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525g | 박민준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강남 GALLERY HYUNDAI GANGNAM SPAC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6번지 아트타워 Tel. +82.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흩뿌려진 세계, 증식하는 서사 ● 박민준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야기소를 배치하고 조율하는 화면 안에, 사건의 단서를 감추고 드러냄으로써 색다른 이야기를 구축해나가는 작가다. 보통 이야기를 다루는 재능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능란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자질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의 본질을 은연중에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왜 이야기인가? 문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이야기가 게임에서부터 음악, 심리치료에서 인문서적에 이르기까지 다른 장르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이다. 스토리텔링의 정교함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이야기를 둘러싼 문화적 지형도는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박민준은 미술에서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굳이 통념을 거스르며 파격을 추구하지 않고도 색다른 이야기의 행로를 완성하는 유니크한 작가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머릿속에 늘 '서사'가 있었을 것만 같은 그는, 조형적인 서사를 통해 삶이라는 미스터리에 어떻게 가닿을 것인가란 질문을 함께 던진다.
데뷔 이후 꾸준히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박민준의 이번 작품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서 뻗어나간 실뿌리 같은 상상의 편린들과 그 원천들을 함께 감상하도록 완성한 것들이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견고한 의지와 충분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수행된 작품들은 작가 자신에게는 작업을 돌아보고 다잡는 계기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가 완성한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덩어리로부터 여러 각도로 뻗어나간 상상의 촉수들로 인해 지극히 색다른 형태와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보는 이의 관념을 포맷시키는 동시에 작가의 상상 패턴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만든다. 박민준은 시간과 영원 속에 오직 한 순간을 잡아 놓는 듯한, 그것을 고전회화의 방식처럼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방식을 유지한 채, 서사를 보다 증식시켰다. 「The Stranger」라는 제목이 말하듯 낯선 상황에 대한 자극과 반응을 중요한 동력으로 삼은 작품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장면을 선보인다. 그는 익히 알려진 신화의 부분을 차용해 이야기를 만들거나 과거에 그려진 작품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일련의 행위는 과거의 요소들이 여전히 인화물질처럼 작용하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며, 작가조차 자기 그림에 대해 엄연한 한 명의 관객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자기 상상의 결정체인 그림이 완전히 독립적임을 역설하기까지 한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그는 전체를 고려하면서 시각적 이미지를 하나하나 건축적으로 쌓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때 이 조형적인 건축은 촘촘히 짜인 설계도를 바탕에 둔다. 작가는 관객의 사유를 이끄는 주체를 정하고 그것에 힘을 부여하며, 어떤 감각 이후에 또 다른 감각이 올지 계획하며 화면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그는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 모든 감각의 대상들이 뿜어내는 일정한 힘을 의식한 채 밸런스를 맞추고, 구체적인 통합을 완성하는 것이다.
삶, 죽음, 그리고 메멘토 모리라는 커다란 맥락 아래, 사랑과 경험 그리고 가치관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는 작가는 이번엔 '타로 카드'에서 모티프를 빌려 시리즈를 완성했다. 그는 7개의 타로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자신이 임의로 바꾼 상징들을 조합해 일곱 점의 소품을 그렸는데, 이로 인해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자질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그림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줌으로써 낡은 관념을 무력화시키고 인식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치며 감탄하게 되는 것은 기발한 설정이나 미사여구 때문이 아닌, 삶의 어떤 부분과 깊숙이 연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보일 때가 아닌가. 우리가 간과했던 작은 대상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재주라 하겠다. 