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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협찬/주최/기획 / ZOOM GALLERY
관람시간 / 10:00am~10:00pm / 토요일_11:00am~08:00pm / 일요일 휴관
줌 갤러리 ZOOM GALLE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384-13 영창빌딩 1층 Tel. +82.2.323.3829 www.zoomgallery.co.kr
실재(實在), 그 '순간의 반복' ● 구름의 윤곽처럼, 늘어진 커튼처럼, 일상이란 그렇게 높낮이를 달리하며 주름지어있다. 그 주름진 커튼 너머 실재(實在)가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실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다. 당겨진 캔버스 천처럼 그 주름진 일상을 펴 보이는 일, 작가 조민희가 그려낸 화면들은 무심한 듯, 형용사를 지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 위로 끊임없이 침묵의 점을 찍어가는 것이란, 작가가 말하는 '보이지만 읽혀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표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예술이 모든 시대와 양식을 아우르며 리얼리티의 구현이라는 것에 근거해왔다면, 작가 조민희의 작품은 시각적 리얼리티의 추구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실재의 모습이란 어쩌면 그렇게 더 과장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화면들은 과장되어진 실재가 아닌, 과장과 위장의 모호한 경계에서, 실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그려낸 '그 무엇'은 그래서 보여지는 풍경이나 장면이 아닌, 추상 되어지고, 사유 되어져야 할 그 무엇일 것이다. 그래서 실재의 재현이 아닌, 실재의 현시가 그 하나의 순간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 위에 그려진 화면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은 읽혀지지 않는 기호와 메시지로 마치 우리가 실재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우리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만나보지도, 누구인지도 모를, 실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어느 인물의 일상의 한 편린을 바라보며, 그것에 맞는 형용사들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실재의 풍경일수도, 혹은 작가가 잘 만들어낸 공간 위에 연출된 장면일수도 있다. 젖혀진 커튼 너머로 잠시 실재를 들여다 보는 그 순간, 우리는 이제 관찰자가 아닌, 그 장면의 서술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커튼의 안쪽에서 나에게서 실재되었던 반복된 순간들, 그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던 실재들, 그 실재의 표정 앞에서 우리들 삶에 대한 서술형의 문장들 또한 여기 작가에게서처럼, 침묵의 점을 수없이 반복하며 찍어가고 있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예술은 표면 위에서 일렁이는 효과들이 만들어내는 일루전과도 같다. 그러므로 사진도 아닌, 이 '정지된' 그림들이 담아낼 수 있는 리얼리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또 다른 실재가 있다. 작가가 그려낸 장면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술해나가는 자아를 사유해 보는 일, 시간의 주름들,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그 무엇을 들여다보는 일, 미술표현이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본질의 현시,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조민희에게서의 실재란, 보여지거나 읽혀지는 것이 아닌, 영원히 반복되는 이 찰나의 순간들 속에서 잠시 커튼을 걷어내어 실재를 바라보게 하는 그 시간에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작가는 우리에게, 삶이라는 본질을 향한 묘사의 과정과, 은유라거나 상징을 감추어버린 벽을 잃은 공간들,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 속의 명사와 동사들을 남겨둔 것이 아닐까. ■ 김종렬
Vol.20120402e | 조민희展 / CHOMINHEE / 曺旼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