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Kaleidoscope

박찬진展 / PARKCHANJIN / 朴贊珍 / video.installation   2012_0411 ▶ 2012_0422 / 월요일 휴관

박찬진_한계상황-오타쿠는 한프레임씩 본다_투사지에 싸인펜_25.7×36.4cm_2010 박찬진_한계상황-미사일 난무_리얼타임 애니메이션, 프로그래밍_가변크기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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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6:00pm

주최 / 갤러리 175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club.cyworld.com/gallery175

3단합체 박찬진 ● 작가 박찬진은 스스로를 '오타쿠'(오타쿠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그 밖에 서로 깊이 연관된 일군의 하위문화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총칭한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청소년 시기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인터넷, 전자 기기 등 하위문화에 심취했다. 특정한 분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오타쿠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수반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아동용 오락물에 빠졌던 유치한 유년시절로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너머 미래로 나아가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그의 첫 개인전 제목인 '만화경'은 현실의 풍경과 인식을 차단하여 오직 혼자만이 볼 수 있는 환상의 세계이자 환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로를 의미한다. 전시의 흐름은 크게 작가가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사 중 뽑아낸 중요 키워드인 한계상황, 욕망, 변신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단순히 각 작품이 한 주제씩 담아내거나 이 세 주제가 조합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각 작품 안에서도 이 3단계가 순환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박찬진_근성이란 무엇인가 1_단채널 영상, 설치, HD_45×55×35cm_2011

「한계상황」 시리즈는 한 애니메이션의 공중 전투신을 수 십장 아니 수 백장으로 분절시켜 베낀 드로잉 조합 「한계상황 - 오타쿠는 한 프레임씩 본다」를 스크린 삼아 한 대의 비행기를 목표로 미사일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영상 「한계상황 - 미사일 난무」를 오버랩한 작품이다. 태양이 비치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비행기와 미사일이 끝없이 쫓고 쫓기는 장면은 더없이 명백한 한계상황을 드러낸다. 한편 애니메이션의 각 프레임을 그린 드로잉에는 비행기 기종, 성능, 마크의 의미 등 그 장면이 담고 있는 모든 정보가 붉은 펜으로 첨삭되어 있다. 여기에서 작가의 오타쿠 특성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오타쿠의 핵심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단지 즐기는 데 있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은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특정 작품과 관련된 정보라면 무엇이든 분석하고 알아내서 축적하는 행위에 있다.(김태용, 『일본 오타쿠 문화의 재현, 실천, 상품화』 ,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문화이론 전공 석사학위논문, 2009, pp.34~35.) 이같은 오타쿠의 근성은 미디어와 사람 사이의 경쟁이라는 한계 상황으로 이끌며, 수용자는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창조적인 실천자로 변모하게 된다.

박찬진_근성이란 무엇인가 2_단채널 영상, 설치, HD_45×35×25cm_2011

욕망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 「근성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에서 「근성이란 무엇인가1」에는 작가의 유년기 정신적 축을 형성해온 애니메이션 강령들이 선배와 주인공의 불꽃 튀는 대화로 등장한다. 마지막 대사는 왼쪽 선배의 영역과 오른쪽 주인공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강조된다. "형은 죽었어. 이제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형이 아니야! 나는 나는" 수많은 방식으로 패러디 되는 이 대사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나는' 이후를 빈칸으로 남겼다. 조력자이자 넘어야할 벽, 시련을 주는 자이기도 한 선배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젝에 따르면 주체는 아무런 내용물도 없는 텅 빈 장소라고 한다.(토니 마이어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 앨피, 2005, p.82) 박찬진은 '나는'을 반복하고 이후를 비워둠으로써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근성이란 무엇인가2」는 「근성1」과 같은 배경음악이 끝날 때 까지 작가가 한쪽 눈을 부릅뜬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영상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강한 다짐을 밝힌 작업으로 결국 마지막에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그것 자체가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 옆에 거울을 설치해 관람객 스스로 작가와 눈싸움을 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이같은 아날로그 방식의 인터랙티브 요소는 「근성1」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빠른 비트에 맞추어 양쪽에서 등장하는 대화는 관람자의 시선을 좌우로 분리시킨다. 하지만 시야를 압도하는 분량 압박의 텍스트를 정신없이 좇다보면 어느새 두 영역의 경계가 시각적으로 모호해질 것이며 어느새 열혈 관객이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박찬진_삼성의 개_혼합재료, 설치_가변설치_2012

