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2.394.3631 www.gaainart.com
편재하는 현대적 신화에 대한 사진적 비판 ● "나는 언젠가 이발소에 갔었다. 거기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파리-마치(Paris-Match)』라는 잡지 한 권을 내밀었다. 그 잡지의 표지에는, 프랑스 군복을 입은 흑인 청년이 눈을 약간 치켜 뜬 채 주름진 프랑스 삼색 국기를 주시하면서 군대식으로 경례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순진하건 순진하지 않건 간에, 나는 이 표지의 이미지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며, 프랑스의 모든 자손들은 인종 차별 없이 프랑스 국기 아래에서 평등하게 군에 복무한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유명한 그의 저서 『신화론(Mythologies)』(1957)에서 오늘날 무수히 많은 사회 현상 가운데 작동하는 '현대적 신화'를 발견하고 '탈신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앞서 진심을 다해 경례를 올리는 흑인 청년의 이미지는 사실상 프랑스 제국주의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는 일종의 신화로서, 우리는 그러한 '외연'과 그 안에 감춰진 '함의'를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영국 사진작가 베로니카 베일리(Veronica Bailey)의 신작 「현대 신화(Modern Myths)」(2011)는 이러한 바르트의 신화론과 밀접히 닿아 있다. 베일리는 현존하는 인류의 모든 기원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대표적인 현대 신화인 미디어, 그 중에서도 전통적 미디어인 신문으로 재해석한다. 작가가 포착한 사진의 피사체는 신문을 말아 쥐었을 때의 단면들로, 신문의 종이색, 매수, 말아 쥔 강도나 모양 등에 따라 그 이미지 또한 달라진다. 그 결과 각기 다른 열 두 신문의 이미지는 상징하는 바가 각기 다른 올림포스의 열 두 신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검은색 배경 가운데 놓인 신문들은 그 자체로 '정물화'임에도 이미지와 짝을 이루는 각 신의 이름을 가리키는 제목과 함께 일종의 '초상화'로 보여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아폴로, 아레스, 아르테미스, 아테나, 데메테르, 헤파이스토스, 헤라, 헤르메스, 헤스티아, 포세이돈, 제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모든 기호에서 기표와 기의를 연결하려는 우리의 해독적 습관은 자연스럽게 신문의 이미지와 각 신의 상징적 의미를 연결시키고, 그러한 노력은 때로는 어느 정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여러 겹의 종이들이 풍성하게 겹쳐져 부드러운 이중의 곡선이 강조된 이미지는 여성, 결혼, 모성의 여신인 헤라이며 종이의 홑겹이 아닌 스테이플러로 묶은 부분이 드러나 두텁고 강한 선들이 강조되고 안쪽에 붉은 색이 보이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미지와 텍스트의 대응은 작가의 주관적인 인상과 직관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마치 언어의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관계처럼 전적으로 임의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를 왕래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현대 신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유희적 방식일 수 있으나 작가의 본질적인 의도는 아닌 셈이다.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기표와 기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하나의 '신화'로 보고 암묵적으로 비판하려는 쪽에 더 가깝다.
