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n of Symptom 징후의 고리

김영롱展 / KIMYOUNGRONG / 金玲瓏 / painting   2012_0404 ▶ 2012_0410

김영롱_Convenient Shopping_장지에 채색_130.3×162.2cm_2012

초대일시 / 2012_04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동덕아트갤러리 THE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82.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언제든지 대부분의 장소에서 손바닥만한 스크린으로 세계 곳곳의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음은 디지털 문명이 제공한 새로운 환경이다. 현대 도시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속도일 뿐, 무언가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원하는 순간에 접속할 수 있어야하고, 안테나와 배터리에 집착하는, 작은 기계들을 기관삼아 이동하는 새로운 종족인 것이다. 폭발적으로 확장된 가상 공간은 마치 유기체처럼 진화하며 개인과 세계의 빈 틈을 보다 촘촘하게 메웠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슈들에 서로 동시적으로 반응을 나누며 자신이 속한 시공의 좌표를 확인하는데 관심이 많다. ● 모니터 속에서 무한히 생성과 복제, 소멸됨을 반복하는 다양한 재난의 이미지들은 현장의 처절함과 절박함은 상실되고 오로지 파편화된 이미지로 보는 이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현장의'사실'과는 다른 또 다른 모호한 이미지로 변환되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첨단기술과 맹목적인 믿음들, 욕망들과 충돌하며 불특정한 공포와 외경으로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특히 날로 빈번해지는 자연재해의 공포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내면 깊숙한 곳에 축적되어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본래 나와는 관계없을 것 같은 상황도 그것이 디지털 문명의 편리에 의해 나에게 전달되어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지금도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적으로 소비된다. 그 무수한 이미지들에 대한 반응과 축적을 통해 그것이 비록 지구반대편의 일일지라도 결국 나와 일정한 연관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 본인은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현대문명이 지니고 있는 동시대적 특징과 '사실'에 대한 현대인의 개별적 해석,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다층적 의식과 환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문명과 자연의 충돌 양상으로 나타나며, 혼재된 복합적 이미지들을 통해 보여 지는 사실과 실재와의 간극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 김영롱

김영롱_Chain of Symptom_장지에 채색_193.9×390.9cm_2012

먹구름에 비끼는 불안의 징후범 불안과 잠재적 불안 이 글을 쓰면서 '불안'의 의미에 대해서 다층적으로 생각해본다.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불안하고 불편한 심정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상황이 틀린 것이지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사람들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불안이란 조마조마함, 두근거림, 불쾌한 감각, 지속적인 불편함으로써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한 요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불안'이란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안의 현상을 언급한다. 그가 대표적으로 언급한 불안은 계급, 신분, 지적인 부분에서 타자와 자신이 차이가 크게 나면 불안과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불안'을 살펴보면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평생에 걸쳐 불안현상에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주장한 불안의 이론을 나중에 수정하는데 그것은 중단된 성행위, 금욕 등으로 발생하는 '리비도(Libido)'가 방출하지 못하고 누적되었다가 불안으로 바뀐다고 주장했다가 후기로 넘어가서 초기의 개념을 수정하고 불안을 '위험에 대한 신호'로 정의한다. 덧붙여서 공포란 큰 개념 안에 불안(anxiety)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영롱_Fallen Driveway_장지에 채색_145.5×227.3cm_2012

불안의 개념을 일상으로 확대해서 생각하면 '범 불안(pan anxiety)'의 경우에는 수많은 자연재해와 사건, 사고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내용에서는 그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도할 뿐 한 개인의 주관적인 개인사는 배제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의 환경, 직업, 사생활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현장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은 소멸하고 사건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제공해주는 역할만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위험이 곳곳에 존재하고 다양한 사고를 미디어에서 접하면서 자신에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불안하고 마음이 답답한 잠재적 불안의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 김영롱의 「Coincidental River 1」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시인들은 '범 불안'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어렵고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한 유토피아적인 공간에서 살 수 없기에, 개인에 잠재하고 있는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겉으로는 태연하게 여가 생활을 즐기는 현장을 묘사한다. 김영롱 작가의 작업배경과 의도는 이즈음에서 윤곽이 드러나는데 도시인의 불안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예술가의 입장에서 재해석해서 보여준다. 인간의 잠재적인 혹은 근원적인 불안은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존재론과 맞물리는 내면적인 감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영롱_Mindless Cafeteria_장지에 채색_162.2×227.3cm_2012

