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난다展 / Nanda / 卵多 / photography   2012_0512 ▶ 2012_0707

난다_0314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난다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512_토요일_05:00pm

한미사진미술관 기획展 SPECTRUM 6

주최 / 한미사진미술관 후원 / 한미홀딩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30pm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불안 예찬 Anxious Celebrations1. 2008년 첫 개인전『모던걸, 경성순례기』는 개화기 경성의 모습을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배경으로난다의 창조물인 수많은 복제인간 모던 걸의 마니페스토 장면을 담고 있다. 사진 속 모던 걸은 군무를 추고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처럼 거리를 누비고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으로 등장한다. 모던 걸이 처음 등장한 건 2006년『성지 순례』부터 였다. 옛 청계천이 재연된 장소에서 촬영한 이 작업 속 모던 걸은 근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모던 걸들은 마치 사진모델처럼 포즈를 취한 듯 작위적으로 설정되어 있고(「청계천」, 2006),「발리우드식 군무」(2006)에서는 한복, 교복, 유니폼, 양장을 입은 모던 걸들이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잠시 현대로 이동한 모던 걸은 지나친 사진의 대중화와 개인 미디어의 확대에 짐짓 놀란 듯 한데 모여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을 찍고(「식도락 블로거」, 2007), 화려한 파티장에서 여류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를 기념하고 있다(「아버스를 위하여」, 2007). 이 사진 속에도 사진기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난다가 사진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모던 걸이란 가상의 인물이 근대의 신여성을 유희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모던 걸이 지나치게 사진작가 난다의 시그니처로 규정되는 건 아쉬운 점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주목한 근대라는 시간성과 이 시대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신여성을 등장시킨 이유가 단순히 여성주의적 시각과 근대의 재해석이란 화두로만 해독되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난다의 사진은 보는 사진이자 동시에 기호화된 읽는 사진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사진 속에서 한 가지를 더 발견한다. 그것은 신 문물로서의 사진기술과 시대적 상황의 중첩이다. 작가로서 난다가 고민하는 지점은 단지 특정한 세계를 재현/재연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사진이란 매체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는 지에 놓여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모던 걸은 신여성이란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동시에 근대를 대표하는 사진기술의 복제 가능성을 비유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게다가 사진의 배경이 된 영화 세트장의 역할 역시 근대라는 시간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기보다 오히려 사라진 근대를 영화라는 프레임에 맞추어 복원한 영화적 관점의 인공도시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근작에서는 모던 걸이 사라졌고 가면을 쓴 모델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취재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전시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련의 과정을 작가가 갑작스레 과거의 주제를 버리고 새로운 화두로 옮겨간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스타일로만 판단한다면 이 질문의 답은 쉽게 얻어진다. 그러나 나는 난다의 근작들이 과거와 분리된 작업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물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그녀가 놓치지 않고 가져가는 화두가 여전히 사진과 문화, 사진과 인식, 이미지와 삶의 연관성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난다_0508엄마의 제단_잉크젯 프린트_150×120cm_2012
난다_1224_잉크젯 프린트_125×100cm_2012

