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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토요일_09:30am~07:00pm / 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82.720.1524~6 hakgojae.com
망각기계로 죽다, 망각기계로 살다 ● "과거는 죽지 않는다. 과거가 되는 일조차 없다. The past is never dead - it is not even past"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 '애국의 길'을 걸어 '망각된 기계'가 되다. 이 사진은 슬프다. 선글라스 너머로 렌즈를 응시하는 저 노인은 가히 살아 있는 슬픔이라 할 만하다. 빳빳하게 다린 그의 군복과 자랑스럽게 달려 있는 그의 계급장, 꾹 다문 그의 입술과 주름진 그의 턱이 이 사진의 슬픔을 웅변한다. 그는 왜 이런 절망적인 센스의 옷을 입고 있을까. 이 옷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왜 거리에 나와 있을까. 자신이 이곳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은 지금과 같은 과잉 근대화된(over-modernized) 국민 국가를 만드는 데 그의 인생을 얼마간 잘라서 썼을 것이고, 그는 고통스럽게, 혹은 기쁘게 자신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 당연한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 하지만 바로 그 믿음이 그를 외롭게 만들 것이다. 그의 고통과 기쁨, 긍지와 분노는 전혀 공유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더라도, 그의 언어는 정밀한 담론의 형식으로 정리되거나 유의미한 사회적인 파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점점 강퍅해질 것이고, 그들은 결국 한 장의 사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물성의 인화지에 프린트되고, 보존 처리된 뮤지엄 매트 보드와 원목 액자로 마감되어 세계를 떠돌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상한 박물지의 일부가 되어 벽에 걸리게 될 것이다. 변방의 '예술' 사진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 노순택의 사진은 백 년 전 프란츠 카프카가 쓴 문장을 닮았다. 카프카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묘사한다. 카프카처럼 초현실적이고 어딘가 뒤틀려 있다. 숨결이 닿을 만한 가까운 곳에 어떤 섬뜩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등장인물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의 이유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질서를 꿰뚫어 볼 능력도 없고, 탈출하는 방법도 모른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피사체였던 노인이 점점 기력을 잃고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이 사진은 죽지 않은 채로 돌아다닐 것이다. 한번 만들어진 사진은 이미 지시하는 대상에서 독립된, 자신만의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육체와는 별개로, 사진 속 노인의 육체는 사진 속에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에 방치된 낡고 육중한 기계처럼, 조금씩 탈색되고 풍화되며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무감각하듯, 우리는 도대체 그의 삶이 지닌 서사에 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노인은 어떤 공감도 얻지 못한 채, 사진에 갇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2. '망각기계'가 되어 '비상국가'에 살다 ● 다시 사진 속 노인의 옷과 깃발을 바라보자. 그것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사실 노인은 잊히고 싶어하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지층 속에 조용히 파묻히고 싶은 사람이 저렇게 처절한 타이포그래피로 온몸을 두르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노인이 의도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에 자신이 거할 자리를 만드는 일인 듯하다. 그는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금의 대한민국과 우리의 삶이 가능했음을 각인시키고, 우리가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 과거란 참으로 먹먹하고 거대한 시공간이어서,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인이 바라는 방식대로 지금 한국의 현대사를 규정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즉, 한국은 전후의 폐허에서 '공산주의의 위협'과 맞서 싸웠고, 찬란한 경제성장과 굳건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카리스마적이지만 소탈한 정치 지도자와, 뼈를 깎는 고통으로 험난한 세월을 버텨낸 노인과 같은 이들이 있었다. 길은 험했고 덜컹거렸으나, 이는 '선진국'에 도착하기 위해 예비된 사소한 고난 같은 것이었다. ●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과거를 영광스럽게만 재구성한다면, 도저히 재현될 수 없는 역사의 순간들이 있다. 또한 구석에 서서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기억들이 있다. 예를 들면 80년 5월, 광주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러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선진국을 향하는 위대한 도정'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을 도대체 속 시원히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 동족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었는가, 아니면 북한의 사주를 받은 일부 공산주의자들에게 촉발된 우발적인 폭동이었는가. 혹은 국가가 국민에게 가한 부당하고 일방적인 학살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불미스러운 사고'였는가. 만약 광주를 학살이나 항쟁으로 규정하는 기억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면, 어떤 이들이 믿고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모욕당하게 될 것이다. ● 이런 지점에서 기억의 투쟁이 생겨난다. 깃발을 들고 군복을 입은 저 노인 역시 전투에 참전하는 군인이며 전사다. 그에 맞서는 이들도 흰옷을 입고 얼굴에 회칠을 한 채 거리에 나온다. 거리는 기억의 전쟁터다. 동시대는 수많은 과거들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전장이다. 노인과 젊은이들, 남자와 여자들, 정치인과 활동가들, 좌파와 우파들, 전경과 민간인들이 그 싸움터에 소환된다. 싸움에서 승리한 기억은 우리 사회의 공식적 기억(official memory)이 되어 재생산될 것이고, 패배한 기억은 몇몇 개인의 기억으로 전락하여 비루하고 초라하게 늙어갈 것이다. ● 노순택은 이 지루하고 무망한 기억의 싸움을 끈질기게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는 거리에 나와 악을 쓰는 이들의 사진을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찍은 사진가일 것이다. 