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405_목요일_07:00pm
참여작가 / 박종호_변선영_신동원_이상미_추영애
부대행사 / 오프닝 미니 콘서트(Ensemble TIMF)
후원 / 유중아트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유중갤러리, 유중아트센터 3층 서울 서초구 방배동 851-4번지 Tel. +82.2.599.7709 www.ujungartcenter.com
알알이 세어 항아리마다 모아보니 / 적은 양이 모여 점점 많아지는구나. / 울을 뜯고 담을 치고 집을 짓고 기와를 이었으며 / 앞에 좋은 전답 많아지고 / 안팎의 마구간에 노새와 나귀가 때를 찾아 우는 소리 들리고 / 열두 중문에 왕방울을 걸어두고 / 크고 넓고 높은 집에 추녀마다 경쇠를 달아 / 동남풍이 가볍게 살짝 불면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 보라대단 요이불을 천장까지 쌓아 올리고 / 욕목, 괘상, 두리상과 자개 함농을 겹쳐 놓고 / 오동 서랍과 흰 주석으로 만든 담뱃대와 서초, 양초 가득하며 / 왜화기와 당기와, 동내 반상, 안성 유기는 / 세 칸이나 되는 고방에 가득하고 / 수중 하인 열두 명에 반빗 하인 스물 둘이 / 좌우로 늘어서니 여섯 간 되는 대청에 가득하구나. (「복선화음가」 中) ● 조선시대 내방가사인 「복선화음가」 중 한 대목이다. 복선화음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 씨 부인이 가난한 양반 댁에 시집와 백면서생인 남편과 늙은 시부모를 모시며 갖은 고생 속에서도 치산에 힘써 결국 가문을 부유하게 만들고 남편과 자식을 벼슬에 오르게 하였다는 자전적 일대기이다. 세간과 집안풍경을 두루 묘사하는 부분에서 화자의 기쁨과 감격이 느껴진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인 사회에서 가정과 주거 내의 삶을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여성의 소임이었다. 엄격한 내외지법(內外之法)은 우리의 주거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며 성역할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로 공간을 구분시켰다. 그 중 안주인의 거처로서 흔히 안방으로 일컬어지는 내방(內房)은 주거의 가장 안쪽에 위치함으로 인해 폐쇄성을 띠며 가족의 대내적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가족 공동체의 개념이 바뀌어가고 도시화, 주거근대화 등을 거치며 오늘날 우리 삶의 풍경에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 졌다. 내방 역시 여성만을 위한 공간에서 부부 공동의 생활과 휴식, 취미, 손님접대 등 간단한 활동을 포괄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공간으로 전환되었으며 개인이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공간에 부여되는 의미와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그 결과 내방은 기존 질서에 종속된 기능이나 단순히 주택 구조상의 위치를 지칭하는 것 이상의 의미 속에서 '방' 그 자체가 가지는 본질로부터 다시금 정의되고 해석되게 되었다. ●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그의 저서 『공간의 시학(La Poetique l'espace)』에서 주거공간을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로서 인간존재의 최소 세계'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하며 공간을 통해 생애주기에 걸쳐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 일상과 천연한 욕구들을 소비한다. 따라서 방은 개인의 정체성과 삶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장으로서 정신적인 측면을 지닌다 할 수 있다. 방에 놓인 기물의 배열, 의장방법, 톤과 분위기 등을 통해 사용자의 직업, 취미, 성격, 라이프스타일, 내면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로 경우에 따라 '생활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꾸밀 것인가?'하는 물음은 곧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가?'라는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한편 방은 개인의 공간적 경험과 사유가 만들어 지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공간의 환경적 요소는 직접적으로 인간의 심리에 작용하며 반복적인 접촉을 통한 내면화로 말미암아 결국 인격적 특질의 일부로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방이라는 공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행동과 심리를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보강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번 전시 '내방(內房)'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형성하고 형용하는 기틀로서 방을 주제로 다루며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인식으로부터 삶의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태도를 살펴보고자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물론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시대가 가진 생활양식과 미감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종호, 변선영, 신동원, 이상미, 추영애 등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이 전하는 방에 대한 각자의 생각, 체험 그리고 상상력이 결합된 내밀한 이야기에 대한 감응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점검해 볼수 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변선영의 그림 속 방안 풍경에는 가구, 액자, 화병, 촛대, 쿠션 등 잡다하고 자잘한 정물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정물화의 시각 방식과는 달리 주요 상징체계를 구성하는 정물은 하얗게 지워지고 배경으로서만 머물던 벽이 화려한 색과 장식적인 패턴으로 부각된다. 이러한 중심과 주변의 전복은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와 위계질서에 대하여 작가가 가진 회의적인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서 삶의 척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교란시킨다. 이 때 작품에 드러나는 여백과 색면의 대비 그리고 강한 장식성은 작품의 의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내재한 장식욕의 적극적인 표현이자 작가의 서정(抒情)으로서 작용한다.
이상미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을 관찰하며, 시선의 이동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풍경을 포착하고 이를 캔버스에 담는다. 작업실은 작가로서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서 창작 활동의 특성상 일터와 삶터가 교차되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은 모두 작가에게 유용한 것들로서 작가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한편 삶의 일부로서의 예술을 상징한다. 풍경은 형태에 따라 실을 붙이고 겹겹이 면을 채워나가는 노동집약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묘사되는데, 마치 개별적이고 일회적인 삶에 대한 애착 혹은 애도에서 비롯한 하나의 의식처럼 공간과 대상 뿐 아니라 그에 담긴 기억까지도 씨실과 날실을 엮듯 한 화면에 고정시킨다.
추영애는 거실, 침실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머묾과 이를 통한 휴식과 치유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서사한다. 작가는 낡은 청바지나 색이 바랜 셔츠와 같은 헌 옷들을 작품의 재료로서 활용하는데, 한때 작가 혹은 누군가의 신체를 담았던 옷들은 마름질되고 패치워크되는 수공적인 과정을 거쳐 삶을 담는 공간의 일부로서 옮겨가며 의미의 확장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옷 조각들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들도 풍경의 일부로 조합되며 작품은 곧 실존의 증거이자 체험적 일상의 기록으로서 일기 혹은 수필과 같은 시각적 교술(敎述)이 된다.
신동원은 가정시대(Domestic Era)를 주제로 주전자, 컵, 냄비, 찻상, 테이블 등 가정생활을 이끌어가는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도자와 조각이 착종된 부조 형식의 작품을 리드미컬한 구도로 연출하고 벽면에 분방하게 배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동세와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구들은 일상의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실내공간에 놓임으로서 공간의 의미와 행동을 규정짓고 공간의 기능을 확고하게 하는데,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전시장 벽면은 도구의 기능에 부합하는 생활공간의 일부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계의 공간이라기보다 연극무대와 같은 속성을 지니며 우리 시대의 가정의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행위와 사건을 상상하게 한다.
박종호는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가구를 통해 추구되는 실용과 장식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기능적 조각 오브제'의 형식으로 실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나무, 철 등을 재료로 물성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미니멀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는데, 절제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스탠드, 러플패턴 등의 장식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전체적으로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그의 오브제들은 기본에 충실한 기능과 형태로서 실용적인 가치를 지니는 한편 풍부한 감성과 위트가 있는 미적 대상으로서 경험되며 사용자에게 심신에 만족감을 주고 단조로운 일상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연출하게 한다. ■ 강안나
Vol.20120405f | 내방 內房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