본격적으로 베일리가 고대 신화를 끌어들여 전달하려는 신문에 대한 탈신화의 시도는 두 가지 층위에서 일어난다. 첫째, 신문을 '읽을 수 없는 텍스트'로 제시함으로써 무력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신문의 매체적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를 읽을 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미디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리라는 보편적인 믿음을 비판한다. 우리는 오늘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접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상 미디어의 발달은 자본이나 권력과의 결탁으로 인한 왜곡과 더 많은 조작을 수반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수많은 현상들 이면에 우리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변한다. 한편, 베일리의 『현대 신화』가 구사하는 탈신화의 두 번째 층위는 신문을 '물질적 본성으로 직면'하게 함으로써 미디어의 절대적 권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종이의 질감과 신문 특유의 가장자리 마감 부분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는 고화질의 클로즈업 이미지를 통해 신문이란 하루(또는 한 주)의 소식을 전달하는 용도가 다 하면 폐기되는 값싼 종이일 뿐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미디어의 신화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 『현대 신화』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열두 신 외에 또 다른 이미지, 즉 그들의 신전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올림포스」라는 제목의 사진에 있다. 올림포스가 대신한 그리스 신화의 열세 번째 신의 자리는 원래 지하세계 왕좌에 머물러 있던 '죽음의 왕' 하이데스의 것이다. 베일리는 이 '죽음의 자리'를 9.11 테러 사진이 1면에 실린 『파이낸셜 타임즈』로 대신하고 있다. 유일하게 내용(텍스트가 아닌 이미지지만)을 볼 수 있는 「올림포스」는 나머지 열 두 이미지를 대신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 맨해튼, 그 중에서도 증권가 한 가운데 자리한 상징적인 건물에 대한 공격으로서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공격이자 완전무결해 보이는 자본주의 신화의 파열을 함의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가 폭발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여타 신문의 이미지와 달리, 건물이 붕괴되어 사라지고 없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폭발 사진을 접할 때의 비현실성과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난 뒤 사후적 지표(index)로서 사건을 받아들이게 하는 독특한 경험을 유발한다. 베일리는 그 이미지가 "죽음을 '하나의 공간(a space)'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그 열세 번째 사진을 신이 아닌 신이 머물렀던 장소로 대치하였을지 모른다. 사실상 이러한 '부재의 현전'이야말로 다름 아닌 신화의 본성이다. 작가가 인상 깊게 기억하는 색이 바라고 신체 일부분이 훼손된 고대 그리스 조각의 모습은 이러한 신화의 본성을 잘 말해준다. 현재의 상태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신화의 신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현전하는 것처럼, 역사적인 발생의 기원과 무관하게 지금의 그것을 자연스럽게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신화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이다.
『현대 신화』와 유사한 시기 제작된 베일리의 또 다른 사진연작 「헤르메스 베이비(Hermes Baby)」(작품제목인 '헤르메스 베이비'는 히긴스가 당시 전장에서 사용한 타자기 모델명이자, 베일리가 해당 작품에 사용한 서체인 '베이비 헤르메스'와도 관련된다.)(2011)는 대표적인 현대 신화 중 하나인 전쟁을 주제로 한 작업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라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감행했고, 다수의 국민은 나라가 내세운 전쟁의 공익성과 정당성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전쟁의 신화는 실질적인 테러와 무관한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신화로서 유지되어 왔으며, 오늘날 단순한 무력충돌뿐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제국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일정한 신화로서 작동하고 있음에 우리 모두는 전쟁의 신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헤르베스 베이비」는 최초의 여성 퓰리처 상 수상자인 미국인 종군기자 마그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한국전쟁의 경험을 적은 책(마그리트 히긴스, 『한국 전쟁: 한 여성 종군기자의 보고서(War in Korea: The Report of a Woman Combat Correspondent)』(Doubleday & Co, Inc, New York, 1951))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두 세 단어의 구절을 발췌하여 '베이비 헤르메스' 라는 특정 서체로 적고, 글자가 적힌 디지털 이미지를 35mm 아날로그 필름으로 전환해 암실에서 수작업으로 현상하고 명함크기의 1950년대 빈티지 인화지에 인화하였다. 그리고 넉 장의 사진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장방형으로 하나의 액자에 배치하였다.(「헤르메스 베이비」는 다음과 같이 넉 장의 사진이 하나로 묶인 네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그룹 1]: 「얼어 죽은(Frozen Dead)」, 바닐라 아이스크림(Vanilla-Ice-Cream), 녹색 병사(Green Soldiers), 웅장한 지옥(Gallant Hell), [그룹 2]: 「뒤돌아 도망치라(Turn and Bolt)」, 「묘지 같은 참호(Graveyard Foxholes)」, 「완벽한 표적(Perfect Target)」, 「가망 없는 승산(Hopeless Odds)」, [그룹 3]: 「쇄도하는 공포(Rush of Fear)」, 「붉은 껍데기(Red Shells)」, 「악몽 같은 샛길(Nightmare Alley)」, 「가혹한 진실(Bruising Truth)」, [그룹 4]: 「위험 가능성(Possible Danger)」, 「보랏빛 심장(A Purple Heart)」, 「냉혹하게(In Cold Blood)」, 「반으로 찢어진(Blew in Half)」.) ● 이 사진들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작가 자신의 이전 작업은 물론 여타의 사진들과 차별화된다. 