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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5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에너지 표출에 의한 리드미컬한 공간 연출 ● 1. 정치, 사회, 경제가 어떤 흐름으로 돌아가던 대중들의 관심사에 있어 지속적인 대세는 바로 라이프 스타일링(life styling)이다. 대중들은 온라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문화가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진 이미지에 자신의 실제 라이프스타일을 담거나 취향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업데이트하고 공유한다. -자신이 식사를 하는 공간, 즐겨 찾는 카페, 인상적인 여행 장소, 선호하는 커피나 와인 등을 공유하는 것은 결국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예술과 일상을 결합시키는 시도로 이어졌고, 예술가와 상업과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스타일링의 진화를 이끄는 세련된 수단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콜라보레이션은 크로스오버(crossover), 하이브리드(hybrid)와 같이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제 3의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는 융합의 방식이 경쟁력인 이 시대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 『Classy lifestyle with Artwork of Park Hyun Su』전 은 박현수의 추상 회화로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인다. 추상 작품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그로부터 삶 속의 어떠한 부분에 영감을 받고 접목시킬 수 있는지 혹은 그것을 통해 어떻게 즐겨야 할지를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실제 생활 속에 작품이 어우러진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박현수의 작품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갤러리나 미술관은 모노톤(monotone)의 공간에서 전시를 제공하므로 집중도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관념적 체험, 무형의 체험으로 끝나기 때문에 작품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느껴지고 활용될지 연상하기 어렵다. 반면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구체적, 물리적 체험이 이뤄진다면 교감과 향유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 이 전시는 결코 작품이 하나의 공간에 장식물로서 기능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작품으로 가능한 체험적 요소를 찾아주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한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박현수의 작품에 의해 생성되는 특별한 기운이 우리에게 위안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이 전시의 최종 지향점이다. ● 박현수 작품의 첫 인상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추상 회화이다. 구체적 대상을 지칭하지 않는 기하학적 형태들과 색의 관계 구성만으로 화면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이 타 분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만 그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더니즘 시기의 회화는 점, 선, 면, 색이라는 순수한 조형 요소들만으로 구성된 평면-캔버스-만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야기의 부재, 일상과의 분리로 이어졌다. ● 박현수의 작품도 순수한 조형 요소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에 삶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교감이 어려운 미술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 회화를 넘어서고 있다. 박현수의 회화는 평면이지만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삼차원적 눈속임이 있다. 작은 도형들은 누가 보아도 조약돌이나 어떤 사물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회화가 삭제했던 구상적 요소를 복구시킨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적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사실은 그것을 벗어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를 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삶 속에서 소재를 찾고 다양한 요소의 융합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번 전시는 바로 이 맥락을 토대로 대중과 멀어졌던 추상 회화를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2. 박현수의 작업은 사물에 빛을 투과하여 어느 정도 거리에서 관찰해보면 결국 모두 원의 형태로 나타나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원은 정확한 실제 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산물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 끝이 희미하게 부유하는 듯한 형상을 띈다. 그는 미국 유타주의 자이언 캐년(Zion Cayon)을 여행하던 중 주워 든 작은 돌맹이 하나가 거대한 자연을 이루는 일부이자 하나의 소우주라는 것을 새삼 의미 있게 인지하게 되었다. 당시 거대한 자연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되고 있는 가운데 그 속의 돌맹이 하나도 실은 우주의 에너지가 집적되어있는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큰 우주위에 분절되어 나타나는 다양한 크고 작은 형상들은 각기 다른 자연 일수도 있고 인간 일수도 있으며 문화 일수도 있다. 자연, 인간, 문화 모두 시간의 층들이 쌓여 이뤄지므로 우주의 생성원리와 맥이 같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박현수는 큰 우주건 미물이건 결국 근본은 같은 것이지만 그러한 양극의 두 개념을 교차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것을 작업의 모토로 진행해 오고 있다. ● 박현수의 작업방식은 물감을 자유분방하게 흘리고 뿌리는 드리핑(dripping)으로 첫 화면을 쌓고 그 위를 단색으로 덮은 후 두 번째 채색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첫 화면이 드러나도록 아주 섬세하게 긁어내는 디깅(digging)으로 마무리 된다. 드리핑은 위에 서서 바닥에 놓인 캔버스 화면 전체를 바라보며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를 최대한 동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고, 반대로 디깅은 캔버스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고도의 섬세함을 발휘하는 점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절제한 정적인 작업이다. 마치 카메라를 줌 아웃 줌인(zoom out-zoom in) 하듯 거시적인 시야와 미시적인 시각을 오가는 작업 행위는 그 자체가 작가 자신이 큰 자연 속 조약돌을 보며 양극단의 시야를 오갈때 느꼈던 우주의 에너지의 흐름을 비유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우주의 에너지는 전부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모여 상호작용을 하면서 생성된다.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의 순환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리듬이 생겨난다. 양극을 오갈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인 리듬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박현수의 작품은 에너지 표출에 관한 연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반대급부를 교차시키는 맥락은 레드와 블루 혹은 화이트와 블랙컬러를 한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음과 양의 공간을 병치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한 완전히 평면적으로 쌓아가는 작업임에도 결과적으로는 디깅을 통해 뒤의 화면이 앞으로 돌출되어 보임으로써 평면과 입체의 상반된 효과를 교차시킨다.