노순택은 거리에 나온 노인과 젊은이에게, 남자와 여자에게, 좌파와 우파에게, 전경과 민간인에게 바싹 붙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노순택이 사진으로 포착한 세상은 괴이하고 뒤틀린 곳이며, 그의 프레임에 걸린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들은 그들을 거리에 나오게 한 이들은 과연 누구이고,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노순택의 세계관은 카프카와 닮았다. 하지만 노순택은 카프카와는 달리 등장인물이 겪는 고통의 이면에 있는 것이 '존재의 부조리'나 '인간 운명의 불안' 같은 모호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가 생각하는 고통의 원인은 좀 더 단순하고 명확하다. 우리가 아픈 것은 우리가 '비상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뒤틀려 있는 것은, '애국의 길'을 걷는 '망각기계'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망각기계'가 동시대에 함께 살면서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3. 사진 뒤에 숨지 않고 죽음을 바라보기 ● 하지만 노순택의 사진에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는 노순택이 사진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 방식과 비교해 본다면 사진에 대한 노순택의 '불신'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사진의 힘'을 믿는다. 때로는 그것을 '기록의 힘'이나, 심지어 '진실의 힘'이라 부를 때도 있다. 그들은 세계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자신의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고, 타인의 삶에 존재하는 참혹함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들고 타인의 삶에 뛰어든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세상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매체다. 진실이 알려진다면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굳센 믿음 위에 그들은 서 있다. ● 놀리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시에라리온에서, 소말리아에서, 콩고에서, 보스니아에서, 그리고 아부 그라이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네이팜탄을 맞고 울부짖으며 달리는 소녀를 찍은 닉 우트의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운동은 그렇게 거세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단과 비아프라의 어린이들이 겪는 참혹한 현실을 찍은 사진들은 실제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갑을 열게 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어떤 위대한 예술도 그런 일을 해낸 적은 없었다. ●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선의를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롯한 삶을 사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진가들이 즐겨 의지하는 휴머니즘을 값싼 동정심으로 매도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가 케빈 카터는 엎드려 있는 수단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독수리의 사진을 찍은 후 나무 밑에 앉아서 어린 계집아이처럼 울었고, 서른세 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가들은 고통받는 '피사체'를 안전한 곳에 있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각적 충격은 필요하다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피사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완성도에 달려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 그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 옳다. 실제로 더 잘 찍힌 사진은 보는 이의 눈을 더욱 사로잡곤 하니까. 하지만 이미지의 참혹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게 마련이고, 동정을 얻기 위해 사진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의 비참함을 보여주려 노력하게 된다. 고통의 이미지가 거래되는 전 지구적인 시장이 이미 구축되어 있고, 우리는 쇼핑을 하듯이 수많은 사진 중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골라서 지갑을 열거나 ARS 전화번호를 누른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찍은 최근의 사진을 본다면, 베트남전이나 한국전쟁의 사진은 그리 참혹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들은 더욱 앙상한 갈비뼈와 잘린 손목을 우리의 눈앞에 들이대며 경쟁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참혹한 일이다. ●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진정성'은 윤리의 영역까지 진격하지는 못했다. 사진 이미지 속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고 슬퍼서, 안전한 곳의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일이라는 것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한다. 사진 속 현실의 동시대성으로부터 우리를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눈물과 분노다. 우리는 참혹한 현실에 화를 내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위무하고, 현실에서 등을 돌려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 광주가 재현되는 방식 역시 대개 그런 식이었다. 대부분의 사진과 영화, 소설에서 잔혹한 계엄군과 인간미 넘치는 시민군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광주의 기억은 일정 부분 과잉 재현되었고, 또 일정 부분은 결핍되었다. 우리는 죽어가는 순박한 시민군과 착한 유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먹먹한 마음을 안고 영화관 밖으로 나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사실 우리의 분노와 눈물은 광주가 지닌 역사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광주의 학살과 그 해부학적 참상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대신, '적당히 참아낼 수 있는 정도'의 기억을 선택한다. 즉 이것들은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만든다든가, 광주에서 죽은 '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것들이다. 