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진동하다 Seeing Sound

서정자展 / SUHJUNGJA / 徐貞子 / interactive installation   2012_0511 ▶ 2012_0524 / 월요일 휴관

서정자_소리-진동하다_텍스트, 스피커, 마이크, 센서, 아크릴_가변설치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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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11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기획 / 쿤스트독

관람시간 / 11:00am~ 06:00pm / 월요일 휴관

쿤스트독 갤러리 KunstDoc Galle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Seeing Sound-타자로부터 오는 소리들 - 풍경_언어의 파편과 갇힌 '말/글'들의 해방 ● 관객 A씨가 전시장에 들어선다. 거기에는 풍경 하나가 펼쳐져 있다. 아니 풍경 부스러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천장을 이고 있는 거대한 투명 기둥 아래 꽈리를 틀고 뭉쳐 있거나 어수선하게 펼쳐진 전선들 그리고 폐품의 파편들 같은 크고 작은 스피커들이 바닥에 시체처럼 드러누워 있다. 관객 A씨가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서 맞닥뜨린 장면은 마치 '전쟁터의 버려진 주검들'이 만든 풍경처럼 을씨년스럽다.

서정자_소리-진동하다_텍스트, 스피커, 마이크, 센서, 아크릴_가변설치_2012

발자국을 옮겨가는 관객 A씨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도대체 이게 뭐지?" 이내 관객 A씨는 깨닫는다. 아! 그것이 부서진 '말과 글'들의 파편들이었음을... 그래 그것들은 애초에 주검들이 아니었다. 다만 깊이 잠들어있던 존재들이었다. 관객 A씨는 자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그리고 발걸음을 움직이며 내는 자신의 소음들이 바닥의 스피커를 통해 확산되고 이윽고 거대한 기둥 속에 잠자고 있던 부서진 '말/글'들을 살려내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가 신기한 듯이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며 실험하면 할수록 자신의 행위에 반응하는 스피커의 떨림과 기둥 속 텍스트 파편들의 움직임이 보다 더 활발해짐을 그는 이내 알아차린다. 이윽고 관객A씨는 자신과 더불어 생면부지의 다른 관객들이 아티스트가 초대한 예술적 행위의 '공동 주체'가 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그런데 관객 A씨는 알고 있을까? 그가 갇힌 '말/글'들을 부지중에 해방시키고 있음을... 그리고 그가 살린 갇힌 '말/글'들이 '자신 안의 타자들의 언어'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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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여행1-소리의 시각화 ● 작가 서정자는 무엇보다 '소리'를 시각화하는 조형언어를 통해서 '관객과의 상호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첫 번째 단계는, '사람'의 목소리(voice)나 '사람과 사물' 혹은 '사물과 사물'이 부딪혀 생성되는 소음(noise)를 전시장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채집함과 동시에 바닥의 스피커를 통해서 '진동하는 소리'(sound)의 형식으로 모두 전환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프로그래밍 전략은 깊은 잠을 자던 '말'의 파편들을 생명력의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그래서 목소리나 소음이 소리로 변하는 '전자적 1차 전환'에 이어 내러티브가 파괴된 '말'의 파편들이 '글'로 재생되고 작동되는 '물리적 2차 전환'에 이르는 단계적 프로세스(실상 거의 동시에 작동되지만)는 의미심장한 작가의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즉 '전자적 1차 전환'에는 음운 구조와 순차적 내러티브가 있는 목소리는 물론 태생부터 탈내러티브적인 소음 모두가 동일하게 전자적 음의 진폭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물리적 2차 전환'에는 그 전환된 소리들이 다시금 '말/글'의 파편들을 움직인다. 이처럼 파편적 텍스트가 인쇄된 실제의 종잇조각들을 모터의 힘을 통해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시키는 산포(散布)의 과정은 그녀 작업에서 '소리의 시각화'를 여는 첫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이러한 '전자적 전환→물리적 전환'에 이르는 앞서의 첫 번째 단계를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재생시켜 벽에 투사하는 시각화 과정이다. 즉 꿈틀대는 '말/글'들의 종이파편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과정이다. 그 뿐인가? 이 단계에서 작가는 실사 영상을 렌더링과 매핑(Texture Mapping)으로 구체화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함께 투사한다. 실제 영상과 가상의 영상이 환상적으로 오버랩 되는 이러한 단계는 비로소 서정자의 '소리의 시각화'가 조형적으로 완성되어가는 지점이 된다.

