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그리다 2012

우징展 / WOOJING / 禹澄 / sculpture   2012_0503 ▶ 2012_0509

우징_내 안의 숲_철, 종이에 녹물_114×59×1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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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3_목요일_06: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2관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철의 세계 지도 ● 사람들은 각각의 성격이 있듯이 사물들에게도 성질이 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물이 있으면 딱딱하고 우직한 것이 있다. 섬세한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런 성격이나 성질에 절대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며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꽃이 아름다운 것이 그렇다. 꽃은 사람의 눈이나 마음에 아름다움의 배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수석 받침대에 놓인 작은 돌 하나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소위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듯, 하나의 성격이나 성질은 어쩌면 그저 하나의 표상체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날씬해지거나 예뻐지려는 욕망처럼 표상은 상대적이어야 하고 대상화되어 있어야한다. 그렇지만 우리사회에서 그것만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말인즉, 모든 것이 견고한 '일반화'에 예속되려는 것으로부터 소위 탈주하려는 것을 또 다른 가치로 허용한다. 예컨대 예술이 그렇다. 예술의 역사를 뒤져보면 좋은 작품들은 항상 사람들이 간주해 놓은 일반화의 경계를 어김없이 탈선해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성격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우징_내 안의 숲_철, 종이에 녹물_80×40×5cm_2012
우징_철을 그리다_철, 종이에 녹물_70×25×5cm_2012

작가 우징은 오래전부터 철을 다루어왔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니 철을 자르고 붙이고 가공하는 것쯤은 그에게서 큰 문제가 못된다. 그렇다고 그가 누구나 생각하는 철조기법의 조각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쇠붙이가 그의 작품의 재료이거나 소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철은 우징의 작업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물질이다. 이것은 단순한 관념적인 수사가 아니다. 그러니까 철은 우징의 작품 모두를 표상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소재이자, 주제이며 대상이자 물(物)자체인 셈이다. 그래서 우징의 작업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그의 작업공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쇳가루를 소금물에 넣어 오랜 시간을 부식시킨다. 그가 원하는 정도의 것이 되면 철은 고착제에 섞여 물감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종이위에 드로잉 선이 되었다가 농담의 색온도를 지니기도 한다. 농도나 부식의 정도에 따라 미묘한 색감이 줄줄 흐르는 물줄기 자국을 남기기도하고 종이에 스민 노란 화면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연에 기댄 얼룩을 만들기도 하고 어쩔 때는 지극히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화면을 구성해 낸다. 그는 작업에 일루전(illusion)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주로 추상적이다. 숲을 표현했다는 작업을 보면 정말 숲처럼 보였다가 다시 철가루에 물든 얼룩의 종이화면이 나타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그 화면들의 액자를 모두 철로 만들었다. 철판에 그림이 드러날 만큼 방형(方形)의 구멍을 내고 굽히고 용접했다. 어떤 것은 데코레이션이 있는 나무액자를 철 주물로 주조한 것을 쓰기도 한다. 마치 모든 것을 철로 환원해 내려는 편집증적인 선택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작가 우징은 왜 그렇게 철에 집착했어야 했을까?

우징_내 안의 숲_철, 종이에 녹물_108×108×7cm_2012
우징_내 안의 숲_철, 종이에 녹물_112×107×8cm_2012

철의 성격은 누구나가 잘 안다. 강인하면서 우직하다. 때로는 너무나 차갑고 눈부시다. 하지만 철은 산화되고 녹을 피운다. 어떤 것도 용납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성격의 철이지만 전기를 통하게 한다. 전도체인 철은 칼로 단박에 두 동강을 낼 것 같아도 여기와 저기를 통하게 하는 성질을 지닌다. 그래서 또한 철은 따뜻하다. 우징은 아마도 작업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철을 많은 시간을 통해 다루면서 누구보다도 철의 성질을 잘 파악해 내었으리라. 우징에게 있어서 철의 부식은 세월의 '녹'이 아니라 또 다른 호흡의 방법이었다. 우징은 그 호흡을 위해 소금물을 주선했고 흩어짐을 막기 위해 고착제를 첨가했다. 그리고 리트머스 시험지를 관찰하듯 종이에 스미게 한다. 소금물에 절인 쇳가루는 작가의 손놀림에 의해 붓끝에서 종이 면으로 이리저리 흐른다. 그리고 종이의 어느 면에선가 고착된다. 작가 우징에게 있어서 그 얼룩은 고향과 집을 그리워하는 기억들과 접합한다. 영국 유학시절 부산의 이미지를 그리움으로 채웠던 그에게 쇳가루 물이 남긴 종이위의 얼룩은 그의 집이자 동네, 마을과 숲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분명 우징의 철은 우직함이나 강인함, 차가움 같은 것으로만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 우징이 쇳가루에서부터 단단한 철판을 이리저리 유연하게 가공할 수 있게 된 진정한 배경은 기술적 연마나 반복이 아니라 정서적인 공명이었다. 우징에게 있어서 철은 항상 수많은 복수형으로 분화된다. 철이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다양한 증상들을 지닌 개별자들이다. 그 모두를 아우른다.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 세계를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진지하고 우직한 아티스트 우징을 만나는 것이다.

우징_풍경을 그리다_철, 종이에 녹물_66×197×10cm_2012
우징_철을 그리다_철, 종이에 녹물_40×40×10cm_2012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과 바라는 것이 있다. 쇳가루 물 얼룩이 소위 '미술'의 추상 이미지를 지시하고, 철판에 방형구멍과 굽힘, 용접이 그림을 지탱하는 '액자'를 지시하는 순간 그의 미시적이고 감성적인 '철의 세계'는 세속화 된다. 어차피 세속을 떠날 수 없는 몸이라면, 그래서 미술 세속으로 정의 내려질 것이 뻔한 것이라면 작가가 '세속'을 지시하는 기호에 굳이 억압당하고 갇힐 필요는 없다. 그저 철가루들과 천진하게 놀고 있으면 세속적인 정의, 이른바 미술이 되고 작품이 되며 궁극의 예술이 되는 것은 외부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그래서 작가의 자기억압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 졌으면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징은 그저 철에 경도되어 그것에 집착하는 '이미지즘 작가' 한사람이 아니라 '철의 미시세계'에서 나눈 대화들을 미술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번역가이자 그 세계의 지도를 작성하는 창조자가 되어있다. ● 그가 타지에서 그리워했던 집과 동네의 기억을 그가 집성해 놓은 '철의 세계'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 세계의 지도에는 철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상태의 개별들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마법 같은 항해일지가 쓰여져있다. ■ 김영준

Vol.20120503j | 우징展 / WOOJING / 禹澄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