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4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이상하게 생긴 사물들의 움직임 ● 플라스틱 컵, 락앤락, 통조림, 캔 깡통, 패트병, 접시와 같은 용기들,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들, 쓰레기통 등 정진경의 작업은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상적으로 마주 대하는 사물들이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줄지어 화면을 구성한다. 이런 일상적인 사물들은 거의 단색의 색채로 입체적인 양감이 무시된 채 찍혀있으며, 마치 광고 포스터의 일부처럼 감각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런 작업의 특징만을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그 동안 너무나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떠올릴 수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알다시피, 당시 미국에서 매일같이 소비되는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병, 브릴리오 박스 등의 일회적인 소비 상품들을 화면의 주요 제재로 선택하여, 그들을 현대의 대량 생산된 소비 사회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활용하였다. 그는 고급과 저급 예술의 구분이 확연히 존재했던 당시의 인식 속에서 대표적인 저급 문화로 취급받았던 대중문화를 끌어들이고, 며칠이 지나면 산더미처럼 폐기되는 일상 용기들을 선택하여 마치 생산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 실크스크린으로 작품을 찍어냈다. 앤디 워홀은 매일같이 반복되고 복제되는 매스미디어와 그 속에서 소비되는 수많은 일상적 사물들 속에서, 현대인들 또한 상품처럼 살고 있다는 그 씁쓸한 현실을 작업 과정을 통해 매우 냉정하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진경의 작업 과정 또한 주로 실크스크린을 통해 재현된다는 것을 참고해 본다 하더라도, 그녀의 작업을 앤디 워홀과 같은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당연히 작품을 보며 예상하고 있겠지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정진경의 작업은 표면적으론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사물들을 담고 있지만 작가에게 있어 이런 생명이 없는 사물들은 객관적으로 관찰되고 버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매일같이 자신과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유기체와 같은 대상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사물은 누군가에게 만져지고, 피곤한 이들이 잠깐씩 이들을 대하며 쉬어갈 수 있는, 즉 매일매일 사용되어짐으로써 함께 숨을 쉬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가깝고 친숙한 존재들이다. 또한 이러한 사물들을 이미지화하는 실크스크린 기법은 작가에게 기계적인 반복으로 무감각하게 여러 장을 찍어내는 도구적 측면이 아니다. 작가는 완성된 한 가지 색을 위하여 한 작품 위에 무수히 공을 들여 지속적으로 같은 색을 덧입힘으로써 싸구려 팸플릿의 단색이 아닌 질감이 살아있는 손맛을 얻어낸다. 이런 기계적인 판화 기법을 통해 정물의 양감은 사라졌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러한 기계성을 통해 인간성이 물씬 풍기는 질감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정진경의 작품들은 하찮은 사물을 통해 자신의 손맛을 재현하고 더 나아가 인간성을 암시하며, 또 사물에 빗대어 타인의 감성을 유추하고자 한다. 각각의 사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인간성을 지니는 개개인을 닮아있다. 이는 그녀의 드로잉에 의해 재현된 사물들이 하나같이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연유한다. 대량 공정에 의해 정형화된 모습으로 생산되는 사물들은 작가와 마주대하고 그 손을 거치게 되면 삐뚤빼뚤한 선으로 이루어진 비정형의 모습으로 재탄생되며, 마치 사람의 마음이 묻어난 듯 유동적으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다.
락앤락이 품고 있는 작은 정원 ● 주로 판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성을 보여주던 작가는 세 번째로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바로 유화로 자신의 사물들을 표현해보는 것이다. 유화로 표현된 일상 용기들은 판화로 표현되었을 때보다 좀 더 진중한 모습을 띠게 되었으며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가벼운 속성 속에 무언가 사색적인 기운을 품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때로는 의례적으로, 때로는 가식적으로 대하면서 가벼운 인간관계를 생성하고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사물을 응시해보다 불현듯 그들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 또 그들에 비추어서 나 자신을 유추해 볼 때가 있듯이, 일상적 가벼움 속에서도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진지한 속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여기에 작가는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속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의견의 불일치나 그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일상의 사물들과 마주하게 되는 고요한 순간에 잠식해 봄으로써 풀어버리고, 다시 그 울퉁불퉁했던 생각들을 조정하면서 여유를 되찾기를 희망한다.