변신의 모습이 두드러진 「별세계 유랑기」는 모션그래픽과 픽셀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영상작업으로 지난해 여름 작가가 몰두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오타쿠는 건강상의 이유로 산책을 결심하지만 삼성의 거대한 부지 때문에 원하는 길을 눈앞에 두고 둘러 가야하게 되자 삼성을 향한 깨알같은 복수를 시도한다. 결국 자신이 대항하고자 하는 삼성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 근간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안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도 더 이상 방구석의 은둔자로 머무르지 않는다. 주변에 버려진 사물들을 모아 제작한 설치 작품 「삼성의 개」는 「별세계 유랑기」에서 주인공이 저항의 목표가 흐려졌을 때 삼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직접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로 이끌어낸 버려진 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개와의 싸움은 아이폰을 가진 주인공이 스티브 잡스를 배경으로 삼성과 맞선다는 황당무계한 전투신, 우주적 비약으로 확장되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눈에 띈다. 작가는 현실을 주인공 vs 개, 아이폰 vs 갤럭시, 앱등이(애플+곱등이) vs 삼엽충(삼성+삽엽충), 애플 vs 삼성, 스티브 잡스 vs 이건희라는 구조로 대리전을 펼치는 가상의 게임신을 만듦으로써 견고한 현실을 가변적인 게임의 재료로 재창조한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 도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환상의 세계가 어떻게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를 조명한다.(조선령, 『환상과 더불어 살기 : 88만원 세대의 새로운 정치학』 , 문화과학 59호, p 참조) 환상이 만들어낸 파워의 핵심은 극적인 전투신이 아니라 무기력한 주인공이 분노의 소용돌이에서 주먹을 불끈 쥔 파이터로 변신하는 장면이다.

박찬진_삼성의 개_혼합재료, 설치_가변크기_2012

실질적으로 삼성이나 애플이냐는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며 단순한 대결구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계에 실질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경험이 한여름 밤의 꿈에 머무르지 않고 작업으로 재창조된 것은 작가가 모니터 픽셀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과 마주했을 때 온몸으로 느낀 긴장감의 정체를 끈질기게 파헤친 결과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라도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어법으로 발언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가 대중성을 획득하면서 소비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자리잡았다면, 박찬진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오타쿠를 한국의 독점자본주의와 무모한 도전을 선언하는 돈키호테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의 오타쿠적 상상력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작가가 허리를 곧추고 현실을 향해 적극적으로 한걸음씩 내딛게 만드는 무한 도전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박찬진_아이폰과 갤럭시를 이어주는 올레_아이폰 4S, 갤럭시 S2, 설치_가변크기_2012

또한 박찬진의 작업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한국을 바라보는 주체적인 역사의식이다. 그는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자신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분석해낸다. 이것 역시 그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인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작가의 오타쿠 근성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의 잉여력과 덕력이 돋보이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만화평론가인 요모타 이누히코는 실제로 하위문화로 폄하된 만화가 공인된 역사자료보다 민중의 기억을 표상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역사적 의지가 강하다고 말한다.(요모타 이누히코, 『만화원론』 , 시공사, 2000, p.9) 작가는 틈틈이 애니메이션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의 세계관들이 긴밀하게 맞물려 역사적 순환을 만들어내고, 애니메이션과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왔다. 그가 파악한 한계상황, 욕망, 변신의 순환관계도 상상계와 상징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실재계를 향해 돌진하는 인간의 삶이자 역사의 흐름과 다름없다.

박찬진_별세계 유랑기_team 김치냉면, HD, 칼라,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_00:16:09, 00:29:38_2012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한계상황을 떠올려보자. 이미 한국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이 경제논리 아래 재편성되었고, 사회 문화적 획일화를 두드러지게 가시화되었다. 심지어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끌던 선배들은 신자유주의체제의 심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그 안에서 적응하고자 한다. 자본, 기술, 권력이 일체화된 지배현실보다 더 이상 탈출구를 상상하기 힘들게 만드는 현실이 위기라면 위기다. 이제 반전은 없는가? 기존의 사회 구조에 편입하기 위해서 욕망을 가동시키기는 것은 한계상황을 더운 견고하게 할 뿐이다. 한계상황을 체화하며 피폐한 쳇바퀴에 종속될 것인가? 오히려 변신을 향한 탈출구로 활용할 것인가? 하지만 모순을 거부하는 결벽증과 과도한 윤리의식은 금물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더욱 더 무력하게 만들 뿐. 모순을 껴안더라도 진화의 폭을 확장시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한계상황을 마주할 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만화경을 장착하고 끝없이 자기갱신을 다짐하는 무쇠주먹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 이슬비

Vol.20120411f | 박찬진展 / PARKCHANJIN / 朴贊珍 / vide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