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41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선구_박은선_안경하 오수연_이지향_조수연_차경화
주최,기획 / 조각그룹 飛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일요일_10:00am~07:00pm 4월 24일_10:00am~01:00pm
광화랑 GWANG GALLERY_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 안 Tel. +82.2.399.1111 www.sejongpac.or.kr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느림'이 됐다. 외향적이고 상향적인 가치, 속도와 성장의 가치에 반하는 느림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용어가 돼버린 '웰빙'도 이 느림의 미학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달려간다. 세상이 달려간다면 나또한 열심히 달려야 하는가. ● 이 전시는 속도를 기준으로 양분된 어느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달리는 와중에 잠깐씩이지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깊은 숨을 쉬어가는 '숨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다가 만나는 숨표는, 쉼표-온전히 쉴 수 있는, 박자로 인정되는 쉼-과 달리 쉼표가 없는 부분에서 잠깐씩 쉬는 숨을 의미한다. 짧은 숨이지만 적절한 곳에서 곡의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빠르게 쉬어야하는, 완곡을 연주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요소인 것이다.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달려가는 눈은 놓치는 게 많다. 행동과 행동 사이의 짧은 틈, 멈춤. 이는 보고 들은 것이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지해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보다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는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짧은 멈춤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 보다 오늘의 나를 향한 질문들이 보일지 모른다. ● 일곱명의 작가들은, 평생 연주하는 인생이 Andante든 Allegro든 끈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짧은 '숨'의 순간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 순간들에서 마주치는 삶의 파편들을 진중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하루온종일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차량들이 빠르고 혼잡하게 교차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잠깐의 멈춤을 제안한다. ● 쓸모를 잃고 버려진 나무를 소재로 하여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차경화는 컴퓨터수치제어로 재단되고 남은 나무조각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나무숲을 만든다. 본래 재단의 목적(이었던 형태)가 아닌 그 외의 세계와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틀 안의 숲, 틀을 통해 바라보는 숲을 재현하는 박은선의 작품 Walking in the woods는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 치유의 공간으로 자연을 제시한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삶의 전투 안에 서있는 나를 멈춰 세워본다. 느린 것을 게으른 것이라 생각하며, '빨리빨리'를 부추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주변의 느림이 선사하는 삶의 아름다움에 공감했던 것은 언제였던가? ● 기계를 통해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이 기계의 빠른 리듬에 맞춰 구분되고, 순식간에 기계 밑으로 쌓여 버려진 나무― 어떤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순식간에 쓰레기로 몰아세워지는 버려진 나무― 조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에 취해진 조각을 덜어내고 남아 버려진 앙상한 나무 조각 들을 다시 모으고 보듬으며 새로운 나무숲은 만들어진다. 나무사이(間)로 보여지는 풍경은 더 없이 풍성한 숲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나무와 나와의 사이(交)를 통해 나의 존재에 대한 반추의 시간으로 재탄생된다." (작가노트)
"사람들은 도시에 살지만 항상 자연에서 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도시에서 얻어진 피로를 자연에서 치유한다. 하지만 여행이란 시간적으로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담아온 산의 모습을 보여주므로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 도시에 있지만 여행 중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작품들을 보며 각자 가지고 있는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작가노트) ● 상처와 치유를 화두로 하는 이지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발견되는 흠집들과 본인의 몸에 새겨진, 몇 차례의 수술과 자잘한 상처의 흉터들을 서로 바라보듯이 제시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성취한 가치'보다는 그 이면의 '상처와 흉터'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이지향의 작업이 결국 시간의 기록이며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치유의 방법인 것이라면, '기록'의 행위자체가 작가 본인에게 '숨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안경하의 작업방식이 그러한데, 그의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순간의 기록이며 상상의 산물이다. 대상을 바라보고 고유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속도와 망각에 탐닉하는 시대에 '가만히 응시하기'를 권유하는 것 같다.
"잘 허둥대는 나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 붙어 다닌다. 그리고 몇 번의 수술. 내가 살아가는 날이 거듭될수록 내 몸의 흉터들도 하나 둘 늘어갈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기록되어 증거처럼 남는다. ● 살고 있는 집에서 여러 흠집들을 발견하며 나와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기억과 시간은 때론 이기적으로 흔적을 남기지만 나와 나의 공간은 작다고 무시하지도, 크다고 동정하지도 않으며 서로의 상처를 바라본다. 그것은 한 가지 기억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된다." (작가노트)
"이번 작업은 '나라는 틀 안에서 맴도는 자신에게 더 안전한 숨을 곳을 찾는 것인지, 그 틀을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음에 대한 질문이며, 꿈을 꾸며 자유로운 세계로 나아가려하면 할수록 더욱 현실에 묶이게 되는 이유 대한 질문이다.'" (작가노트)
'bling-bling'한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혹은 낯설게 나열하고 변질시키는 조수연의 작업 역시 소비와 소유의 끊임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무엇을 위함인가라는 근본적인 삶의 질문들과 마주하게 한다. ● "현대 사회에서 남을 의식하면서 욕망은 더욱 부풀려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욕망과 일치한다. 그러나 과연 남들보다 값비싼 명품들을 성취하는 순간 우리의 욕망은 채워지는 것일까? 그것은 또 다른 욕망을 부르게 되고, 도대체 그 끝은 어딘지 모르겠다. 욕망의 완전한 충족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이 시대에는 블링블링한 패션을 좋아하고, 블링블링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명품 이미지들…그것들은 무차별하거나 혹은 낯설게 나열되고, 또는 본연의 색이 변화되거나 그 위에 새로운 표면이 덮여짐으로써 원래의 의미는 변질되어버린다. 그럼으로써 현대인의 사치와 끝없는 욕망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노트)
"자발적 고립자 이거나 열정적 관찰자(fláneur) 군중의 중심부에, 밀물과 썰물 사이에, 일시와 무한의 한가운데 집을 짓는, 불확정의 가치로 채워진 세계로 침잠하는 희미한 사람들." (작가노트) ● 한편 강선구가 만들어내는 초상은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제시된다. 확정적 가치를 기대하는 세상과 형식적 관계맺기를 강요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이 '자발적 고립자'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숨'의 공간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인물일지 모른다.
"난 작은 사람들을 나열한다. 작은 사람들은 나의 모습이며 내 주변인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고 힘없는 존재들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느낌을 만들려고 한다. 작고 작고 작은 사람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작가노트) ● 오수연의 '작고 작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나의 모습이며 내 주변인들이다. 바라보기의 관점을 달리할 때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성공과 좌절, 진보와 뒤처짐, 기쁨과 슬픔도 군상 안에 묻혀 그저 삶으로 보일뿐이다. 그렇다면 잠시 멈추어 다른 시점에서 내 삶의 모양새를 바라보고, 지금 나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들에 답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작업들이 그런 '숨표'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 ■ 조각그룹 飛
Vol.20120418d | 숨ː표 the breathing mark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