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

장우성展 / CHANGWOOSOUNG / 張遇聖 / painting   2012_0420 ▶ 2012_0708 / 월요일 휴관

장우성_성모자상_종이에 채색_130×88cm_1949_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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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420_금요일_04:00pm

월전탄생100주년기념 학술대회 일시 / 2012_0616_토요일_10:00am_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WOLJEON MUSEUM OF ART ICHEON 경기도 이천시 엑스포길 48번지(설봉공원 내) Tel. +82.31.637.0032~3 www.iwoljeon.org

월전의 붓끝, 그 한국화의 역사 ●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1912-2005)은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이래 한국 근·현대 전통회화의 변모를 선도해온 대표적인 작가로, 전통화단과 현대화단을 잇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교육자로서의 그는 초대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의 동양화과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해당 분야 창작 방향 설정과 모색에 있어서도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 장우성의 삶과 예술의 궤적은 그 자체가 20세기 한국화韓國畵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장우성에 대한 조명은 단순히 20세기 한 특정 작가에 대한 관찰을 넘어서서 20세기 전체 한국화의 역사와 전개를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장우성의 전체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고 살펴보는 전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 『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전은 이러한 학술적 필요성과 작가 장우성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시의성 따라, 장우성의 삶과 예술세계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장우성의 예술 세계를 그의 삶과 작품의 변모를 토대로 '1. 낭중지추囊中之錐', '2. 암구명촉暗衢明燭', '3. 천의무봉天衣無縫' 등 크게 3부분으로 분류하여 구성하였다. ● '1. 낭중지추囊中之錐: 근대적 예술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다'에서는 해방이전 장우성의 초기 예술세계를 조명해보았다. 그는 1931년부터 당시 최고의 인물화가 김은호金殷鎬(1892-1979)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1년만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스승 김은호를 계승한 세밀한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내며, 1941년 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부터는 연속 4회 특선을 하였고 마침내 추천작가가 되었다. ● 이 시기 장우성의 그림들은 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물을 중심으로 삼고 배경을 생략하거나 최소화하였다. 또한 그림 속의 인물들에게서는 정확하고 사실적인 인체표현과 함께 부드러운 색감을 통한 우아한 장식성이 발견된다. 동시에 장우성은 인물의 세련된 복장이나 상징적 소품 그리고 일상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자세를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근대적이고 도회적인 감수성을 담아냈다. 이것은 김은호가 이루어낸 근대적인 인물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감각을 가미하고 서정성을 심화시킨 것이다.

장우성_청년도_종이에 채색_212×160cm_1956_서울대학교 미술관
장우성_화실_종이에 채색_227×182cm_1943_삼성미술관 리움

'2. 암구명촉暗衢明燭: 한국화를 모색하다'에서는 해방 직후 장우성이 추진했던 한국화의 모색 작업에 대해 살펴보았다. 1945년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장우성은 민족미술 건설을 위한 동양화의 쇄신에 앞장섰다. 그는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학부의 교수로 활약하며 창작방향 설정과 조형방법 모색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에는 미술대학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근대 미술교육이 본격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장우성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문 미술교육의 중추가 된 것이다. 장우성은 동료였던 김용준金瑢俊(1904-1967)과 협력하여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 한편, 전통 문인화에 기반을 두고 한국화를 교육, 발전시키는데 주력하였다. ● 장우성 스스로도 해방 이전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인물화로부터 탈피, 교육에서의 방침과 마찬가지로 전통 문인화의 유산을 토대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재정립해 나아갔다. 이 시기부터 장우성은 굵기의 차이가 큰 서예적인 필선으로 대상을 간결하게 묘사하는 한편, 이를 넓은 여백의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했다. 또한 맑고 산뜻한 색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현대적인 조형미를 더했다. ● 해방이후 장우성의 민족미술 구축은 성화聖畵라는 소재를 토대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서양의 기독교 도상을 한복을 입은 한국인으로 번안하여 표현하는 당시 성화의 토착화 방식을 적극 수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특히 성화라는 소재는 장우성이 해방이전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인물화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화는 종교도상으로서의 특성상 신앙과 예배의 기능을 위해 사실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신앙의 대상이 실제의 인물처럼 보일 경우 그 목적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적인 표현 자체가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성화는 장우성이 '한국화韓國畵'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서양의 기독교 도상을 한국인으로 번안하는 소재로서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표현양식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매우 적합하고 중요했던 것이다.

장우성_성모자상_종이에 채색_145×68cm_1954년_천주교 서울대교구

장우성은 근현대 초상화의 전개에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초상화를 통해서도 '한국화 모색'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점은 주목된다. 장우성은 전문 초상화가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초상화의 상당수는 표준영정으로 지정될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의 초상화는 한결같이 실제 인물을 대하는 것 같은 박진감 넘치는 사실성과 함께 단아한 격조를 머금고 있어 인상적이다. 즉 동아시아에서 초상화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양대 지표인 피사인물(sitter)의 외형적 닮음(likeness)과 성정(性情)의 표현에 모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 '3. 천의무봉天衣無縫: 한국 문인화의 지평을 열다'에서는 장우성이 한국적이고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자 노력했던 문인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장우성은 1961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직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직에서 사퇴하고 재야작가로 활약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아카데믹한 교육자로서의 성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게 된다. 특히 그는 이전부터 몰두해왔던 문인화에 더욱 집중, 이를 심화시켜갔다. 문인화의 이념․ 화풍과 선비정신을 토대로 한국화의 정체성 탐구를 한층 본격화한 것이다. ● 이 시기 장우성의 작품은 간결한 필선과 함축적인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수묵화 본연의 서예적 필선과 담백한 먹의 콘트라스트(contrast)가 적극 활용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감한 생략 속에도 빈틈없는 묘사가 깃들어 있어 인상적이다. 소재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소재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화폭에 담아내었다. 장우성이 표현방식과 소재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문인화를 창의적,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장우성의 문인화에 있어서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즉 '형사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 뜻을 담는다'는 문인화 이념의 핵심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나아간 것이다. 세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그의 후반기 작품들은 이러한 문인화 이념의 실천이자, 세상을 바로잡고자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적 선비정신의 표현이다. 산업화에 따른 공해 문제, 남북 분단의 현실, 지나치게 서양만을 추종하는 세태, 부정부패 팽배 등, 장우성이 작품 속에서 다룬 소재들은 그의 현실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장우성_태풍경보_종이에 수묵_68.5×70cm_1999_개인소장

이 밖에 자연과 일상의 변화는 장우성이 작품의 소재로 가장 즐겨 다루었던 것들이다. 자연을 감상하고 이를 화폭에 담는 것은 동아시아의 문인화 전통에서 흔히 발견된다. 과거 문인, 선비들에게 있어서 자연에서 느끼는 바를 문학, 서예, 회화로 형상화하는 것은 혼탁한 세속과 달리 맑고, 아름다우며, 변하지 않는 자연 특유의 속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심성을 닦는 일종의 수양이었다. 그러나 장우성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자연을 묘사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또한 형식적으로도 자연의 모습을 압축된 필묵과 담채 등 특유의 양식을 이용,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 한평생을 한국화의 정체성 탐구와 모색을 위하여 매진하고, 또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자 노력했던 장우성의 삶과 예술을 "월전의 붓끝, 그 한국화의 역사"전을 통해 조망해 봄으로써 그의 예술세계와 함께 한국화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울러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장준구

Vol.20120420a | 장우성展 / CHANGWOOSOUNG / 張遇聖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