2. 사진에 관한 비전문가의 활동이 점점 더 보편화되면서부터 전보다 더욱 사진의 입지는 좁아지는 듯하다. 게다가 전문기술의 대중화에 따라 취미활동이 동시대의 문화 현상을 곧바로 반증하는 게 취미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 중 유독 사진의 경우, 대중화를 넘어 과잉공급의 시대가 되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이미지는 우리의 사고와 일상을 지배하는 존재로 현대사회에 스며들어 있다. 과거 이미지 생산이 권력의 장에 속했다면, 이제 이미지는 생산보다 사유와 사용의 가치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지의 범람이란 오래된 담론이었으나 최근 비판주의적 문화연구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증식은 통제가 불가능해 보인다. 이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진을 사회학의 도구로 인지했다. 그의 저서 『중간 예술』은 사진을 미학의 매체가 아닌 대중이 사회를 인식하는 매개체로 지시하는데, 여기서 사진의 기능은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이미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한 예로 60년대 프랑스에서는 결혼식 하객들이 선물 대신 예식 이후에 만든 결혼 앨범을 구매하는 게 예의였다고 한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사진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다양하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자신의 앨범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서로의 친밀감을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요즘처럼 디지털 기기가 일상의 일부가 되면서부터 사진은 추억을 공유하는 매개체라기보다 일회용 물품처럼 소비된 후 쉽사리 버려진다. 과거 앨범이 개인의 성장과정을 담아 놓은 귀중한 오브제였다면 이제 앨범은 수시로 첨삭되는 정보의 저장소가 되었다. 사진의 보편화는 이처럼 사진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사회학적 도구로써 사진은 개인의 심리상태를 지시함과 동시에 사진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앨범에서 저장소로의 이동은 물질에서 비물질로의 이행뿐만 아니라 사진을 공유하는 플랫폼의 변화로 이어진다. 앨범의 공유는 대부분 자신의 집에서 이뤄지는 사적 교감의 경험이었다. 더불어 앨범은 복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만큼은 유일한 기억의 공간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펼쳐질 때에야 비로소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플랫폼 속 사진은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모품이며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짐은 물론이고 무한으로 증식되어 떠도는 이미지의 삶을 살게 된다. 부르디외의 관점으로 보면 사진 이미지는 시대와 무관하게 '계급을 나누는 아비투스(Habitus)'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구분은 나뉘게 되는데, 직업, 취향, 성별, 성적 취향, 학력, 지역, 언어, 경제 등과 같이 다양한 내외부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한 장 혹은 하나의 사진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닫힌 개념이 아니다. 아비투스란 객관적 판단과 미래에 대한 희망, 계획, 그리고 의지가 복합적으로 혼재하는 장(場)으로, 부르디외에게 아비투스란 인간의 사회적 본성으로 끊임없이 투쟁을 이끄는 동인(動因)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 그렇다면 한 장의 기념 사진이란, 특정한 사건의 기록이자 형식을 통해 내면에 잠재되었던 사회적 바람을 드러내는 장일 것이다. 그래서 기념 사진의 이미지는 사회적 현실과 분리된 채 심리적 욕망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장이기도 하다.

난다_Wedding_잉크젯 프린트_150×120cm_2012
난다_그녀는 가면을 남겼다_잉크젯 프린트_75×60cm_2012

3. 픽션의 세계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운명적인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이처럼 달콤한 영화 속에는 언제나 화려하거나 감동적인 의식이 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바로 그 한 장면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의 한 시간 반 가량되는 러닝타임이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영화의 메시지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을 차지하게 되는 사랑의 운명에 방점을 두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올바른 삶과 순수함만 유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소설 같은 사랑을 나누고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된다고 공공연하게 알려준다. 로맨틱 코미디는 허구이고 판타지이다. 대중은 이를 향유하거나 비판할 권리가 있고, 영화를 보는 동안 현실로부터 조금 떨어져 도취해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주의가 팽창할수록 이러한 허구가 영화나 소설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주의 사회가 인간이 가진 행복에 관한 소박하고도 보편적인 욕구를 과잉으로 생산한다며 이렇게 지적한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행복의 신화가 평등의 신화를 집대성하고 구체화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행복의 신화화는 민주주의의 이념인 평등의 논리로부터 파생된 과잉생산된 가치에 가깝다고 불 수 있다. 보드리야르를 비롯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같은 68혁명 세대의 인문학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속에 숨어있는 위선과 모순의 꺼풀을 벗겨내려 했다. ● 기념 사진의 형식화는 일반적으로 사진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방증한다. 그래서 기념 사진은 사회적 기호, 공동체의 언어(파롤)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난다가 다룬 기념 사진은 현대사회에서 쉽사리 발견되는 관례적인 통과의례—돌잔치,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와 비관례적, 이질적, 상업주의적인 통과의례—발렌타인 데이, 삼겹살 데이, 자장면 데이, 할로윈 등—의 형식을 과장·비약한다. 특히 초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증가한 신화가 없는 기념일은 누구나 잘 알다시피 판매를 늘리기 위한 기업의 홍보전략의 일부이며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작된 기념일을 따르는 우리의 모습에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허공 위에 지워진 신전의 유혹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일까?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이 현대사회는 행복마저 상품이 된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 행복은 내면의 상태가 아닌 외면을 전시함으로써 완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의 그물망 속에서 탄생한 관광주의는 전지구를 상품화하는 중이며, 현대인은 일상의 매순간을 자축하고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기념한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현대사회의 위태로움과 현대인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에 가깝다.