그는 각 카드가 내세우는 덕목을 이리저리 재배치함으로써 '최고의 균형은 어떠한 것에도 치우쳐 지지 않는, 모든 것에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새롭게 구성된 일곱 개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각 주인공들이 하나의 화면에 모두 모여 등장하는 작품 「The room named olympos」 또한 선보인다. 7명의 타로 카드의 주인공과 상징하는 오브제, 가령 「page of cups」의 아치형 창문, 「The fool」의 촛불, 「knight of swords」의 칼, 「justice」의 부엉이 등이 하나씩 등장하고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그림은 견고한 클래식 회화와 같은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면 튼튼한 지반 위에 지어진 단순한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가 보면 수많은 방과 복도, 문과 계단으로 가득 찬 초현실적인 미로임이 드러난다. 작가는 엄밀한 통제력을 발휘해서 구축한 그 세계를, 보는 이들이 통과하는 동안, 현실적 인과나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체험케 한다. 이는 「The butterfly dream」이나 「Meet my devil」에서 잘 드러난다. 「The butterfly dream」에 등장하는 부엉이는 장자의 「호접지몽」 글귀인 "Now I do not know whether I was then a man dreaming I was a butterfly, or whether I am now a butterfly, dreaming I am a man."이라 쓰인 천을 든 채, 여자를 응시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너른 갯바위에 선 여자의 모습은 오로지 뒷모습만 보이므로 그녀의 내면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관객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엉이의 눈빛과 텍스트, 장렬한 하늘빛 등으로 정황과 스토리를 추리를 해야 할 뿐. 인간 내면 속의 자아를 다룬 「Meet my devil」도 마찬가지이다. 쓰러져 있는 3구의 주검과 기사로 분한 자신(自身)이 천사와 마주보고 있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로 비교적 내용이 드러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비춰진 3개의 그림자 형상은 뻔한 관념을 흩트려 놓는다. 그림자 속의 천사와 기사는 방금 싸움을 마쳤다. 전시 타이틀인 「The stranger」는 어떤가? 그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 " 이 세상이 그처럼 나와 동일하며 형제 같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으며, 또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란 문장을 바탕으로 장면을 연출했다. 허나 이 또한 소설의 플롯에 갇히지 않은, 각색된 이야기이다. 「Altiora petamus(다이달로스의 초상)」로 명명된 그림 또한 다르지 않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이카루스의 아버지이며 발명가)와 미노타우루스 등의 일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작가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책상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날개를 제작하는 설계도와 재료들을 놓았다. 여인이 날려 보내는 새에는 빨간색 끈이 묶여져 있고, 새의 몸에는 나사가 박혀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 벽에 'Altiora petamus'란 단어가 음각되어 있다. 화면은 분명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에 관한 인식을 펼쳐 보이는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보는 이의 몫이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했던 묘사의 공정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각 요소는 하나의 즉각적인 반응이며 동시에 통일된 집합을 이룬다. 박민준은 자신이 중점적으로 표상해온 '서사가 증식하는 세계'를 선사하기 위해 심리와 실재가 뒤얽힌 한 덩어리의 사건이나 상황의 충실한 제시에 열중한다.
오감이 발달하지 않고 어찌 작가가 될 수 있을까만, 박민준의 인식과 시각은 스펙트럼의 그 끝에 닿아 있다. 그런 까닭에 작가가 지닌 독특한 통찰력이나 스토리 구성력에 긴 글을 소비했지만 박민준이 지닌 저력은 또 있다. 바로 그가 쏟아내는 공력과 명확한 레퍼런스이다. 그의 작업과정에서 예술적 시대정신과 장인정신은 명확한 평형을 이룬다. 이는 개념이나 아름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닌, 미적인 가치와 육체적 노동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명작이 된다는 작가의 신념 덕분이다. 하나의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전혀 색다르며, 더 학문적인 스토리를 모을 뿐 아니라 이미 사회적 알레고리가 정립된, 다시 말해 통속적으로 공공연한 합의를 이룬 상징과 기호들을 파고든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전시된 중세 갑옷의 세세한 공정을 재현해 깊이를 유지하되 동시에 현재적인 의미를 살리고, 커다란 목선(木船)의 위엄을 세밀하게 구사함으로써 밀도를 더하는 식이다. 또 실루엣이 아름다운 인물들과 아방가르드한 의상들을 배치해 시각적 유희를 극대화 시킨다. 바탕에 아교칠부터 모든 공정을 직접 하는 작가는 스케치를 멈추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조합하며, 정교하게 세필로 채색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보는 이에게 그림 그 이상의 차원을 선사한다. 자신이 의도하는 전혀 새로운 스토리에 신화적 이미지 혹은 역사적 일화를 얹음으로써 그것이 마치 존재하는 사실인양 여기게 만드는 작가 박민준. 다양한 상징의 형식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스토리를 보다 유연하고 매끈하게 장식하며 동시에 새롭게 연출하는 능력을 지녔다. 허구의 픽션을 재구성해 논픽션처럼 드러내는 이 다이내믹하며 흥미로운 작품들은 과연 어떻게 진화될까. 분명한 사실은 박민준의 이야기와 시간 그리고 삶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얽히고설키며 흐를 것이라는 점이다. ■ 정일주
Vol.20120405e | 박민준展 / PARKMINJOON / 朴民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