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개의 사과

박영근展 / PARKYOUNGGEUN / 朴永根 / painting   2012_0509 ▶ 2012_0527

박영근_분노하다 Get angry_종이에 목탄_100×7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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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_10:00am~09:00pm / 토_10:00am~06:00pm / 일_11:00am~06:00pm

금산갤러리 KEUMSAN GALLERY 서울 중구 회현동 2가 87번지 쌍용남산플래티넘 B-103호 Tel. +82.2.3789.6317 www.keumsan.org

숨은 이미지의 탐험가, 사과의 역사를 발견하다.평면에 숨은 여러 층위 최근 그리기와 보기는 평면성이란 회화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은 채, 다시 이야기와 주제를 회복한 특이한 형태를 잉태했고, 작가의 노동력은 새로운 미덕으로 보상 받는 듯 보인다. 자율성의 완전한 복귀는 아니지만, 담론이 생성될 수 있는 예술 매체로서의 위상 획득과 문학, 정치, 그리고 사회와의 연결이란 이질적 결합은 평면작업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형식의 새로움을 위한 진화론적 노력대신 다양하고 복합적인 내용으로 통합적인 밀도를 높이는 회화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박영근_놀라다 Be astounded_종이에 목탄_100×70cm_2012

박영근 작가는 한국 회화의 다양성속에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그는 화면에 그리기와 벗겨내기의 상반된 행위를 적용시키고, 여러 겹의 레이어 속에서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전기 공구(샌더)나 페퍼를 이용, 색을 벗겨냄으로써 직접적인 노동의 장으로서의 화면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마치 조각처럼 캔버스 위의 두께, 물적 양괴를 파고드는 특이한 방식으로 이미지들은 안료의 층위위로 섬세하게 부상하면서, 종교, 역사, 테크놀로지, 그리고 개인의 주변 등 다양한 주제를 보여준다. ● 캔버스 위 물감은 조각가의 대리석처럼, 깎이고 사라지는 '부재'로써 이미지를 드러낸다. 박영근 회화는 더함으로써 이미지가 형성되고 주제를 전달했던 전통적인 도그마를 해체하고, 더함과 빼기라는 상반된 방식이 공존함으로써 이미지가 스스로 발견되는 듯한 방식을 부각시킨다.

박영근_액자에 갇힌 사과 An apple is locked in frame_캔버스에 유채_80×73cm_2012

이야기와 이미지의 결합과 변형 ●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사과에 집중해서 전시를 구성한다. 사과는 특이하게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존재해왔다. 인류의 상징적 시작을 보여주는 창세기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많은 경우 사과로 묘사되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서 인류는 저주와 함께 구원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사과는 인류의 죄의 시작이자 동시에 구원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 된다. ● 뉴턴은 사과의 낙하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닫게 되고,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과 인생의 허무를 넘어서서, 지구의 멸망이 도래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세잔은 사과를 그리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부터 회화적 비구상의 가능성, 즉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원형의 구를 발견해냈다. 결국 세잔의 사과는 미술에서 추상의 도래를 가능하게 했다.

박영근_아내와 나 My wife and myself_캔버스에 유채_116.8×195cm_2012

작가는 자신의 가족이 사는 평창동 일대가 과거 사과냄새가 진동했던 곳이라는 역사적 고증에 근거해서, 사과를 한국에 처음으로 수입했다는 안평대군, 못생기고 팔기 어려운 상처 난 사과를 주로 샀던 박수근 등 한국적 맥락에서의 사과에 얽힌 인물들을 그렸다. ● 사과로 대표되는 21세기 아이콘, 스티브 잡스, 에덴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생존 공간으로 내쫓긴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과 달콤한 열매의 유혹으로 둘러 쌓인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작가의 자화상은 실은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누드로 표현된 작가 부부의 초상화는 사과를 통해 결핍을 거부하는 심리적 열정,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함께 유혹 앞에 무기력한 순수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부터 실존적으로 나약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까지 작가에게 사과는 사람과 사회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로서 특별하게 작동 하고 있다.

박영근_매달리다 Hang on_캔버스에 유채_116.8×240cm_2012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체적인 하루의 일과와 연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좀더 거대한 상징성을 담보하기도 한다. 그것이 일상적이든, 상징적이든 작가에게 사과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다. 작가는 문자를 그림 아래 배치하는데, 글은 이미지와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텍스트는 그림처럼 강력한 기호로 작용하지만, 오히려 '그려진' 글자들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림 안에 통합된다. 기호의 집합체로서 그의 작품 속 사과와 인물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이미지의 연속으로 풀어지면서 해석되어진다. 이런 이미지 연관성의 시각적 함축을 내포한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마치 자신만의 사과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깨닫기를 촉구하는 듯 하다.

박영근_열 두개의 사과 Twelve apple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기호 속 이미지들의 연속성, 회화의 리듬으로 재현되다 ● 파편처럼 보였던 그림의 일부는 작가의 일상과 사고 과정의 증거로, 시간적 흔적들의 층위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기록적이지만, 작품은 완전히 물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사과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 사과는 가장 보편적인 식재료로서 특정한 계층이나 취향과 크게 상관 없는 과일이다. 동시에 역사, 종교, 철학, 문화 속에서의 주요 키워드의 탄생과도 관련 있다. 심오한 철학이자 가장 가벼운 일상의 양면을 보여주는 복합적 의미체로서, 미술과 문화 안에서도 같은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하겠다. ● 작가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그의 종교, 예술적 감성이나 믿음, 기억 등을 사과라는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인 서사는 곧 작가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의 화면 안 형상의 윤곽선은 그런 작가의 심리적 파장처럼 지극히 율동적이다. 작가의 사적 영역 안에서 생명력을 얻은, 그만의 계보학을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의 관찰과 표현의 은유적인 결과인 것이다.

박영근_열네개의 사과 Fourteen apple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층위를 벗겨내던 것에서 입히고 더하는 것으로 ● 과거에 그의 작품이 물리적 층위의 이탈 - dislocation- 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내용과 이질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적 문구의 결합으로 층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옮겨왔다. 그의 이야기는 마그리트의 언어작품들처럼, 언어기호와 시각기호 간의 충돌과 합의, 분절과 보완의 긴장을 제공하면서 기호로서의 이미지의 실체를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주제가 갖는 무게도 덜어내지 않는다. ● 박영근 작가는 발견의 순간, 영감의 획득을 얻게 되는 매개체로서 사과에 접근한다. 그의 시도는 캔버스 위의 '부재를 통한 표현'과 문학적 이야기의 결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온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내면과 주변의 이미지들이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은 그 기호적 특성의 분명함 때문으로 보인다. ● 작가의 서사(敍事)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시대의 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그들과 섞임으로써 의미를 생산하는 동시에 그것을 잃을 수 있는 지점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중적 단면의 교차점에서, 작가의 선택은 이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기술과 그의 신념으로 확대 또는 변형 될 것으로 보인다. ■ 진휘연

Vol.20120510k | 박영근展 / PARKYOUNGGEUN / 朴永根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