나는 사물의 정지된 시간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1cm 더 들여다보면 정지된 그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작업노트,『BELT 2009 Artist & Curator_Pick & Match』, 2009, p. 107.) ● 살면서 많은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나와 타인이, 내 자신과 또는 나의 그림과... 여러 상황들 중에 현재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 자신과의 마주함이 아닐까 싶다. (나의 작품은) 조금은 외면하고 싶었던 내 모습과 지금 마주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재 상황을 알고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었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작품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지극히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마음이지만 진심을 담는다. (『마주하다』개인전 도록, 2011, pp. 4,12.)
사물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대입해 보고, 자신이 사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소소한 성찰들이 작품화되어, 다시 그러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그녀가 유화로 그려놓은 락앤락이 왜 자연을 품고 있는지 설명이 될 것이다. 이제 정진경의 사물들은 더 나아가 복잡한 도심 속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느끼며 쉴 수 있는 공원처럼, 그릇의 틀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작은 정원을 품고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가끔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 때 자신의 방에 돌아와 사물들이 단지 제 자리에 평온히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위안을 받은 것처럼, 작품 속의 사물들은 이제 작가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 작지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들 기물은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다. 보는 이들의 복잡한 마음과 고민을 담으려고 자신을 비워놓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비워둠으로써 여유를 두는 공간 구성은 이 기물들을 둘러싼 배경에도 많은 여백을 둔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 숨 쉬며 위로하는 사물들 ● 정진경의 유화 작업이 여백 속에 자연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잠시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산수화가 연상된다. 여기서 왠 뜬금없이 산수화 타령이냐고 할 지 모르겠으나, 동양적인 배경에서 우리의 산수화는 이동시점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한 화면 속에 1점 투시로 구현되어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서양화와는 달리, 여러 자연의 제 각각의 모습이 주관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산수를 보면서 관람자는 마치 화면 속으로 들어가 그림 속을 소요(逍遙)하며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우리의 산수화는 보는 사람을 그림으로 끌어들여 사색하고 거닐면서 정신적인 위안을 받도록 그려진 그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뒤에는 회화적으로 중요한 장치인 이동시점이 작동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동시점 즉 다(多)시점의 체험 방식은 다양한 시점으로 관람자를 위치하게 함으로서 손쉽게 화면 속에 동화되도록 이끈다. 정진경의 사물들 또한 이처럼 매우 다양한 시점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산수화의 체험 방식과 의미를 같이 한다.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옆에서, 다양하게 적용된 시점 방식으로 처리된 사물들은 그 드로잉된 선 만큼이나 비정형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각각으로 처리된 시점들로 사물들은 일률적이지 않고 무감각하지 않은 생명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산수화의 다시점을 일상 기물에 적용시킨 민화의 책거리가 역(逆)원근법을 통해 생명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과 같다. 정진경의 사물들처럼 주 대상을 일상의 책과 기물들을 소재로 하여 보여주는 책거리는 소박한 형태지만 다양한 시점으로 대담한 구성을 보여주어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는 기물들을 담고 있다.
또한 그녀의 드로잉에서 보이는 여러 용기의 형태 중 항아리는 우리의 백자 달항아리를 연상케 한다. 우리의 항아리는 어느 도자공이 수만 번의 숙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을 텐데도 기계적인 매스감보다 오히려 그 비대칭적인 형태에서 손맛이 느껴진다. 정진경의 사물들 속에서 보이는 비정형적으로 유유히 움직이는 드로잉, 다시점으로 제 각각으로 구현된 형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텅 빈 여백은 이처럼 우리의 전통적인 감수성을 일깨워 준다. 관람자와 소통하고자 작품 자체가 스탠다드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틀에 찍은 듯한 형태를 거부하는 우리의 감수성은 보는 이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소소한 성찰을 유도한다. 정진경의 작업에서 따뜻한 감수성이 전달되는 이유는 이와 같이 다양성을 품은 형태를 연상시키기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기에 매우 동시대적인 대상과 기법을 구사한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제재를 사용하며, 실크스크린, 트레팔지 등 매우 기계적이며 기술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보고자 고민한다. 그러나 정진경의 작업에서 동시대 미술의 냉정하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감각적이기만 한 측면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사물과 대화하는 비과학적인 인식의 세계지만 그 속에서 따뜻한 감수성으로 위로하는 이상하고도 모순된 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정진경의 작업 세계는 과정 중에 있기에 아직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트래팔지가 중첩되는 순서에 따라 다른 모습을 구사하듯 그녀의 작업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완성형을 이룰지는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가 그런 도약의 과정에서 중요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현경
Vol.20120403e | 정진경展 / JUNGJINGYEONG / 鄭晉敬 / drawing.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