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으로 스며듦

홍상곤展 / HONGSANGGON / 洪相昆 / painting   2012_0404 ▶ 2012_0410

홍상곤_봉오리가 열리기 전_캔버스에 젤스톤, 목탄, 먹_45.3×26.8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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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물밑으로 스며듦 ● 섬, 그곳은 인간의 존재와 닮아 있다. 우리의 시선이 물질로, 밖으로 향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 홀로이 떨어진 존재와 같이 보인다.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같이 한 순간도 정지해 있는 것들이 없다. 불어오는 바람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 가끔 둥지를 틀고 날아와 쉬는 철새들과 갈매기들,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져가는 밀물과 썰물들... ●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심연과 끝도 알 수 없는 수평선과 마주하면서 그곳에서 우리의 시간의 흐름들은 장 그리니에(Jean Grenier)가 마주했던 사색의 순간들과 만나게 된다. "바위들, 개펄, 물... 날마다 보는 모든 것이 전부 다시 따져보아야 할 문제로 변하는 곳이니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장 그리니에, 섬, 민음사, 김화영, 2008.) 그곳에서 모든 것들은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장 그리니에의 말처럼 한 순간에 차오르는 충만한 생존의 감성으로 무언가 손안에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홍상곤_와현해변_캔버스에 젤스톤, 먹, 아크릴채색_60.5×72cm_2012

그러한 허무함의 순간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물질에서 내면으로, 보이는 것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물위의 세계에서 물밑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의 신체에 닿는 모든 것들은 흐릿한 인상으로 남으며,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감성들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물질들과 뒤섞여 우리의 기억 속의 이미지들로 남게 되는 것이다. ● 그러한 이미지들은 홍상곤의 "물밑으로 스며듦, 2012"의 회화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회화 작업들은 드로잉과 같이 그린 듯이 보이는 선(線)들과 어린 아이가 칠한 것 같은 색채들로 그려져 있지만, 그러한 선과 색채들은 목탄과 동양화의 수묵화의 기법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퇴적된 듯이 보이는 담벼락들의 느낌을 살린 젤스톤(gel stone)을 통해 그의 일상의 삶에서 느낀 감성들이 그 조형적인 질감과 어우러져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홍상곤_퇴적된 시간_캔버스에 젤스톤, 목탄, 먹, 아크릴채색_72×90.5cm_2012

물과 바람과 흙의 이미지들 ● 「퇴적된 시간, 2012」과 「구조라해변,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그의 캔버스의 질감에서 느끼게 되는 것들은 물과 바람,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빛바랜 흙 담벽의 이미지들이다. 물과 바람과 빛바랜 벽의 이미지들은 그의 작업에서 현실에서 마주하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의미한다. ● 물과 바람과 흙의 이미지들은 가스통 바슐라르에 의하면 인간의 원초적 감성으로 회귀하는 매개물일 수도 있다. 물질이란 가스통 바슐라르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과 무관한 것은 아니며, "인간의 몽상은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가령 강이 흐르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물에 의해 그의 무의식이 지배되며, 그의 어린 시절의 꿈도 물이라는 원초적 사물에 의해 물질화된다고 볼 수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문예출판사, 이가림 역, 1992, p.11.)는 구절에서 보듯이 통영이라는 남해의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작가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물일 수도 있다.

홍상곤_폐교_캔버스에 젤스톤, 목탄, 먹_45.3×26.8cm_2012

하지만 물과 바람과 흙의 이미지들은 「풍경, 바람 앞에서, 2006」나 「봉우리가 열리기 전,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작가에게 또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멈춰있는 모든 것들을 흔들어 버리는,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해가는 자연의 현상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들은 육체와 함께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일상의 현실들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 그의 작품에서 나무나 빛바랜 집의 담벼락들과 섬은 작가에게 있어서 물과 바람과 흙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기호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풍경, 바람 앞에서, 2006」의 나무는 정지해 있고 싶으나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세차게 흔들리고 있으며, 섬은 가만히 있으나 밀물과 썰물에 의해 끊임없이 부딪친다. 담벼락은 집이 지워진 그대로 멈추어 있고 싶으나 시간의 흐름에 의해 조금씩 부식되어 가는 것이다. 물과 바람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빛바랜 흙 담벽의 이미지는 우리가 육체를 통해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현상의 의식들을 의미한다.

