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옥진展 / SONOKJIN / 孫玉眞 / painting   2012_0425 ▶ 2012_0501

손옥진_향수(鄕愁)Nostalgia_혼합재료_97×130cm

초대일시 / 2012_0425_수요일_05:00pm

기획 / 월간미술세계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0.1144 www.gongartspace.com

현실로 승화된 노스탤지어 ● 손옥진은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을 거슬러 자연의 편린들을 수습하고 이를 화면에 끌어들여 예기치 않은 미적 향취와 개성적 형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추억의 여정을 통하여 선택되고 표현된 야생화들은 각기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화면 자체의 풍부한 질감과 유동치는 물감의 생동으로 인하여 청순하면서도 강한 생명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아름다움은 이미 구상적 표현으로 역량을 다져온 작가의 재현능력과 꾸준히 매재(媒材)와 형태의 실험에 탐닉해 온 추상의지가 어우러져 이룩된 것이다.

손옥진_향수(鄕愁)Nostalgia_혼합재료_130×196.5cm
손옥진_향수(鄕愁)Nostalgia_혼합재료_130×97cm

향수 ● 손옥진은 어린 시절을 경주에서 보냈고, 들꽃을 주로 그려왔는데 고독과 침묵 속에서 수줍게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는 야생화는 작가의 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모티브이자 존재론적 동질감을 유발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향수'라는 타이틀로 전개되는 그의 야생화 연작은 과거의 추억을 거슬러 현재의 미적 정서를 반영하고 미래의 예술을 지향하는 듯하다. ● 1995년에 가졌던 1회 개인전에서 작가는 엉겅퀴나 들국화, 할미꽃 등의 야생화를 풍부한 감성과 색채로 요약하여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이들 대상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들꽃들을 재현했음을 방증한다. 이어 치룬 2, 3회 개인전에서도 작가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세심한 관찰의 증거를 암암리에 보여주면서 대상을 요약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상과 공간과의 관계나 추상성과 구상성의 조화, 그리고 질료와 색채의 실험을 통한 물성의 확보 등 현대회화가 이룩한 형식적 가치에 탐닉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 「향수」연작은 가시적 현실을 재현해온 가운데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도정에 있는 것으로 대상의 재현을 염두에 두면서도 추상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언뜻 추상회화의 분방함이 화면의 기조를 이루는가하면, 화면자체가 물감과 교감하며 평면회화로서의 존재론적 타당성을 확보한다. 마치 사군자의 고결함과 수묵화의 공간개념을 함축하는 가운데 공간과 대상은 서로 물결 같은 연속성을 보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보필한다.

손옥진_향수(鄕愁)Nostalgia_혼합재료_97×130cm

추상적 구상 ● 최근 손옥진은 자연의 들꽃이 갖는 형상성을 요추(要樞)하여 화면에 제시하고, 물감자체의 변주와 이를 통해 드러난 유·무형의 형태가 갖는 서로간의 긴장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재료의 물성뿐 아니라 각각의 대상들이 갖는 의미까지도 재해석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해바라기나 모란과 같은 작품에서 손옥진은 들꽃이라는 대상을 현미경의 대물렌즈에 놓고 그 근원적인 구조가 무엇인가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자적인 집요함과, 대상의 확대를 통해 해체된 꽃들의 순간적 형상을 포착하여 화면에 제시하는 인상주의자적인 직관력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 아울러 형상을 좀 더 패턴화된 형태로 진전시키고 이에 따라 흐려진 회화성을 다양한 형식실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그의 그림은 중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현대 회화의 다양한 표현기법들이 적용된 수많은 시행착오와 이의 극복과정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옥진은 작품자체의 심층형식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마티에르와 간결한 이미지만을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작품의 서사성을 은폐한다. 옥수수 연작에서 우리는 작가가 대상에 갖는 깊은 성성과 애정, 이를 분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도한 예술적 고민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무엇을 나타내야겠다는 욕망을 거둔 채 담담하게 이를 재현해 내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옥수수 줄기는 번잡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여전히 강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아도르노가 언급한 "관찰과 사유로 남김없이 밝혀지는 예술작품은 작품이 아니다."라는 말은 손옥진의 예술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지각들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욕망과 관계가 있다는 것과 회화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구조가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작업과정에 드러났던 유·무형의 형태들과 이의 해체과정에서 드러나는 긴장관계, 그리고 이에 개입하는 작가의 존재론적 고민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사유와 경험이 요구된다.

손옥진_향수(鄕愁)Nostalgia_혼합재료_60.6×72.7cm

결국 자연 ● 오늘날 대부분의 작가는 작업의 결과물들이 어떻게 인류의 다른 생산물들처럼 존재론적 타당성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경우 작가는 심각한 회의에 봉착하곤 한다. 즉 '나의 작업이 인류문화에 끼치는 파장'은 무엇이며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데 어떠한 타당성을 가지는가'의 문제는 동시대 작가들의 첨예한 고민거리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합리적·실용적 사고 때문이다. 태고 이래 인간의 삶 자체는 무엇인가 소비를 하면서 유지되어 왔다. 소비라는 것은 사용이라는 것과 맞물리면서 여기에 효율성의 문제가 부각되고 결국 인간의 지각은 실용적 과학의 범주 내에서 모든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합리적 지각으로 고착되어온 것이다. ● 그러나 손옥진의 경우는 좀 다르다. 자연에서 낳고 자란 작가는 자연의 진정한 속성인 생성과 소멸의 순환구조를 용인하면서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작가는 자녀들이 결혼하고 나서 평생을 그려온 그림마저도 떠나보내고자 하는, 그럼으로써 자신마저도 욕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유체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소유보다는 분배에 가깝고 체념보다는 자유와 가까운 개념으로 작가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참된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 그러면서도 손옥진은 주관적인 환상에 빠지거나 형태의 왜곡을 통하여 모더니즘 회화가 추구한 물성이나 관념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철저하리만큼 대상의 본질을 요추하는데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가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때의 기본적인 자세를 준수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손옥진의 운필(運筆)은 더 큰 다양성을 보이고 개성적인 리듬을 갖게 되며, 형태의 소용돌이와 파동을 종용한다. 그러나 향수라는 테마 자체는 늘 자연과 주변세계의 반영이라는 끊임없이 매혹적인 교착(交錯)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사람이 그렸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회화자체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정교하고 미세한 묘사나 대상의 특징과는 다소 상관없는 색채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우리의 공감을 확보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경모

Vol.20120425f | 손옥진展 / SONOKJIN / 孫玉眞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