사실 이런 식의 말은 '한국의 현대사는 선진국에 도달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었다'는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지닌다. ● 우리의 기억은 취약하고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기억을 바꾸거나, 다른 기억으로 대체할 수 있다. 니체는 기억은 곧 망각의 다른 의미라고 썼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인정하겠다는 말이고, 이는 그에 대한 다른 해석을 배제하겠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분히 광주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뭔가 더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 의 기억은 주로 사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을 '기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사진을 비롯한 미디어 환경은 우리의 '현실'을 구성한다. 보드리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완전히 정보화된' 세계에 있다. 우리는 굳이 거칠고 위험한 현실 그 자체를 직접 만날 필요가 없다. 우리를 둘러싼 사진 이미지가 단순한 기억의 도구가 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새로운 기억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주의 사진 몇 개를 선택한다면, 이제 그 사진이 새로운 광주의 기억을 생산하여 우리에게 공급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이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좀처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 사실 사진이 재현하는 것은 사물의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지닌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이는 사진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독특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힘은 불완전하지만 터무니없이 강하다. 우리는 도무지 사진을 의심할 줄 모른다.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광주를 역사적 비극으로 기억하겠다고 결론짓는 순간, 우리는 그 결론에 적합한 사진들을 찾을 것이다. 사진 역시 우리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 공범인 것이다. ● 노순택이 사진을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홍보 사진이건 좌파 다큐멘터리 사진이건, 우리를 타인의 죽음 앞에서 쉽게 도망칠 수 있게 하는 어떤 사진에도 윤리적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순택은 우리가 분노와 눈물로 향할 여지를 열어두지 않는다. 노순택이 찍은 사진들이 답답하고 괴이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는 도대체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4. 현실 세계에서 무한회귀하는 지옥도 ● 하지만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진들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2012년이고,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한 기억의 싸움은 1996년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공식적으로' 종전된 바 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고, 정치인들은 매년 망월동에서 고개를 숙인다. 죽은 이는 망각되었고 생존자들에게는 전리품이 배분되었다.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비로소 애도(trauer)가 허락되었다. 당시 '일부' 유족들이 격렬하게 항의했었고, 가장 참혹한 일을 겪은 이들의 기억은 은폐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십오 년 이상 지난 일이다.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의 죽음은 "조국의 민주, 자주, 통일을 위한", "이 땅의 역사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것이 5월 광주에 대한 '공식적' 기억이다. 어지간한 이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대해 반박할 이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면 이제 와서 노순택이 굳이 『망각기계』를 들고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는 이제 와서 광주 망월동의 구묘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는가. 2012년 지금, 망월동 구묘역을 다시 사진 찍는다고 해서 광주에 대한 공식적 기억은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자기 양심을 위한 단순한 마스터베이션은 아닌가. 분명히 어느 정도는 그럴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망각기계』 연작이 노순택 개인의 경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한국 사진사(史)에서 매우 무거운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이 작업이 사진의 구조를 탐색하는 질문을 쉴새없이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망각기계』 작업에는 몇 가지의 서로 다른 성격의 사진들이 섞여 있다. 우선 노순택이 망월동 구 묘역에 방치된 영정 사진들을 다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는 사진의 훼손된 모습과 희생자들의 육체가 겪은 '해부학적' 참상을 교묘하게 중첩해서 보여준다. 사진 표면의 감광유제는 물에 불었다 햇빛에 마르기를 반복해서 조각조각 갈라지고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구멍이 뚫리거나 녹아내린 부분도 있다. ● 사진을 다루는 관습적인 방법으로 이 사진들을 분류하기는 어렵다. 이 사진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순수 사진'의 계보에 속하지도 않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분류에 거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이 사진의 유족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아물지 않은 슬픔을 찍으려 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묘역의 관리 상태를 고발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희생당한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과연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이런 사진들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정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오히려 탈정치적이다. 