서정자_소리-진동하다_텍스트, 스피커, 마이크, 센서, 아크릴_가변설치_2012

풍경 여행2-논버벌 커뮤니케이션 혹은 비주얼커뮤니케이션 ● 아서라! 속단은 금물. 그녀의 작품 주제인 '소리의 시각화'의 종국적 완성지점은 조형적 언어 자체에 있지 않다. 그녀가 관객 혹은 수용자의 능동적 감상 행위 위에 자신의 작품을 올려놓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용자라는 타자들로부터 오는 소리를 다시 타자들에게 되돌려주려는 시도가 된다. 그녀가 구사하는 소리의 시각화 모두는 각기 다른 미디어들(마이크, 녹음기, 앰프, 스피커, 종이오브제, 모터, 기둥형의 오브제 프레임, 카메라, 실사 영상, 애니메이션 영상, 프로젝터)의 작동을 치밀하게 프로그래밍한 그녀의 과학적 연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소리의 시각화'라는 주제의 이상적 지점은 이러한 미디어들이 연출하는 '다중의 전환 패러다임'에 감정이입하면서 그 미디어들에 의인화의 옷을 입혀내며 자신들만의 의미작용을 성취하는 관객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그녀가 의도하는 바이다. 따라서 영문 주제인 'seeing sound'는 실상 작가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대신 그녀는 'showing sound'라는 자신의 의지를 작품 내부로 깊이 잠입시키는데 골몰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인가? '소리'는 말과 소음을 모두 포함하고, 그녀가 탐구하는 '소리의 시각화'는 빠롤과 랑그, 텍스트와 이미지를 포함하면서 언어와 비언어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아우른다. 즉 'showing sound'를 시도하는 그녀의 시청각적 커뮤니케이션(audiovisual communication)이란 수용자의 실제적 반응을 요청하는 언어적 커뮤니케이션(verbal communication)과 수용자의 잠재적 반응을 염두에 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을 지속적으로 오고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녀의 작업에는 '자신 안의 타자들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와 그것을 시각화하는 시각적 전회(visual turn)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서정자_소리-진동하다_텍스트, 스피커, 마이크, 센서, 아크릴_가변설치_2012
서정자_소리-진동하다_텍스트, 스피커, 마이크, 센서, 아크릴_가변설치_2012

풍경 여행 3-'에크리튀르'라는 화용론적 의미론 ● 관객 A씨가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간다. 아! 거기에는 두 개의 의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놓여 있다. 관객 A씨는 한 의자에 앉아 나머지 의자를 바라본다. 익명의 관객 B, C, 혹은 D씨가 앉을 의자! 두 의자 사이 바닥에는 천장으로부터 투사되는 텍스트들의 웅얼거림이 내려앉는다. 그것은 텍스트 파편들이 눈발처럼 휘날리는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거기에는 하나의 텍스트가 생성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텍스트가 소멸하기를 거듭하는 일련의 사건, 즉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é)이 꿈틀거린다. 그것은 마치 데리다(Derrida)의 살아 꿈틀거리는 해체적 텍스트인 에크리튀르(écriture)처럼 보인다. 아! 그것은 하나도 같지 않은 '말/글들'을 생성하는 차이들의 무수한 반복이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언어 이상이자 동시에 더 이상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그가 텍스트 그 자체를 인용의 반복이요, 각주들의 짜깁기로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정자는 가독성 없는 파편적인 텍스트들의 복수성들(multiplicités)로 생성과 소멸, 집산과 해체를 거듭하는 자신의 텍스트 혹은 에크리튀르를 창출해낸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개념과 담론들 안에서 의미가 아직 미정인 상태로 남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생산성의 운동 자체이다. 그래서 그것은 너의 혀로 인한 내 마음의 상처가 울부짖는 주절거림인 동시에 그것을 치유하려는 그(녀)의 따스한 위로의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서정자의 이번 전시는 익명의 관객 A씨의 눈과 귀를 빌어 또 다른 익명의 관객 B씨 혹은 C씨와 벌이는-코드 매기와 코드 풀기를 지속하는-비주얼커뮤니케이션 놀이라 할 것이다. 동시에 그것의 해체적 유희에 관한 묵직한 철학적 의미를 산뜻한 미술의 언어로 곱씹어보는 '화용론적 의미론'이기도 하다. 꿈틀대는 질긴 생명력의 '그 무엇'으로 말이다. ■ 김성호

Vol.20120511i | 서정자展 / SUHJUNGJA / 徐貞子 / interactive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