난다_보신의 날_잉크젯 프린트_100×125cm_2012
난다_행복을 위한 처방전_잉크젯 프린트_125×100cm_2012

4. 난다의 기념 사진은 축하가 아닌 불안을 시각화한다. 가족의 영광스런 미래가 곧 자신의 자아가 된 어머니의 모순은 십자가와 종이 부적의 공생으로 드러난다. 가학적으로 표현된 발렌타인 데이의 기념 사진은 섹시하지만 에로틱하지 않다. 고작 초콜릿에 의지하여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 안타깝다. 구제역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삼겹살의 소비촉진을 위해 자구책을 낼 수밖에 없는 과잉생산의 함정은 지옥을 방불케 하고, 바람빠진 공기인형과 함께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은 현대의 기념일이 얼마나 자위적인지를 지시하는 듯하다. 최근에 나는 집 근처에서 개업을 한 통신중개업 상점 앞에 놓인 도우미 인형을 보고 소스라친 적이 있었다. 도우미 의상을 입고 있는 이 인형은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면서 가게를 홍보하고 있었다. 행복을 꿈꾸는 젊은 창업자의 기대와 고충은 의미보다 목적만을 과시하는 자축과 소음으로 채워지고 마는 게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사진이 기계기술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도구로 이행되고 일상을 기록하는 단계에서 자아를 표현하는 창조적 위상으로 확장되고 진실을 보도하는 매체에서 사회학적 물음을 탐구하는 방법론의 매체를 넘나들면서 사진의 영토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난다의 사진이 가진 흥미로움은 작가 자신이 발을 딛고 살고 있는 현실로부터 길어 올린 성찰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의도적인 조형적 유치함 역시 작가의 삶과 무관하지 않는데, 모던 걸부터 근작까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B급 취향의 이미저리(Imagery)는 유년시절 동대문 근처에서 가업을 하던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난다가 포착하는 주제와 조형성은 베른트 앤 힐라 베허(Bernd & Hilla Becher) 이후 나타난 물질성이 강한 독일 현대 사진의 영향을 받은 최근 사진계의 지형도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사진이 최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우선 크기가 비대해지고 그 결과로 기념비적인 오브제를 닮아 가는 경향은 모든 것을 명품화 하는 세계화의 한 단면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베허 이후의 사진예술은 모더니즘 회화가 걸었던 길을 어느 정도 답습하는 듯 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조각적 회화 또는 사물로서의 회화를 추구한 모더니즘 회화와 마찬가지로 동시대 사진도 매체적 한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조각이 되려는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면서 사진이 곧 스펙타클이 되거나, 아니면『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처럼 이국성을 강조하는 탈영토화 된 경관(view)을 보여주는 정치적 예술의 매체로 고정되는 듯한 극단주의도 포착된다. 이런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으나 한국의 동시대 미술이 지나치게 소재주의나 서구의 조형적 패턴을 모방하는 경우가 잦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작업이 지닌 맹점은 작가 자신의 삶으로부터 너무나도 많이 멀어진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난다의 세계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보다 '지금 여기'라는 동시대적 현상을 기록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노동집약적인 수공예적 접근을 통한 연출 사진으로 제시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 정현

Vol.20120512g | 난다展 / Nanda / 卵多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