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성대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2회 필룩스라이트아트페스티벌 대상수상작가展
후원 / (주) 필룩스 주최 / 필룩스조명박물관
관람시간 / 10:00am~05:00pm / 04:00pm 입장마감
필룩스 조명박물관 LIGHTING MUSEUM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624-8번지 Tel. 070.7780.8910~4 www.lighting-museum.com
파괴와 생성의 판 ● 이번 전시에서 김성대는 흙과 빛을 주된 미디어로 활용했다. 지하와 지상을 망라하는 이 미디어를 통해 환경파괴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우리는 이미 전 국가적 프로젝트가 된 4대강 사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교환되지 않은 축적된 자본이 흘러들어가 자연을 파괴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지배적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 자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단기적인 생산주의의 전망아래 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할 자연을 재배열하는 과정이다. 이번전시에서 쩍 갈라진 흙 판들은 가뭄과 지진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여러 행성처럼, 또는 대륙처럼, 또는 섬처럼 배열된 판에는 옹기토, 분청토 등 다양한 종류의 흙이 다양한 두께로 얹혀 있다. 건조에 의해 만들어진 틈들 사이로 조명이 여러 색으로 변모, 투과되면서 흙과 빛이라는 무기물은 유기체처럼 삶과 죽음을 교차시킨다. 두껍게 또는 자잘하게 갈라진 틈들 사이에는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조화이긴 하지만,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갈라진 틈새들로 이어지는 뿌리줄기의 이미지가 있다.
빛의 변모가 가져다주는 시간성은 마치 호흡처럼 살아 꿈틀대는 지구의 명암을 드러낸다. 둥근 판은 생명을 담고 있는 거대한 그릇처럼 보이며, 지구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태적 조건을 표현한다. 균열의 무작위적인 형태와 그 사이로 비죽이 솟아나며 횡으로 증식하는 뿌리줄기들은 유한한 부피 속에 접혀 있는 무한한 표면을 암시한다. 전시장 가장자리에 있는 알 형태 역시 흙 표면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생명의 알, 또는 씨앗은 말라붙어 있고, 흙 사이사이로 끼워 있는 물고기들은 그곳이 이전에는 바다나 호수였음을, 그리고 변화는 급작스레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원판이든 구이든 흙의 표면에는 울룩불룩한 손자국이 나 있는데, 그것은 살아있는 장소라고 할 강에서 실제 발견되는 물결무늬이다.
여러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무늬는 자연 또는 노동에 의해 에너지가 축적, 분배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패턴들이다. 전시장에 울리는 음향은 불에 타는 듯한 소리와 빗소리인데, 그것은 노랑 빛과 푸른빛으로 상징되는 용암과 물, 파괴와 생성에 상응하는 청각 이미지이다. 빛과 자연적 요소의 결합은 그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발견되지만, 이전에는 금속이 용접되어 만들어진 형태가 야기하는 인공성이 강했다면, 이번에서 작품을 자연적 변화에 개방시켰다. 김성대의 작품에서 다양한 생명들을 품고 있었던 축축한 흙덩어리가 사막화 되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다. 엔트로피의 변화는 조각의 형식에서도 감지된다. 미니멀리즘에서 정점을 찍은 현대조각의 변화는 엔트로피가 점점 증대하는 과정이었다. 예술에서 사물로의 추이는 혼돈의 쾌를 극대화시켰다. 이 변화를 추동하는 주된 요소는 시간성의 극대화이다. 작가는 의도와 계획, 노동집약적이었던 이전 작업을 보다 자연화 시킨다. 그에 따라 빛의 의미에 대한 강조점도 다르게 다가온다. 구원이나 희망, 생명의 보고로서의 빛(또는 불)은 이제 생명 그 자체, 보다 정확히는 생명의 과정과 중첩된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조명처럼 기계적으로 조절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미세한 판의 변화까지 조절할 수는 없다. 김성대의 작품에는 파괴의 어둠 속에서 빛이라는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영지(gnosis) 적 관념이 내재해 있다. ● 이 신비한 지식이 이제는 신의 계시나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 인간이 당면한 운명이다. 그에게 금속 조각에서 흙 판 설치로의 변모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필연에서 우연에로 강조점을 변모시킨다. 계획과 의도는 무작위와 과정에 자리를 내준다. 그의 작품은 고대 원자론자들처럼 전능한 섭리가 아닌, 우연성을 받아들인다. 물질원소들은 소멸하거나 파괴되지 않고 끝없이 변모할 뿐이다. 파괴와 생성의 판 위에 새로 시작되는 생명 역시 깊이 뿌리 내리지 않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뿌리-코스모스와 곁뿌리-카오스라는 이미지를 대조시킨다. 무작위적으로 갈라진 틈들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리좀처럼 어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도 연결 접속될 수 있다. 리좀은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며 무한한 연결과 접속을 창조해낼 수 있는 내재적 원리이다. 리좀은 네트처럼 유연하고 무한하다. 뿌리줄기는 정적인 조화가 아니라, 동적인 연속성을 통해 자연의 성장형태를 보여준다. 말라서 쩍쩍 갈라진 형태조차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균질한 표면은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향과 깊이로 벌어진 한 균열아래 새어나오는 빛줄기의 변화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판을 예시한다. 존재와 달리 생성은 혼돈에 가득하다.
카오스적 형태는 질서 잡힌 형태보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김성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카오스나 리좀의 이미지는 지속가능한 진보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래서 한정된 용법만 가졌던 이성과 필연의 헤게모니를 거부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리좀은 끊임없이 건립되고 파산하는 모델, 끊임없이 확장되고 파괴되고 재건되는 과정이다.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켰던 이원론은 거부되어야 한다. 현대 조각사 역시 중심과 주변 사이의 투명한 관계를 전제하는 이원론에서 중심 없는 표면으로의 추이를 보여 왔다. 김성대의 이전 작업에서 정교한 계획 아래 진행되었던 용접 조각은 자연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는 고전주의나 고전주의의 현대적 변용인 구성주의와 밀접하다. 거기에서 빛은 주변을 비추어주는 핵심으로 작동했다. 이번의 설치작업에서 기하학적 구조는 끝없는 표면으로 변모했고,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한 과정들이 부각된다.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환영과 관념으로부터 실제 시간 속에서 지속의 경험에 방점이 찍는 것은 자연과의 대결이 아닌, 자연과의 교감을 고무하는 것이다. ■ 이선영
Vol.20120502d | 김성대展 / KIMSUNGDAE / 金聖大 / mixed media.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