섬광기억과 헤테로토피아 ● 김영롱의 작품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섬광기억(flashbulb memory)'과 범 불안의 요소를 연결해서 인간의 잠재적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 섬광기억은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정서적으로 중요한 기억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것을 의미하며 그 당시의 환경을 떠오르게 하는데, 작가는 그러한 기억의 순간을 사진이미지를 빌려서 사용한다. ● 예를 들면 「Overlapping Pool 1」 은 인터넷에 있는 사진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며, 그녀가 사진이미지를 빌린 것은 과거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섬광기억을 현재로 호출하기에 좋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Overlapping Pool'은 말 그대로 '중복되는 수영장'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하필 많은 장소 중에서 수영장을 선택한 것인가? 그녀에 의하면 수영장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가공한 인공적인 공간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테니스장, 아이스 링크, 카페, 볼링장도 마찬가지로 즐겁고 윤택한 삶을 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Overlapping Pool 1」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 여 아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놀이에 집중하지만, 아이들의 머리 위에는 몽글 거리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화면에서 불안한 징후는 구름뿐만 아니라 여자아이의 머리 위에 있는 '물놀이 공'과 시선을 자극하는 빨간색 수영복을 입은 남자아이의 뒤에 자리 잡은 '풍선'이다. 화면에서 수영장의 '테두리(경계)'를 중심으로 뒷 배경은 불안한 세계를 암시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공간으로서 구성적으로는 잔뜩 구름이 끼어 있는 그림 안에 다시 중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 상징적인 오브제로 작동하는 '물놀이 공'과 '풍선'은 가상의 공간에 위치하면서 아이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녀의 작품에서 불안한 징후는 곳곳에 드러난다. 「Convenient Shopping」의 경우에도 쇼핑을 마치고 나온 20대 여성의 검은색 선글라스에는 폭탄의 연기가 어른거린다. 그러한 불안감은 여성이 타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과는 별개로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Fallen Driveway」에서는 가운데 연립주택에 떨어진 비행기를 중심으로 화면이 양분화되어있다. 왼쪽에는 푸른 잔디에 여성성을 상징하는 여행용 가방이 안전하게 안착 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자동차가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키고 달려오고 있다. 즉 A의 여행용 가방은 B 이라는 비행기에 오버랩 되고 C 의 자동차에 다시 오버랩 된다. 이러한 지각의 확장은 같은 대상을 관객의 경험에 따라서 각자 개인적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연상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김영롱_Coincidental River 1_장지에 채색_130.3×162.2cm_2012

「Emergency Landing」에서는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사고를 시각화한 것으로, 작가는 미디어에서 쓰나미가 불과 수 분 만에 육지로 밀려오는 공포의 순간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쓰나미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포착한 결과물이다. 쓰나미는 오른쪽 화면에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한가롭게 강아지를 끌고 길거리를 산책하는 여성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Peaceful Brunch」는 화면 아랫부분의 테이블에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이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 오른쪽에 앉아있는 남자의 시선은 왼쪽 아래 부분의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으며 왼쪽에 앉아있는 안경 쓴 남자와 그 옆의 동료는 오른쪽 아랫부분을 쳐다본다. 즉 네 명의 남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하단 부분에 이러한 상황과 아무런 관계성이 없어 보이는 '양'은 무심하게 왼쪽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 결국, 그림의 내부에는 세 가지 시선이 있고 외부에는 이 그림을 바라보는 화면 밖 외부의 관람자 시선을 포함해서 네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위에 있는 먹구름인데 이것은 처음에 언급한 「Coincidental River 1」 → 「Overlapping Pool 1」 → 「Explosive Organ」 → 「Split Strike」 → 「Peaceful Brunch」 에서 강박적인 요소로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도는 앞서 언급한 섬광기억의 흔적을 개인의 사소한 순간과 범 불안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접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내용적인 측면 때문에 그녀의 작품세계를 어떤 특정한 장르에 치우쳐서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헤테로토피아를 단선적으로 초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며, 미술사 장르에서 제한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형식논리로서 해석하면 안 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영롱_Emergency Landing_장지에 채색_130.3×324.4cm_2012

심리적 공백과 중간적 존재 ● 김영롱의 그림을 언뜻 피상적으로 보면 그림을 그리다가 중단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는 그림을 제작하면서 왜 이러한 방법론을 선택한 것인가? 강렬한 색채를 절제한 심리적 공백의 이미지는 그림의 완성도와는 관계가 없으며,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인 여백과는 별개의 방식이다. 비어있는 것은 화면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으로서 작가의 정신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상들의 정신적인 안식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심리적 공백의 미적 취향 때문에 미완성의 작품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 김영롱의 이차원적 평면 속에 펼쳐진 헤테로토피아 공간의 심리적 공백에서 우러나오는 그림들은 우리의 무의식 덩어리에 존재하는 휴식의 영역으로서 인간의 사고를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공간은 관객들에게 상상적인 이미지를 환기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김영롱의 작품은, 잠재적인 개인의 내밀한 모습을 눈앞에 보이도록 이끈다.

김영롱_Unfolding Kitchen_장지에 채색_130.3×162.2cm_2012

전시의 제목 'Chain of Symptom, 징후의 고리'에서 암시하듯 작가는 개인의 관점과 현대인의 내면에서 불안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부각한다. 생리학자 에가스 모니스(Egas Moniz)가 얘기하듯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지만, 답답하고 공허한 불안의 해결방법은 못 된다. 관객으로서는 오히려 채워져 있지 않은 심리적 공백 안에 작가가 만들어낸 이중적 공간을 인식하고, 그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면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공간적 체험을 하게 된다. ● 그녀가 그린 대상에서는 인간을 제외하고 정체성이 드러난 것인지 아닌지 모호한 중간적 존재들이 부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면 물개, 미키마우스, 거품, 풍선, 낙하산, 참새, 펭귄, 사슴, 양, 종이비행기, 컵 등이다. 이러한 대상들은 인간과 대립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적인 위치에서 상호 보완적 혹은 상호 의존적 조건들을 나타낸다. 예들 들면 쓸모 있는 것, 조금 충동적인, 심하게 자극하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실제, 약간 두렵고 불안한, 덜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이런 대상들이 존재하는 장소들은 완결성을 보장할 수 없는 휴지기에 진입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영롱의 그림들 속에서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어떤 심리적 공백과 중간적 존재를 통해서 무중력 상태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다가 직립보행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 김석원

Vol.20120404k | 김영롱展 / KIMYOUNGRONG / 金玲瓏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