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ris

경현수展 / KYUNGHYUNSOO / 慶賢秀 / installation   2012_0419 ▶ 2012_0511 / 월요일 휴관

경현수_debris展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0712c | 경현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19_목요일_05:00pm

기획 / 아트라운지 디방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라운지 디방 ART+LOUNGE DIBANG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길 4 Tel. +82.2.379.3085~6 www.dibang.org

길 위에서 꾸는 유토피아의 꿈: 경현수 論 ● 말끔하게 쭉 뻗은 탄탄대로, 비탈을 수없이 지난 굴곡진 길, 오르막과 내리막, 지름길과 우회로... 길은 인생에 비유된다. 그 길 위의 걸음이 미풍을 맞으며 걷는 향기로운 꽃밭 사잇길의 여유로운 산보이거나, 가시덤불을 헤쳐 가는 고난의 여정일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쏜살같이 내달릴 때도 있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며,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혼자이든, 두 사람이 같이 혹은 무리와 함께이든, 우리의 삶은 언제나 길 위 어딘가에 있다.

경현수_debris-경부고속도로_철판에 도색_141×78×94cm_2012

경현수의 출발점은 언제나 길이었다. 대학원 시절, 어둡고 침침한 그의 회화를 덮고 있던 사다리는 분명 길의 환유였고 인생의 상징이었다. 특히, 바닥에서 천장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사다리는 구원에 대한 갈망,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표현이었다. 그의 사다리는 무한히 증식되어, 공간을 나누고 건축물을 구축하며 세계를 형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사다리 세계'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상상의 세계, 일, 돈, 의무와 규율 대신에 유희와 놀이만이 존재하는 유토피아였다. 빡빡한 삶의 틈을 비집고 열어낸 사다리 공간에서 꾸는 꿈, 그에게 작업은 그런 것이었다. ●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작업이 지도로 확장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도는 기본적으로 길의 그림이며,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는 자연, 도시, 사람 그리고 삶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추상적인 약호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삶의 축약본인 것이다. 특히, 지도 속 길의 형상은 이러한 삶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것은 추상화되어 있기는 하나, 주변 지형과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변화해 온 현재의 사실적인 재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평온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이는 이 길의 곡선 이면에는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주변의 힘에 맞서 자신의 에너지를 한껏 부풀리는 힘겨루기의 결과가 이 곡선의 실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도의 길은 힘없이 늘어진 선이 아니라 혈맥처럼 생명의 힘이 꿈틀대는 삶의 현재적 에너지, 그것이 응축된 형태이다. 작가가 지도 속 길의 형상을 발췌하여 사용하는 이유 역시 그것의 유형학적 미려함보다는 형태 이면의 내재적 힘 때문이다. debris-멜버른 비행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이같은 에너지를 잘 설명해준다. 야간비행을 준비하는 활주로 위 비행기들의 라이트에서 분산되어 나온 빛의 파동처럼 보이는 이 연작들은 사방에서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듯 보인다. 힘의 견제가 만들어내는 이같은 균형에 의해 화면 내의 에너지는 팽창되고 긴장감은 고조된다.

경현수_debris-멜버른비행장 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1
경현수_debris-멜버른비행장 1-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1

debris연작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의 작업 방식을 대략적으로 기술할 필요가 있겠다. 그는 특정한 장소의 지도 속 형상들을 컴퓨터의 일러스트 프로그램으로 변형시킨 후 일정한 데이터를 얻어내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멜버른 비행장, 경부고속도로의 부제들을 달고 있는 그의 debris 연작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언뜻 보면, debris의 세부 형상 각각은 원형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것들은 지도에서 떨어져 나온 (말그대로) '부스러기들'이며, 그 크기가 확대되었을 뿐이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조직을 통해 전체 형상을 유추할 수 없는 것처럼, debris에서 멜버른 비행장, 경부고속도로와의 형태적 유사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미세한 세포조직 하나가 원형 유기체의 염색체 모두를 가지고 있고, 염색체 안의 DNA를 통해 원형 유기체의 유전정보를 읽어낼 수 있듯이, debris는 멜버른 비행장, 경부고속도로의 DNA, 그것의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 ● 중요한 것은, 작가가 지도 속 형상들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일종의 변형을 가한다는 점이다. 즉, 그는 이 형상들을 컴퓨터로 가지고 와 그 윤곽선을 오려내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선택과 삭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고, 또다시 몇 번의 데이터 충돌을 통해 우연적으로 생성된 형태의 '파편들'을 선택하여 변형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과학자가 유전자조작을 거쳐 원형 유기체를 개조하여 유사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닮아 있다. 컴퓨터로 확장된 작가의 손에 의해 자연에서 출발하였으나 자연의 형상과는 또 다른 인위적인 외형의 새로운 생명체가 창조되는 것이다. ● 결국, 그가 만들어낸 debris 연작은 새로운 유기체의 감각을 지닌다. 자연적으로 발생된 유기체의 생명력과는 또 다른 생명의 감각이 그의 debris 연작에서 느껴지는데, 그것은 날카로운 기계적 물질성을 지닌 하이-테크의 감성이다. 따라서,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법한 미래 유기체의 형상과 유사한 debris-경부고속도로 연작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인간, 혹은 곤충과 닮아 있는 그것들은 일종의 유사생명체이면서 기계조작을 통해 작가가 창조해낸 유일 이미지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았음 직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자연의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고, 오로지 작품 속에서만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인위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느낌은 치밀하게 계산된 청색, 형광노랑과 초록, 차가운 빨강과 같은 색채 사용을 통해 강조된다. 그의 작업이 주는 친근하면서도 생소한 느낌, 싱싱하게 팔딱이는 현재적인 생생함과 알 수 없는 미래의 생경함이 공존하는 이 느낌은 그가 자연과 테크놀러지를 결합시키고, 현실의 이미지를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서 변형하고, 완성시킨 결과이다.

경현수_debris-경부고속도로 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11

한편, debris 연작은 미래도시의 설계도 혹은 우주선을 형상화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화면 위에 정적으로 놓여진 형태가 아니라 작가가 꼼꼼하게 메워넣은 백색의 무한 공간에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쩌면, 그의 debris 연작이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예술가들의 작업, 특히 라즐로 모호이 너지(Laszlo Moholy-nagy)의 회화를 상기시키는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 예술가들은 과학기술에 의해 진일보한 문명을 기반으로 창출될 미래의 신세계를 꿈꿨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우주시대의 새로운 서막을 열 것으로 믿었던 그들은 기계적인 선, 완벽한 추상의 선으로 현실너머의 미래도시공간을 계획하면서 우주 공간에 부유하는 우주선의 형상을 제안했다. 백색의 무한공간을 유영하는 구조물의 느낌은 러시아 예술가들과 경현수에게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세계의 구조를 부수는 혁명 대신 일상의 틈 속에 예술이라는 사이공간을 열어두는 방식이 러시아 예술가들과 경현수의 차이점이라면, 현실너머의 꿈의 세계, 예술을 통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공통된 전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현수의 debris연작은 '사다리 세계'에서 제시된 유토피아의 또 다른 버전, 21세기의 현실, 그 길 위에서 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다. ■ 박미연

Vol.20120419c | 경현수展 / KYUNGHYUNSOO / 慶賢秀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