홍상곤_풍경-바람 앞에서_캔버스에 젤스톤, 먹, 아크릴채색_105.6×136cm_2008

투영된 이미지와 스며듦 ● 바람이나 물에 의해 흔들리는 나무들이나 섬과는 달리 「퇴적된 시간, 2012」의 작품이나 「스며든 섬,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땅바닥에 비친 집의 그림자나 물빛에 투영된 섬의 그림자는 고요한 적막감을 드리우고 있다. 「퇴적된 시간, 2012」의 작품에 보이는 땅바닥에 비친 집의 그림자는 오후 한 나절의 뜨거운 햇빛에 의해 불어오는 바람이 잦아드는 저녁 무렵의 한 순간을 그리고 있으며, 「스며든 섬,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바닷물의 움직임이 잠시 정지해 있는 오후의 한 순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 그 투영된 이미지는 바깥에 불어오는 바람이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의 실체와는 달리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우리의 일상의 감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라기보다는 「도로에서, 2012」나 「등대,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목탄의 질감과 캔버스의 바탕에 은은하게 스며있는 수묵화의 기법으로 표현한 엷은 먹빛으로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도로에서,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목탄으로 칠해져 있는 섬과 바다에 길게 깔린 목탄의 흔적들, 그리고 그 목탄들이 스며들어 가는 듯이 보이는 엷은 먹빛의 바다는 작가가 감각을 통해 마주하고 있는 일상의 현상들과 그 감각 너머로 나아가고자 하는 심상의 모습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그것은 물과 바람과 흙을 통해 촉발되는 어린 시절의 감성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해가는 현상 너머로, 물질적인 것으로 향하는 시선에서 물질의 이면으로 그의 감성들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물질이나 인간을 하나의 사용가치로서 바라보는 물질지향적인 시각에 대해 살짝 비껴나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상곤_해 질 무렵-거제_캔버스에 젤스톤, 목탄, 먹_60×72cm_2012

그러한 생각은 그의 「폐교, 2012」의 작품이나 "물밑으로 스며듦, 2012"의 전시 작품에 나타난 집이나 건물이나 나무들의 조형적인 이미지들에서 볼 수 있다. 「폐교」의 작품에서 보듯이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화려하거나 외형적인 건물의 모습들은 찾을 수 없고, 건물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선들과 흩날리고 있는 뒤쪽의 나무와 함께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즉 과장된 듯이 보이는 나무들이나, 또는 단순한 선이나 도형들로 그려져 있는 건물의 조형 이미지들은 작가에게 눈에 보이는 현상들 너머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그려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기호들인 것이다. ● 건물과 집은 우리의 물질적인 가치로 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그것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건물과 집은 외형적인 것에 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르는 곳, 「풍경-바람 앞에서, 2012」의 작품에서 보듯이 가족 간의 깊은 교감이 오고 가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 처음 불을 붙이거나 바람에 흔들리며 흰백의 심지를 태워 들어가는 촛불이 가끔씩 검은 그을음을 내면서 고요히 타들어 가듯이 "물밑으로 스며듦, 2012"의 전시 작품들에서 정련되지 않은 조형이미지들과 둔탁한 색채들은 작가에게 있어서 그 시선들이 안과 밖으로 오고 가며 흔들리는 초기의 심상과 그 갈등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한 시선들은 바탕에 깔린 먹빛의 색깔들과 그 색채와 함께 나이프로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정갈하게 낸 바탕의 젤스톤의 질감에서 보듯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그의 내면의 모습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조관용

Vol.20120404g | 홍상곤展 / HONGSANGGON / 洪相昆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