모자란 나이였다. 하지만 엄마의 담담한 말은 이제는 떠난 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어린 시절의 골목과 아련히 겹치며 눈물 나게 했다. (95~96p, 「등 돌린 어깨를 닮은 골목길」에서)

관찰을 통해 무언가 창의적인 성과를 생산했다면,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관찰 행위의 동기는 과학적인 호기심보다는 그저 사소한 생명들이 지닌 작고 섬세한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손으로 살짝만 눌러도 멍이 드는 하늘하늘한 자줏빛 모란꽃잎의 섬세한 아름다움이나, 하늘을 향해 비춰보면 작은 마을의 지도처럼 보이는 플라타너스의 잎맥이나, 우아하고 세련되게 고개를 숙이며 조형적인 선을 그리는 수선화의 긴 잎들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식물뿐 아니라 장독과 장독 사이에 섬세한 편물을 아슬아슬하게 짜놓은 거미들의 놀라운 능력이나, 때때로 무수히 마당에 날아들어 무언가를 쪼아대는 참새의 완벽한 듯 아름다운 호를 그리는 둥근 머리,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유리체 뒤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고양이의 황금빛 홍채, 보송보송 솜털구름보다 보드라운 병아리의 날개죽지 같은 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고 신기했다. (중략) ● 생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눈물겹게 아름답다가 이유 없이 지고 만다. 작은 씨앗에서 여린 잎들이 틔어나고, 한줌이 되지도 않는 벽돌 틈 사이에 피어난 화사한 민들레로, 꽉 쥐지도 못하는 한 손 위의 여린 병아리의 노오란 몸짓으로, 다음엔 골목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활짝 핀 지천의 붉은 철쭉으로, 대낮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들러붙은 한 쌍의 개로, 또 술에 전 아버지의 흐린 눈빛으로, 옆집의 석류나무 끝에 살짝 걸린 노을빛으로, 천 년을 지켰다는 계림의 숲으로, 바람에 날리는 해파리 같은 홀씨의 너울거림으로…… 모든 생은 존재했다. (중략) ● 엄마는 많은 말도 없이 비싼 비료도 없이 자녀도 화초도, 내가 안고 온 그 수많은 동물들도 평온하게 그 생을 살게 했다. 내가 아는 생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의 주체가 아니었다. 수많은 벽돌이 쌓여 교회가 지어지듯, 나를 스쳐간 수많은 생명들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잊혀지지 않기를 오늘 하루도 기도한다.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을 위한다는 경전의 말처럼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만을 위한 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111~112p, 115~116p, 「부디 저만을 위해 살라, 한 포기 풀도」에서)

그 어떤 시간이든, 그 어떤 노력이든 흔적은 남는다. 그 흔적으로 인해 아프다 해도, 또 웃는다 해도 결국 식물처럼 서서히 자라나리라. 우리의 모든 경험과 지식은 그렇게 삶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되어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린다. (217p, 「슬픈 지식에 울다」에서)

나나와 1미터쯤 떨어져 거실 바닥에 누웠다. 나나의 투명한 눈이 나를 지긋이 응시한다. 가족들은 모두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다. 강아지들도 제자리를 찾아 사라진다. 적막 같은 거실 위에 나나와 내가 서로 바라보고 있다. 나나의 깊고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홀린다. 우주같이 적막하다. 나는 홀로 궤도에서 이탈한 우주인같이 고독했다. 손가락 하나 쳐들기 힘들게 피곤했다. 서너 시간 후면 나는 다시 출근해야 한다. 침대에서 자야 하지만 거실 바닥에 뉘인 내 몸은 바닥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마치 원시의 소리처럼 고요히 들린다. 블랙홀 같은 어둠이 나를 삼킨다. 저 멀리 별빛 같은 나나의 눈동자가 창백하게 빛난다. 암흑이다.(236p, 「창백하고 푸른 암흑 속에서」에서)무수히 많은 지구상의 아름다운 존재들은 우리들의 뒤에 있다. 그리고 나,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You don't own me!" (262p, 「You Don't Own Me! 당신은 나를 가질 수 없어!」에서)

'너를 보면 아프고 지친 내가 떠올라. 그래서 좀 더 좋은 인간이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 (277p, 「지도 위, 당신과 나의 좌표」에서)

