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아트스페이스 휴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68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미술에 있어 몸에 대한 담론은 20세기 전위 미술을 시작으로 커다란 전환을 맞이했다.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던 신체가 표현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는 비이성, 무의식 그리고 몸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생겨났다. 물감이나 오브제처럼 신체 자체를 파격적으로 도구화하는 바디아트, 플럭석스, 퍼포먼스아트의 유행은 신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신체가 예술 안으로 걸어 들어 오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순수한 미학적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 제스처로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미술에 있어 신체가 드러나는 방식은 보다 개인적이고 소수집단적인 경계로 축소되어 사회구조의 모순을 드러내고 소수와 개인의 소외와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로버트 고버는 절단되고 분리된 신체의 일부를 통해 동성애자로서 느낀 편견과 상처를 드러내고 폴 맥카시는 미국사회의 숨겨진 병폐를 적나라하고 잔혹하게 표현한다. 키키 스미스, 채프만 형제 그리고 yBa의 많은 작가들의 작업 역시 신체를 왜곡하고 변형시키며 기괴한 혼성의 방식으로 사용한다.
신체를 잔인하고 불결하게 다룸으로서 혐오감을 유발하는 언캐니, 애브젝트 미술은 그 거부 혐오자체를 강렬한 예술의 에너지로 받아들인다. 기이함을 뜻하는 언캐니(uncanny)는 익숙한 사물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을 때의 섬뜩함을 뜻하는 독일어 Unheimliche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인간은 완전하게 낯설고 생경한 것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사물이나 환경의 변화로부터 더 큰 공포와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장르로 따지면 엽기호러코믹다큐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유한솔의 영상작품은 애브젝트 미술의 잔혹함과 B급영화의 유머러스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신체와 관련된 호기심과 상상력을 영화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늦은 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머리를 동강내버리기도 하고(벽에 시뻘건 케찹피가 튄다) 과식으로 더부룩해진 위는 탈장되어 바닥에 내동강이 처진다(순대와 간이 사방에 흩어진다). ● "나는 몸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촉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둥글고 평평한 육덕져서 의자에 눌린 허벅지살을 보면 질근질근 썰어보고 싶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우직끈 푹 칼을 꽂아보고도 싶고, 팔뚝에 있는 중력에 쏠린 너덜거리는 살은 엄지와 검지로 수제비 반죽을 뜯어내듯이 뜯어내고 싶기도 하다." ● 배가 불러 터질 것 같다. 손목이 끊어지는 것 같다. 코가 썩는 것 같다. 눈알이 빠질 것 같다 등과 같이 무심코 사용되는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우 잔인한 표현언어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발현된다. 하이테크놀로지는 매개물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실재와 더욱 유사해지는 기술들이 생겨나면서 오히려 존재의 허구와 허무함이 남게 된다. 반면 로우테크놀로지는 매체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확연히 유지하기 때문에 관객은 그 사이에서 즐겁게 유희할 수 있다. 젤리, 순대, 케첩 등으로 재현한 신체의 표현과 몰입을 방해하는 과장된 배우의 연기는 하이테크놀로지시대에 로우테크를 찾게 되는 복고의 유행과도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유한솔의 작업이 신체의 표현을 의도적으로 과장하여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손종준의 작업은 방어적으로 신체를 밖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송종준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자위적 조치(Defensive Measure)라고 말한다.
"인간성의 획일화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풍토가 만연화 되어가는 이 시점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상호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 공격성에 의한 필요이상의 충격방지대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공통적인 행동양식이 아닐까?" ● 즉, 작가가 신체와 기계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장치는 필요이상의 방어수단이라는 말이다.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바깥을 향해 날을 세운 장치는 외부로부터의 방어를 위한 장치일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공격의 수단이 될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다.
손종준이 제시한 차가운 금속성의 방어적 도구를 '필요이상의 방어수단'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학교폭력의 폭력성을 드러낸 영화 『배틀로얄』과 비교해 볼 수 있을 법하다. 타카미 코슌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정해진 시간 내에 친구들을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설정의 영화다. 송곳, 낫, 전기 충격기, 활 등 자신에게 주어진 치명적인 살인도구를 손에 쥔 앳된 소년소녀들의 모습은 안타깝고 애처로워 보인다. 손종준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강인함과 나약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 첨단 테크놀로지와 네트워크화된 환경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연결하고 긴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듯 보이지만,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대신한 차가운 기계적 감성이 서로간의 불신과 오해를 두텁게 하는 씁쓸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기계의 혼성으로 만들어진 손종준의 방어적 기계는 금속물질의 차갑고 날카로운 속성에 의해 외부와의 단절을 초래하고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킴으로써 자신을 지키기 위한 화살이 도리어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 김현
Vol.20120428f | 폭력의 경계 The border of violence-류한솔_손종준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