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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407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34번지 헤이리 Tel. +82.31.957.1054 www.artfactory4u.com www.heyri.net
시인의 눈과 어린이의 마음으로 그린 세상-한생곤의「놀이터 풍경」연작 ● I. 한생곤의 근작「놀이터 풍경」은 마치 한겨울의 추위를 넘기고 봄을 맞이하는 전원의 풍경처럼 따뜻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감돈다. 비유하여, 지난날의「가겟집」(2006),「어머니의 하루」(2008)가 인고의 겨울을 뜻한다면, 근작은 생성의 봄빛이 완연하다. 긴 유랑의 생활을 접고 '오봉마을'(경남 사천시 곤명면)로 귀향하여 자신의 정체성인 '고향'에 눈 뜨고 처음으로 알린 소식이「어머니의 하루」라면,「놀이터 풍경」은 결혼하여 네 살짜리 아기의 아빠로서 띄우는 '기쁜 삶의 소식'이 되겠다. 자신이 겪는 삶의 정황을 절제된 어법으로 진솔하게 단순성의 미덕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시인의 면모가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 된 '시'라고 할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간략한 선과 형상, 투명한 색채의 표정들은 하나의 시어들로서 함축적인 '뜻'(삶의 이치)을 지니고 나열되거나 구성되고 있다.
II. 그가 삶과 조형에 대한 원초적 감수성에 눈뜨고 시적 통찰의 안목을 가지게 된 연유도 어느 날 불현듯이 일어난 '자각적 체험'(1996년 10월)에서 비롯한다. 밤길 산책 중 '두발로 걷는다'는 걸음걸이의 반복과 순환운동을 온몸으로 느낀 '찰나의 전율'. 그리하여 그는 지구라는 별의 여행자임을 보았으며,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울려오는 '합창'의 노래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던 것이다. 오랜 미망에서 깨어나 마침내 그는 "그림의 본질은 자각을 통한 체현의 방식"임을 터득하였다. 그리고 "화가의 기쁨은 성숙을 통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법열이란 정신적 기쁨"이며, "이러한 에너지가 자신의 고유한 형식을 통해 이웃과 공감될 때 진정한 작품이 탄생하고 진정한 의미의 화가가 태어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인 것"임을 배웠고, "이 우주에 띄우는 그림편지가 따뜻하면 할수록 우주속의 어떤 사람에게도 이 편지는 따뜻한 미소로 피어날 것이며, 이 편지는 태울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타지 않는다"는 통찰을 갖게 되었다 (한생곤,『깨달음의 회화적 수렴에 관한 연구』, 1999년 석사논문에서).
III. 일련의 '자각과 합창체험' 이후, 그의 화면은 크게 변모하였고, 형상은 극도로 해체되고 입자화 된 '점'과 '흔적'으로 환원되어 드로잉의 형식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기를 작가는 '포말의 시기'라 칭하며, '노란버스'를 몰고 유랑 생활의 길에 나섰다. 그러다 다시, 길 위에서 만난 갖가지 재료(숯, 연탄재, 조개껍질, 기와 등)를 태우고 가루를 만들어 얻은 안료로 최소한의 단색조로 드로잉적인 화면그리기를 시작한 것이「가겟집」과「어머니의 하루」가 되겠다. '분말의 시기'로 자칭하는 이 무렵의 화폭은 일상적 삶과 노동에 대한 '뜻'을 투박한 선묘위주의 서술적 형상과 가라앉은 갈색의 단색조로 질박하고 담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와 달리, 근작「놀이터 풍경」은 이러한 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과 유쾌함,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한 형상들은 기호가 되어 은유적인 '뜻'을 지니고 생명체처럼 규칙적으로 리듬을 타고 있으며, 유채색의 기호와 색면들이 어울려 자아내는 조화스러움은 생기를 머금고 빛을 발하고 있다. 네 살짜리 아기와 함께하는 마음의 자리에서 모처럼 내면의 천진무구한 동심과 유희성이 '놀이터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들, 예컨대 나무, 산, 해, 달, 하늘, 땅, 강, 밭, 새(어린이), 사람, 미끄럼대, 집(화실), 오리, 병, 불꽃, 무지개, 새싹도 고향의 산천에서 혹은 생활주변에서 눈길을 주었던 것들로 마음의 '시어'들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동심으로 그려진 '동시'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호이징하(Johan Huizinga,1872-1945)는『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에서 "시인의 언어는 놀이의 언어이다"라고 했으며, "진정으로 놀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어린애처럼 놀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 옥영식
Vol.20120407b | 한생곤展 / HANSAENGGON / 韓生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