질문들의 답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답이 정해져 있는 어떤 질문도 예술이 아니다. ● 노순택의 사진들은 태연스럽게 우리에게 속임수를 걸어온다. 마치 자신들이 반쯤 썩은 몸을 지닌 망자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단지 방치된 사진을 찍은 사진일 뿐이다. 그 사진들에 끌려가서 망자들의 육체가 당했을 참혹한 일들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그 사진들에게 조금쯤 속은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망각기계』 연작을 구성하는 모든 사진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역사적 사진인 것처럼 행동한다. ● 하지만 그 사진들이 지닌 강렬한 죽음의 분위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것이 작업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노순택의 사진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망월동 구묘역의 영정사진들이다. 또한 그 영정사진들이 가리키는 것은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하기 전의 인간들이다. 사진이 만들어질 당시의 그들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운명을 몰랐을 것이다. 이 사진에 있는 날카롭고 불길한 느낌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들이 이 사진들에 묘한 역사적 긴장을 부여한다. ● 또한 사진이라는 평면적인 대상을 복사하듯 다시 촬영한다고 해서, 노순택 특유의 예리한 미감(美感)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매체 기자로 일했던, 게다가 지금도 수잔 손탁과 존 버거를 읽으면서 시선의 정치와 사진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는 이가 한국의 사진 역사상 가장 독특한 미적 감각과 윤리적 집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 사진들을 더욱 기괴한 긴장감을 지니게 만든다. ● 영정 사진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 스냅 사진들 역시 괴상하다. 노순택은 여기서 『비상국가』『좋은, 살인』 연작에서 보여주었던 스냅처럼 압도적으로 빠른 셔터 포착이나 정교한 프레이밍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망각기계』의 사진들은, 훨씬 음산하고 괴이하다. 도대체 그들이 어느 편인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혹은 방관자인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이 사진들은 마치 현세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건조한 지옥도처럼 보인다. 지옥의 특징은 끝나지 않고 영겁 회귀한다는 것인데, 이 사진들 역시 그러하다. ● 또 이 사진들은 분열적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작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노순택이라는 한 인간 안에는 몇 명의 서로 다른 존재가 있다. 우선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지금도 끊임없이 분노하는 활동가 노순택이 있다. 그는 우리 삶의 이면에 여전히 5월 광주가 죽지 않고 도사리고 있다고 믿으며, 학살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날렵하고 빠르게 카메라를 다루며 사진을 찍는 단련된 현장 사진가 노순택도 있다. 반면 사진을 끊임없이 불신하며, 카메라의 고삐를 틀어쥐고 그것에 끌려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소심한 노순택도 있다. 그러한 긴장감은 사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 노순택은 분열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셋 중 하나만 포기하더라도 그는 지금보다는 훨씬 편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소심한 노순택을 포기하면 뛰어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것이고, 현장 사진가를 포기하면 시각이론에 대한 나름의 소양을 지닌 활동가가 될 것이다. 활동가를 포기하면 괜찮은 예술 사진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순택은 아마도 그럴 정도로 융통성이 있는 이는 아닌 듯하다. 그는 분열된 채로 계속 고민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가볍고 세련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이는 윤리와 정치, 역사적 문제 같은 것인데, 어느 것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노순택의 사진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을 통해 과거를 서술하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식의 통념에 대해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지금도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근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신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성찰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물음을 내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신의 카메라로 타인의 삶이나 죽음의 '결정적 순간'을 포획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주어질 구원을 위해 자신의 참혹한 이미지를 거래하는 것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의 재현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 이런 꽉 막힌 질문을 던지면서도 미적 긴장감을 놓지 않는 작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 사진사에는 아직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노순택이 개인적으로 이루어낼 성취는, 곧 한국 사진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진 속 망자들은, 아마도 영원히 평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일어났던 공간은 기념물이 될 것이고, 살아있는 자들은 망자를 등에 업고 자신의 목청을 높일 것이다. 졸지에 민주화의 영령이 되어버린 망자들은 과연 이런 일들을 즐거워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녕 지옥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 김현호
* 망각기계로 죽다, 망각기계로 살다 : 이 글은 2010년 11월 『아트인컬처』에 기고한 『사진으로 망각과 싸우기: 노순택의 사진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을 전면적으로 고쳐서 다시 쓴 것이다.
Vol.20120504e | 노순택展 / NOHSUNTAG / 盧純澤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