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양 극단 사이에서 찾은 예술가의 전형

신경철展 / SHINKYUNGCHUL / 申炅澈 / painting   2012_0414 ▶ 2012_0419 / 월요일 휴관

신경철_Form 12700328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162.2×112.1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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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414_토요일_06:00pm

이 전시는 2012년 대구문화재단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입니다.

주최 / 대구문화재단 주관 /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후원 / 대구광역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가창창작스튜디오_스페이스 가창 SPACE GACHANG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795번지 Tel. +82.53.422.1293 www.gcartstudio.co.kr

이번 전시는 대구문화재단 가창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 2명의 릴레이 개인전형식으로 첫 번째로 신경철의 전시가 올려진다. 신경철 작가의 작품은 첫 기억 속 이미지 등을 캔버스 위 퍼포먼스를 하듯 강함과 부드러움의 공존이 있는 드로잉을 한 후 그 흔적들을 연필로 경계를 감싸는 작업으로 우연과 필연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한다. ■ 대구문화재단 가창창작스튜디오

신경철_Form-양 극단 사이에서 찾은 예술가의 전형展_가창창작스튜디오_스페이스 가창_2012

양 극단 사이에서 찾은 예술가의 전형 ● 멀리서 본 것과 가까이 본 것의 느낌이 다른 미술이 있다. 작가 신경철의 그림이 그렇다. 꿈틀대듯 에너지로 가득 찬 형상은 애당초 계획에 따라 구상된 것이 없고, 의미 있는 메시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가까이로 다가가서 보면 작품에는 엄격한 패턴이 질서 있는 간격을 두고 단자로 구성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다시 작품과 거리를 두면서 떨어져서 관찰하면 그 어지러운 선과 면이 하나의 경관(landscape)으로 구성되어 시야에 들어온다. ● 그가 지시하는 경관, 그 특정한 지리적 공간은 역사적인 의미도 없고 특이점도 없는 장소다. 그렇다고 작가 개인에게 의미가 남다른 장소도 아니다. 그곳은 작가의 화폭 속으로 옮겨져 재현되면서 비로소 시공간의 현상학적 의미를 획득할 뿐이다. 예술적 행위로 현현된 경관은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고, 뒤이어 그 속에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하고 성찰하고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종속되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바뀐다.

신경철_Form 1170904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227.3×145.5cm_2011_부분

작가 본인과 관객인 우리 모두의 기억과 상상이 걸러지고 남은 이미지는 마음 속 내면의 심상과 실재 세계 속 외면의 대상 사이의 경계에 가로놓인 채로 있다. 일차적 관차자로서 화가와 이차적 관찰자인 관객들은 언제나 자신의 기억과 상상으로 구성된 공간을 그림을 통하여 현실과 연결한다. '텍스트는 수용자의 이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인지 상으로 만족스러운 연계조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Siegfried J. Schmidt, 1984, Kognitive Autonomie und Soziale Orientierung)이다. 우리가 신경철의 회화를 보면서 특별히 재현된 장소를 식별하든 안하는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또, 얼핏 봐서 추상 회화인지 구상 회화인지 가려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신경철_Form 1170907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100×100cm_2011

평론가들이 전지적 시점에서 신경철의 회화를 '구상과 추상의 교차', '우연과 필연의 결합'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 달 전 작가 워크숍의 초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작가가 실경 이미지를 화폭에 옮겨놓은 결과는 추상 회화가 가지는 비정형성, 상징성, 은유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그가 그리는 대부분의 그림은 언뜻 보아 실존 대상의 재현 같기도 하고, 심상의 표출 같기도 한 이중성을 가진다. 그의 작품을 방법론이란 면에서 '우연과 필연의 결합'으로 이해하려는 분석도 있다. 그것도 옳다. 작가는 짧은 시간 동안 붓질을 한다. 그림은 춤을 추듯 넘실대고 흩뿌려지고 때로는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우연성에 의존하는 듯이 보이는 이 모든 것은 매우 신중하게 고안된 필연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비평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상/추상의 혼합이나 우연/필연의 결합이 꼭 신경철의 미술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현대미술이 가정하는 여러 역설들은 그와 같은 모순의 비동시성을 어느 정도씩 품고 있다. 199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녔고 2000년대 초중반에 자신의 기법을 확정시킨 이 작가에게서 정작 내가 흥미롭게 관찰한 점이 있다. 그것은 그가 가까운 과거 동안 오브제 설치, 미디어 아트, 팝과 같은 한국미술의 열풍 속에서 자신을 비껴날 수 있는 자제력을 가질 수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신경철_Form 12700319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162.2×112.1cm_2012

물론 이렇게 추론하는 것 또한 회화 작가들의 보편적 현상으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적어도 작가의 기법을 세우는 힘의 원천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작가노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점은 그가 다른 미술가들과 차별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고된 일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고된 노동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신경철_Form 12700325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38×72cm_2012

마음대로 붓을 휘두른 것 같은 흔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테두리에는 연필로 그린 선이 있다. 이 선이 작품을 완성한다. 마치 한 인격 속에 서로 다른 존재가 깃들어있듯이, 예컨대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처럼,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브루스 배너와 헐크처럼 서로 다른 성향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한다. 붓은 본능적이며 감정적인 전자를, 연필은 계획적이며 이성적인 후자에 대입된다. 표현과 구성이 순환하는 변증법이다.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 온 작가 신경철은 이제 완숙의 문턱에 다다랐다. 대뇌의 이성작용이 아니라 간뇌의 반사작용으로 숙련된 그림 그리기는 현대미술과 일치되지 않는 불편한 점을 맞는다. 동시대 미술의 시스템 속에서 능숙한 그림 솜씨는 조형성뿐만 아니라 지적인 개념성도 획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떠안게 된다.

신경철_Form 12700327_패널에 아크릴채색, 연필_38×72cm_2012

신경철은 이 딜레마 속에서 대조적인 것들 속에서 자신의 기법을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그래서, 여기에 이르렀다. 표출과 인내라는 양 극단의 지점으로 경험치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에 작가는 자신을 기어이 내몰고 있다. 열정과 흥분의 순간이 지나가면 그 시간보다 몇 배나 긴 절제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린다. 그가 매듭지어놓은 이 시간의 끈을 통해 얻은 솜씨는 탄탄해 보인다. 마음 가는대로 일을 후련히 펼쳐놓고서는 그것을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인내는 예술을 넘어 삶의 높은 층위에서 구현되는 힘으로 거듭나는 게 아닌가. ■ 윤규홍

Vol.20120414a | 신경철展 / SHINKYUNGCHUL / 申炅澈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