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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418_수요일_04:00pm
갤러리 문 Gallery MUN 6th-No.1. 318Art Complex He GeZhuang.shunbai St.Chaoyang Dis. Beijing,100103
'경계의 창'에 투영된 욕망과 아이콘 그리고 추억 ● 권진수 작가만큼 열심히 작업에 열중하는 작가도 드물 것 같다. 권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약 5년 전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화랑의 작가 공모전이었다. 여러 응모 작가들의 작품 중에 유독 눈길을 끌었다. 타고난 묘사력과 감각적인 화면처리 기법은 평소 얼마나 작품 제작과정에 진지하게 임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북경 레지던시 스튜디오에 파견할 작가를 뽑는 공모전에서 또 만났다. 물론 권 작가도 뽑혔다. 그 이후 지금까지 수년 간 북경과 서울을 오가며 꾸준히 창의적인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북경 문갤러리의 개인전은 권 작가의 최근 관심사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권진수 작가를 사로잡은 작품의 소재는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 권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을까?
인형의 익명성 ● 저기 인형이 보인다. 누군가 한번쯤 갖고 놀았을 것 같은 손때 묻은 헝겊인형이다. 혹시 기억나는가? 어릴 적 밤마다 안고 자던 인형에 대한 아련한 기억. 헝겊인형의 부드러운 촉감은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바람직한 육아 상식을 논할 때 인형은 단골로 빠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엄마를 대신할 만한 유일한 상징적인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인형은 유년 시절 밤잠을 설치는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성장하면서는 긍정적인 사회성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권진수 작가 그림에 등장하는 인형은 작품의 모티프인 동시에 주제와도 연결된다. 권 작가에게 인형은 빠르게 변해가는 생활 속에서 아련히 잊혀져가는 순수한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이며, 그 시절 품었던 아름다운 꿈에 대한 회상이다.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사귄 친구이다. 하지만 그 인형은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느덧 저 아련한 기억 너머로 쫓겨났다. 인형은 첫 친구에게서 버림받아 상처를 받고, 친구 역시 인형을 떠나며 새롭게 만난 세상으로 인해 더더욱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결국 인형은 생애의 가장 큰 고통까지 함께 나누는 친구였던 셈이다. 권진수 작가의 인형은 특별한 이름이 없다. 익명성(匿名性)의 존재로서 초대된 주인공이다. 그것은 그가 일괄적으로 쓰고 있는 작품명제인 「 fade away」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명 'fade away'는 '사라져 없어진다' 혹은 '색이 바래다'라는 뜻과 'fadeaway'의 '소실(消失)'이란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가 선보이는 인형은 특정인의 것이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공의 대상 즉 '공지(共知)적 존재감'이다. '알려지지 않은 상태'인 익명성이란 사회적 구성원인 대중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현상이다. 보통 대중 속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는 경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나 많이 알려졌던 이에게는 어느 순간 자신의 특별한 존재감이 사라진 상태와도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스타의 신비감이 벗겨져 점차 익명화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콘과 욕망 ● 권진수 작가의 그림엔 고흐와 모나리자처럼 미술사적 아이콘(icon)들도 등장한다. 아이콘이란 단어는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스타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스타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소비사회의 상품이미지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은 필요한 것 이상의 갈망에서 생긴다"고 한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을 더 먹으려면 맛있어야 되고, 맛좋은 음식을 위해선 유능한 요리사가 필요하며, 그 요리사를 고용하려면 합당한 돈이 필요하다. 이것을 결국 '자신이 키운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 그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더구나 그 욕망은 때론 본질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를 망각하게 만든다. 마치 허영심에 들뜬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좋은 갑옷'보다는, 황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갑옷'에 더 눈독 들이는 격과 같다. 욕망에 가까워질수록 판단은 흐려져 어리석은 선택을 피해갈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권 작가의 미술사적 아이콘은 결국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욕망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경계의 창문 ● 권진수 작가의 그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창'의 존재감이다. 그가 선보이는 모든 주인공들―인형, 꽃, 고흐, 모나리자 등―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유리라도 창문과 거울은 다르다. 거울은 자기 자신만을 비추는 벽면이라면, 창문은 투명해 관찰하는 자신은 잘 안 보이고 상대방이 더 잘 보여서 공간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그 창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고,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시공간의 분계선(分界線)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권 작가의 창은 '경계(境界)의 창'이다. 창문 밖으로 버려진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듯, 작가는 그만의 창문으로 투영(透映)된 모든 대상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추억이다. 사람은 추억을 하나씩 꺼내 먹으면서 살아간다고도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엔 되도록 많은 추억을 저축하라고 하나보다. 우리도 모르게 잊힌 상황이나 소중함의 존재들은 불현듯 '경계의 창'을 넘어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비타민 같은 추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레바논의 대표적인 사상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추억은 일종의 만남이며, 희망의 길에서 발에 걸리는 돌멩이와도 같다."고 말했다. 길거리에 널린 흔한 돌멩이나 수없이 스치는 만남에 추억을 비유했지만, 반대로 그 작은 파편이야말로 큰 희망의 꿈을 이뤄주는 키(key)와 같다는 말로 해석된다. 권진수 작가는 그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건네며, 우리가 잠시 잊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다시 퍼즐처럼 맞춰보길 권하는 것은 아닐까. ■ 김윤섭
Vol.20120418h | 권진수展 / KWONJINSOO / 權珍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