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금展 / SONGILGEUM / 宋日今 / painting   2012_0424 ▶ 2012_0429 / 월요일 휴관

송일금展_봉산문화회관_2012

초대일시 / 2010_042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Tel. +82.53.661.3081~2 www.bongsanart.org

가능한 방법들의 가장 명료한 해석 ● 미리 밝혀두는 것. 이 미술 평론은 화가 송일금의 신작에 관한 비평인 동시에 필자 윤규홍에 대한 자기 비평이다. 여기, 한지와 도예로 표현하는 흥미로운 작업 앞에서 나는 일종의 메타 비평이 효율적인 분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평론가들이 자신의 텍스트가 비평 대상만큼이나 예술적으로 축조되길 원하고, 또 그렇게 시도한다. 나는 아니다. 평론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학에 가깝다. 과학은 대상이 가진 성질을 분류하고 단순화하여 설명하려 한다. 그것은 내가 송일금의 작업 경향을 밝히면서, 현대 미술에 대한 나의 접근 태도까지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 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에 이중의 관여를 맺었다. 작품에 대한 비평문을 쓰는 것에 덧붙여 전시의 전반적인 진행과 관련된 의견을 나누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 전시회가 실현되는 과정에는 그녀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선배인 작가 한 명이 있으며, 전시 공간을 기획하고 감독하는 문화회관의 팀장도 있다. 따라서 내 일은 작가의 전시를 이끄는 입장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의 의지를 확실하게 정하게끔 도우는 메아리 역할이면 충분했다. 작가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효율적인 큐레이팅은 창작과 배치를 되도록 간략하고 파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내 생각을 작가도 동의했다. 단순하더라도 빈약하지 않는 건 이미 작업 속에 풍부한 함의를 지니고 있기에 실행하는 자신감이다.

송일금_Repetition-0321_한지에 혼합재료_40×40cm_2003
송일금_Repetition-0911_한지에 혼합재료_120×120cm_2009
송일금_Repetition-1102_한지에 혼합재료_210×70cm_2011

잘 알려진바 대로, 송일금 작가는 지금껏 한지를 이용한 평면 작업에 힘을 쏟아 왔다. 그녀의 작업은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종이가 가진 물성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식이다. 한지를 손으로 찢어서 캔버스 위에 첩첩이 쌓아 붙인다. 그렇게 정렬된 집합체의 단면은 특별한 효과를 만든다. 단순한 패턴이 세밀하게 중첩되어 있는 단색화의 이미지처럼, 그 효과는 격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절제되어 있다. 염색한 한지를 변형시킨 그녀의 작업은 회화성을 짙게 깔면서 현대 미술의 한 지점에 닻을 내렸다. ● 그래서 작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거니와 적지 않은 미술 비평가들은 그 창작 과정에서 반복된 작업이 이끌어내는 효과, 예컨대 영성의 수련이라든지, 정신적인 고양, 명상을 통한 집중, 비워내는 과정의 득도, 채움과 비움은 연속된 순환이라는 진리의 포착,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면을 부각시켜 왔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같은 정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한 류의 추상적 분석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말이나 글로 표현된 언급은 송일금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 상투적인 칭송은 한국 단색화 경향의 미술 대부분에 쓰일 법한 귀걸이와 코걸이다.

송일금_Repetition-Blocks 1202_세라믹_66×110×5cm_2012
송일금_Repetition-Blocks 12012_세라믹_8.3×173×6cm_2012

작가는 그동안 고르지 못한 전시 주기를 이루어왔다. 작가가 구상과 실행, 그리고 발표에 이르기까지 규칙적인 사이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즉흥성이 장점은 될 수 없다. 그 어떤 예술가들조차도 새로운 창조 행위 앞에서는 막연한 벽을 느낀다. 송일금과 같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새로움에의 추구는 늘 자신에게 부과되는 과제와 같다. 송일금의 작업이 가장 뜨거운 평단의 관심을 받던 시기는 2003년경이다. 내 판단으로도, 그녀의 대표작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나온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이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는 작가의 미술 세계가 그 당시의 패턴을 그대로 자기 복제했다면, 그것은 상징적으로 구성된 한국 회화계의 현 질서, 모노크롬이라는 하위 장르에 그녀의 지위를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작가가 바로 그 자리에 안주하길 원했다. 단색화의 범주 안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작품을 생산해 낸다면 그 일은 리스크가 큰 미술 시장에서 상업적인 면모를 충족시키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길은 곧 내가 우리 갤러리와 연대하는 같은 연배의 동지적 작가들에게 절제된 단색화 경향에 준거한 기법을 지지하는 태도이다. 지금 시점으로만 놓고 보면, 송일금 작가는 그들보다 조금 더 폭이 큰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것이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니다. 그 결과를 환류하여 수용한 작가는 또 다른 쪽으로 기법을 실험해 왔다.

송일금展_봉산문화회관_2012

그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이번에 새롭게 도예 작업으로 구체화되었다. 원론적으로 그것은 흙과 불, 물과 나무를 필요로 하는 미술이다. 화 수 목 토는 작가로 하여금 한지의 뜯어 붙임만으로 도달하기 힘든 새로운 차원으로 내딛게 했다. 이것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저항하는 작가의 실천. 내 생각에 그것은 작가가 줄곧 해 오던 한지 작업의 특성을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이기도 하다. 도예 흙 작업은 종이 작업이 표현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실현할 여지를 마련한다(물론 동시에 또 다른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이것은 여러 개의 단자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갖가지 색과 패턴, 구도가 배치 방법에 따라서 변증법적인 전체의 조망을 이루어낸다. ● 한지와 도예는 마치 말과 글의 관계처럼 서로를 보충한다. 작가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뉜 일종의 예술적 제의를 실행하면서, 이 양분된 현존의 아름다움을 하나의 공간에서 보여준다. 우리는 이중의 조형 언어로 된 같은 작품을 보게 된다. 종이는 빛을 흡수하고 도예는 빛을 반사한다. 이 두 개의 정체성 속에서, 어느 쪽이 주가 되고, 다른 한 쪽이 변주가 되었건, 아니면 또 다른 잠재적 가능성들의 실현 속에서 작가는 현대 미술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 윤규홍

Vol.20120424a | 송일금展 / SONGILGEUM / 宋日今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