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원석연_한만영_고영훈_안창홍 이원희_쩌춘야_이동기_송진화 윤종석_히로시 고바야시 주후식_이승구_곽수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애완견은 예로부터 인간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동물로서 갖가지 인간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우환과 재앙들을 물리쳐 주는 벽사로 대접받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전통 민화 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 작품의 많은 소재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또한, 개는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개인화 되어가고 있는 현 시대 인간성 상실에서 오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 따라서 본 전시는 우리의 전통 민화를 시작으로 최근의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들을 '개'라는 소재를 통해 재해석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개'라고 한 친근하면서도 일률적인 소재를 통해 각각의 동시대를 표현해 왔던 작품들이 지닌 표현기법과 사고의 흐름들을 가늠해 볼 수 있고, 또한 미술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다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 그렇다고 본 전시가 소재중심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객들에게 어렵게 보일 수 있는 회화의 철학적 근거와 배경들을 보다 쉽게 정리해서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복잡한 정신활동의 결과로 얽혀 있는 작품의 사상적 근거들을 보다 친근하면서도 일상적인 소재로 정리하여 표현되었을 때, 비로서 관객들은 보다 확실한 자기만의 감상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원석연 (元錫淵, 1922~2003) 그는 1922년 황해도 신천에서 8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서예에 일가견이 있으셨던 아버지의 후원과 격려로 일본 가와바타에(川端)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45년 미국 공보원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60여 년 동안 연필화만 고집했다. 동시대에 자신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여 단 한번도 공모전등에 출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시대의 이단아'라 불렸다.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평생 연필화만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연필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언어와 작품세계를 완성 시켰을 뿐 아니라 '연필화'를 데생과는 차별되는 하나의 독립적 미술장르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그려낸 견인지애는 6.25 전쟁 후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당시 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한만영 ● 한만영은 1972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집단적 흐름에 속하지 않은 채 레디메이드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70년대 말에는 정밀묘사 기법의 「공간의 기원」연작이 대표적이며 80년대 초반에 들면서 포스터나 인쇄물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1984년 무렵부터는 옛 거장들의 고전작품을 차용하여 이를 일상의 오브제와 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의 일련의 작품들에 집중해왔다. '시간의 복제' 라는 제목은 고전이 된 과거의 작품을 복제, 차용함으로써 '과거' 라는 시간을 복제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이를 현재의 시간과 결합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민화의 이미지에서 개의 소재를 찾은 작가의 견인지애는 그가 지금껏 추구해 왔던 명화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왔던 ""시간의 재생산""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오브제 작업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안창홍 ● 안창홍은 1953년 밀양에서 태어나 동아고를 졸업한 후 15회의 개인전과 광주 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9년 프랑스 카뉴국제회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안창홍은 비참함과 화려함이 함께 떠도는, 아니 묻어나는 듯 한 그의 화면에서 우리는 황폐와 고독, 소외와 불안, 인간성이란 것의 잔혹함과 왜소함, 공포와 비극성 같은 짙게 조여오는 강박을 발견한다. ● 그가 현실을 그리는 방식은 서사적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우화적 변용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 우화적 변용 속에서 그는 더욱 본질적인 인간성의 비극을, 인간성 속에 깃들어 있는 영원한 불구(不具)를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의 모든 작품과 사고들이 현실에 두터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강렬하면서도 치밀하게 인간 내면을 건드린다.
이원희 ● 진경 산수를 현대적 재료와 감수성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이원희는 인물의 정신까지도 표현해 낼 수 있는 초상화에도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온 작가다. 그의 유화 기법은 한국 유화 기법의 전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재료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숭고하다면, 인간과 반려견과의 만남은 지속적이며 일상적이다. 작가는 이 두 만남을 하나의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 속엔 전통과 현대라고 하는 시간의 겹침도 함께 존재한다. 그의 본 전시 출품작이다. 겸재의 박연폭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고 그 속에 인간과 반려견의 만남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고영훈 ●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극 사실적인 표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서 고영훈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드는 작품으로 현실 너머의 정신적 세계를 표현해 왔다. 대상의 극단적인 묘사는 우리의 시각을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력화 시킨다. 육안의 한계를 넘어 대상이 지닌 규칙과 본질적 형상에 의해 묘사되는 극 사실적 표현기법은 이렇듯 가장 사실적인 표현으로 초현실적 화면을 형성한다. 작가는 그러한 초현실적 공간에 두 가지 상충되거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사물들을 배치한다. 다양한 상징들의 부딪힘이 이뤄지면서 전혀 다른 상상과 상징의 세계가 펼쳐진다.