순한 성격도 그렇고 두개골이 골절되었던 사연도 그렇고, 언제나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가, 인간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는 프랑켄슈타인의 어눌하지만 귀여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걱정하던 바와 달리 시간이 지나자 랑켄은 나름대로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머리는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들이대긴 해도 크게 곤혹스러울 정도는 아닐 만큼 적응해갔다. 작업실을 옮기며 나에게 잠시 랑켄을 부탁한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랑켄은 나나의 동생이 되었다. 항상 사람만 바라보는 나나에 비해 랑켄은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과연 그 작은 뇌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늘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긴 사색에 잠긴다. 랑켄은 랑켄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자기의 세계가 왜 20도쯤 기울어 있는지 평생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랑켄은 고양이니까. (311p, 「지구의 소리를 들어라」에서)

불이 꺼진 새벽에 집으로 들어서면 강아지들과 노란 고양이 나나가 저를 반겨주었지요.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사람에게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들 또한 고단하지 않을 리 없는데……. 그래서 저는 강아지와 나나에게서 위로받고 또 위로받았습니다. 특히 나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언제나 부담스럽지 않게 저를 편하게 해주었지요. 19~20p (출판사 제공)

지은이_이경미 저자 이경미는 서양화가. 홍익대학교 판화과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수차례 그룹전에 참여했다. 고양이를 주소재로 삼아 현대문명에 대한 사색까지 담아낸 그림이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술을 끊지 못했던 아버지, 초라한 한복집 하나로 생계를 꾸려갔던 어머니, 가난한 집안 형편 속에서 사물과 자연을 관찰하며 외로움과 친구가 되었고, 아름다운 한복의 빛깔과 그 천이 드리운 그늘을 바라보며 색채와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세상 모든 아픈 것들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한복 천은 그 넉넉한 주름과 고운 색과 질감과 함께 지금도 그녀의 작업실 한구석에 남아 있다. 늘 함께하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 모든 것들이 그녀의 오브제이자 아름다운 유화로 거듭난다. 작품에 대한 비평을 아끼지 않는 남편, 막내 고양이 주디와 함께,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작은 도시 산타클라라에 잠시 머물고 있다."나에게 있어 그림이란 내가 그린 그림을 통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들이 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나를 생각하게 되는 일,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혹은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받는 일, 내가 세상을 향해 사랑과 인정을 구하는 도구인 것이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진심을 다하는 것이 곧 예술이자 사랑이라고 여기고 있다."

목차

에필로그 But I Love You · 8

Episode 1 미국, 신세계라는 우주의 고양이 달에 다녀온 다음에는 어디로? · 24 주디, 달에서 만난 그리움 · 33 세상에서 가장 나와 다른 당신 · 45 영원한 이방인 · 53 떠나온 뒤에야 달은 보인다 · 60

Episode 2 유년, 엄마 잃은 고양이 아무리 불러도 없는, 엄마 · 70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했다 · 75 십자가, 최초의 아름다움 · 80 어떤 공포 · 86 등 돌린 어깨를 닮은 골목길 · 93 눈 내리는 날, 엄마! · 97 나는 가장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되고 싶었다 · 103

Episode 3 생명, 가난한 새끼 고양이 부디 저만을 위해 살라, 한 포기 풀도 · 110 울 아빠는 풍선 장수 · 117 그 숲이 되고 싶다 · 125문 밖의 세상, 문 안의 풍경 · 133 가슴에는 멍울이 자란다 · 142 봄날은 눈이 부셨다 · 150 그래도 그는 아버지였다 · 156 아버지를 묻은 날 · 166 작은 생명들을 기억한다 · 171 삶과 죽음이 함께 든 상자 · 180

Episode 4 성장, 그림 그리는 고양이 그림 그리는 어린 이방인 · 186 서울, 신세계에서 길을 잃다 · 194 변명만 가득한 스무 살 · 202 홀로 걷는 일방통행, 그리움 · 208 슬픈 지식에 울다 · 213 You've Got a Friend · 218 높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처럼 · 226 창백하고 푸른 암흑 속에서 · 234 그림, 소중한 욕망을 수집하는 행위 · 238 천을 그리는 인간, 인간을 감싸는 천 · 243 불완전함의 예술 · 248 빈곤과 아름다움 사이 욕망이 있다 · 251 You Don't Own Me!당신은 나를 가질 수 없어! · 257

Episode 5 사랑, 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지만 흩어지는 연기를 닮은 사랑 · 266 지도 위, 당신과 나의 좌표 · 270 타임스퀘어에서는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 278 패배한 사랑 · 284 추락하는 탁상 위의 월스트리트 · 303 지구의 소리를 들어라 · 307 새로운 길 위에서 · 320

프롤로그 Just Go! · 324

Vol.20120513a | 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다 / 지은이_이경미 / 샘터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