첫째, 카메라 촬영이 아닌 빛의 노출을 통해 상을 얻는 고유의 제작 방식이다. 카메라 촬영에 작가의 제작 행위가 집중되는 대부분의 대형 디지털 사진과 달리, 이 소형 아날로그 사진은 - 레이요그램이나 솔라리제이션 등 빛에 노출하여 상을 얻는 일부 전통적인 사진기법들처럼 – 필름에 상을 안착시키고 인화지에 이미지를 얻어내는 후반 작업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이 작업에서 작가는 1950년대 기록된 전쟁에 관한 텍스트를 당시 생산된 인화지에 재현함으로써 내용과 물질의 양 측면에서 과거에 대한 현재의 시대적 개입을 시도한다. 사실상 이 작품에서 작가의 제작행위는 내용상 창작이 아닌 발췌이며, 형식상 촬영이 아닌 필름전환, 현상, 인화라는 점에서 소극적인 방식에 국한된다. 그러나 작가의 현재적 개입으로 인해 과거 전쟁의 내용이 다른 맥락에서 전달되고 과거 생산된 종이가 오늘날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 텍스트와 종이는 분명 과거에 발생한 역사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현전한다는 점에서 신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 맥락과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탈신화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제작방식보다 중요한 「헤르메스 베이비」의 차별점은 사진의 피사체(subject)가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즉 도상기호가 아닌 문자기호가 그림이나 사진에 재현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은 관습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닮음을 전제로 한 도상기호와 달리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인 문자기호는 지시체가 지닌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문자기호는 그 의미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달라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헤르메스 베이비」의 경우 베일리가 선택한 '녹색 병사', '보랏빛 심장', '붉은 껍데기' 등의 색과 관련된 표현이나, '뒤돌아 도망치라' '악몽 같은 샛길' '묘지 같은 참호' 등의 상황 묘사는 보는 사람에게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심상은 직접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보다 훨씬 폭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한다. 베일리는 이러한 텍스트의 효과를 인화지의 형태와 결합하여 배가시킨다. 인화 과정에서 끝이 제멋대로 말려들어간 종이의 모양은 그것이 단순히 종이가 아닌 깃발이나 손수건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종전을 알리는 흰 깃발이나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를 보내면서 가족이 흔들었을 손수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 자체 특정한 정서를 자아내는 일종의 오브제로서 이 사진들은 전쟁과 관련된 텍스트와 겹쳐져 더욱 다양한 층위의 심상과 상상력을 자아낸다. 흥미로운 것은 베일리가 선택한 텍스트의 내용과 서체의 형태, 그리고 그것이 흰 배경 안에 고립되어 제시되는 방식이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가벼운 수사적 표현으로 희석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베일리가 전쟁의 탈신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공유한 영예와 자만감의 집단의식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부의 입장을 개인적으로 내면화한 허위의식에 불과함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상 그 젊은이들은 그러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쟁에 충실히 임할 뿐이라는, 이른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신화를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얼어 죽은'이라는 구절 바로 옆에서 발견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주는 상충적 느낌은 그야말로 이러한 전쟁의 신화를 대변한다. 바르트는 "신화는 곧 발화(speech)"라고 말한다. 신화란 특정 대상이나 소재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모든 "의사소통의 체계"와 "의미작용의 양식"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바르트는 신화가 "역사에 의해 선택된 발화"인 점을 강조한다. 베일리가 지금까지 사진의 소재로 삼아 온 것들, 즉 역사적 인물의 서가에 꽂힌 책이나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최근의 특정 순간을 기록한 신문이나 과거 전쟁의 경험을 적은 텍스트는 모두 '역사에 의해 선택된 발화'와 관련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것들 대부분이 발화의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시각적 기호로 제시되거나, 발화의 내용을 드러낼 때조차 전혀 다른 맥락의 의미로 전환되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관된 방식은 텍스트와 이미지, 문자기호와 도상기호의 관계에 관한 사진적 탐구는 물론, 현대적 신화의 편재와 그러한 신화의 허상을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이야말로 바르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과이며, 베일리는 바르트가 이론을 통해 행한 그 일을 예술이라는 다른 언어로 성취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세계는 명료하고도 풍요롭다. ■ 신혜영
Vol.20120510a | 베로니카 베일리展 / Veronica Bailey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