쩌춘야 ● 중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쩌춘야는 중국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인적인 관심과 심리적 상황을 표현해 왔다. 자신이 키우던 개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과감한 붓 놀림과 단색이지만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이는 급변하는 중국의 정치 경제적 환경 속에서 그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대상을 통해 작가 내면의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이동기 ● 한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이동기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와 아톰을 믹스한 아토마우스를 탄생시킨다. 동서양의 대중적 이미지의 만남이다. 이 미키마우스는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대중적 필요를 대변한다. 그가 표현한 애완견의 이미지 역시 대중적 이미지 즉, 대중매체에 의해 창작되어 대중적 감성을 대표하고 있는 이미지를 차용하여 재창작한 이미지다. 가장 친근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통해 가볍게 우리의 일상에 접근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대중적 이미지들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파생된 결과로서 수용과 창작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이미지는 우리의 인식적 근거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또한, 판단을 강요하는 권력을 지니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의 다양한 얼굴들을 아토마우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송진화 ● 나무로 여성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캐릭터 강하게 조각하고 있는 송진화는 나무가 지니고 있는 재료적 특성과 작가만의 독특한 이미지들을 잘 조화 시킨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내고 몸통을 뒤틀면서 자란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종류의 나무들 속에서도 똑 같은 모양의 나무를 찾을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나무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다. 우선, 나무가 지니고 있는 형태와 자신의 삶에서 기억되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결합시키면서 최종적으로 작품의 형상들을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형상들은 자연과 함께 생성된 나무결과 매치되면서 삶의 힘들고 즐거운 표정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기르고 있는 반려견 역시 그와 같은 방법으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윤종석 ● 동물이나 기타 사물들로 변형된 옷을 수 많은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있는 윤종석은 예술은 노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그리는 회화에서 느껴지는 붓이라든가 색면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반면 수 없이 찍혀진 점이 이루고 있는 질감은 마치 보송보송한 옷감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주로 옷을 접거나 변형하여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표현하고 있는 윤종석의 작품의 중심엔 항상 옷이 있다. 옷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옷의 주인이 빠진 옷 그 자체는 모든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 부분에서 작가는 옷 스스로 지니고 있는 형상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렇게 작가의 옷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히로시 고바야시 ● 공간에 부유하고 있는 인형들로 우리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초현실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히로시 고바야시는 수 많은 색의 레이어로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색 레이어는 울퉁불퉁한 인형의 털이 지닌 다양한 색 변화를 단계별로 쌓아 올려지면서 만들어진 색면들이다. 이러한 색면들은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기 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된다. 따라서 작가에 의해 임의대로 분할된 공간에 떠 있는 인형들의 진행 방향을 보다 더 모호하게 만든다. 이렇게 모호해진 경계로 인해 작품의 공간은 작품 밖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작품이 놓여있는 전체 공간을 작가의 임의로 만들어진 초현실적 공간으로 만드는 힘을 지니게 된다. 주로 동물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을 주로 그리는 작가는 우리의 육체에 갇혀있는 영혼의 순수함을 표현한다. 공간을 부유하고 있는 인형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에너지의 흐름을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 영혼의 욕구들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후식 ● 다양한 개를 흙으로 빚어 테라코타로 만들고 있는 주후식은 흙을 빚는 타고난 감각을 지녔다. 최종적으로 불에 구워야 완성이 되는 테라코타는 가소성이 뛰어난 흙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흙덩어리가 아닌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여 작품의 안이 비어있도록 흙을 빚는다. 거의 회화 작가들의 붓 놀림과 맞먹는 수준의 흙에 대한 작가만의 감각이다. 흙으로 표현된 개는 견고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다. 불에 구워진 흙의 견고함과 흙 자체 생명력이 지닌 따뜻함이다. 따라서 주후식이 흙으로 빚어낸 애완견은 테라코타를 넘어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다.
이승구 ● 아기와 개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오늘날의 교육과 대중매체에 대해 진지한 고민들을 풀어내고 있는 작가 이승구는 전달하고자 하는 진지함과는 사뭇 대조적인 익살스러운 모습의 아기와 개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이는 어쩌면 이미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스템, 즉 교육 및 대중적 매체에 의해 주입된 보편화된 이미지에 의해 우리 스스로의 판단기준 자체가 모호해 진 이면에 대한 작가의 위트 있는 접근이 아닌가 싶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대중매체에 노출된 우리의 사고는 일상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쉽게 판단하게 된다. 즉, 모든 상황을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 하는 고정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수동적으로 만들게 되며 이러한 수동적 판단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따라서 작가는 개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수동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곽수연 ● 전통적인 민화의 화면에 개를 담고 있는 곽수연의 작품 속 개 이미지 속에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전통적인 민화라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가장 현대적이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욕망을 대표하는 명품가방이나 향수 등이 등장한다. 즉, 작가는 주관적으로 원근법을 해석하고 있는 민화에 현대인들의 욕망의 대상들을 주입함으로써 편리함 속에 숨어 있는 소비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주변을 배경으로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그 배경과 결합해 있는 개는 어쩌면 가치기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비에 의해 결정되는 모든 가치기준들이 만들어낸 비인간적 상황에 대해 오히려 개는 더욱 더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개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순간이다. ■ 갤러리 아트사이드
Vol.20120412d | 견인지애 犬人之愛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