3. 진화랑 신관 1층은 침실 공간으로 꾸며졌다. 들어섰을 때 중심에 보이는 그레이톤의 침대와 레드톤의 침구는 박현수 작품의 이중성(duality) –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에서 영감을 받아 매치하였다. 정적인 것은 쉼을, 동적인 것은 역동적인 활기를 연상시키기에 차분한 그레이와 선명한 레드를 만나게 했다. 개성 넘치는 에너지 표출을 원하면서도 그만큼의 휴식 공간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블랙 콘솔에 화이트 깃털 조명은 블랙과 화이트를 한 화면에 조화시킨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데, 작품이 음양의 교집합인 만큼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 공존한다. 연출 또한 색감적으로는 딱딱한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편, 디자인의 디테일에서는 요염한 여성스러움으로 시선을 잡는다. 침대에서 바라보는 벽에는 장식적인 바로크풍 액자 틀에 박현수의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을 설치하여 작가에 관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박현수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디지로그(digilog)적 감성 - 아날로그적 붓질 속에 3D 영상 같이 돌출되어 보이는 디지털적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 - 을 적용한 것이다. ● 2층은 차를 마시는 공간을 몇 가지의 다른 테마로 연출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그린 빛의 러그(Rug)위에 화이트와 레드를 조합한 싱글 체어(single chair)와 티 테이블을 배치하고 광고 촬영에 사용되는 조명을 비추었다. 실내지만 마치 잔디밭 위에서 박현수의 작품을 큰 창처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고품격 아파트 광고의 세트장 같은 기분을 누리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는 완벽한 포토 존(photo-zone)으로 의자에 앉아 사진 촬영을 하면 한 장의 광고 포스터 같은 효과가 난다. ● 반대편에는 박현수의 120호 대작 두 점을 사선으로 벽에 기울이고 러그 위로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베이지 톤의 방석과 쿠션을, 주변으로는 구형의 조명을 여럿 늘어놓았다. 이는 마치 아직 텅 비어있는 빈 집을 채우기 직전에 바닥에 누워서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 나갈지 여유롭게 상상해보는, 공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의 느낌이다. 이것이야 말로 축복받은 게으름 속에서의 공상이다. ● 박현수의 작품을 통한 몇 가지의 공간 연출은 그의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가 무한히 전개될 수 있다는 여운을 전하고, 예술과 삶의 행복한 결합을 보여준다. 나만의 공간에 테마가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자부심과 풍요로운 감성을 갖게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당신은 박현수의 작품으로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해볼 것인가? ● 예술이 있는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감성은 무한하고, 라이프스타일의 진화도 무한해진다. ■ 신민
차이의 반복을 통한 대립항들의 조응 ● 진정한 화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문제에 몰두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모든 문제의 조건들을 뒤흔든다. 진정한 화가의 탐구는 부분적인 것으로 보일 때라 하더라도 언제나 총체적인 탐구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64.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Paris: Gallimard. 1985), p. 89. 작가가 빈 캔버스를 마주보고 서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작가는 갑자기 물감을 뿌리기 시작한다. 캔버스는 이내 물감으로 가득 차고 그의 힘과 에너지, 격렬한 행위는 그대로 정착(定着)된다. 잠시 후 작가는 정제된 단색조의 물감으로 드리핑(dripping)의 흔적들을 덮는다. 자신이 남긴 흔적들을 완벽히 감추기 위해 최대한 균일하고 평평하게 칠한다. 이제 작가는 자신이 제작한 도구들을 가지고 단색조의 물감층을 조약돌, 산, 지구, 세상의 만물을 닮은 형상으로 섬세하게 도려낸다. 고요한 평면 아래에 숨겨졌던 에너지가 빛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소용돌이와 정적이 공존하는 캔버스에는 상반되는 존재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에너지의 조응(照應)을 이뤄낸다. 작가는 물감층을 파내는 이 마지막 과정을 '디깅(digging)'이라 이름 붙인다. 그것은 단순히 파내는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발굴하고 탐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 박현수는 '양극단 사이를 역동하는 본질적 에너지, 그 에너지와 세계와의 조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숨기기와 찾아내기라는 모순적 행위를 반복한다. 그 반복의 과정을 통해 대립항(對立項)들이 충돌과 조화를 이루는 이중성(duality)의 세계가 발굴된다. 이중성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진실이다. 작가는 '왜 대립항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에 권력을 주어야 하는가? 왜 평균을 내고 절충안을 찾아야 하는가? 왜 사람들은 반대되는 것들이 전무(全無)한 세상이야말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작가는 상이한 두 존재가 만나는 접면(接面)에 나타나는 날카로운 긴장감에 주목한다. 그리고 오직 대립항의 긴장 관계 속에서만 이 세계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박현수 자신이 찾아낸-진리를 보여준다. ● 세계의 이중성에 대한 작가적 탐구는 메타 회화(meta-painting)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박현수는 작업 초기부터 회화의 탐구 대상이 회화 자체인 회화, 회화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반성적 회화 작업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리듬 Rhythm』, 『싱글 Single』등의 연작에는 추상과 구상, 형식과 내러티브(narrative), 평면과 깊이처럼 모더니즘(modernism) 회화와 비(非) 모더니즘 회화의 대립되는 특성들이 공존한다. ● 회화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상으로,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복합적인 표현으로 전개되어 왔다. 20세기 이전의 회화가 세계와 세계 속의 대상들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후에는 화면 속 조형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구성과 형식 실험이 중요시되었다.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자성을 확립하기 위한 고민은 평면성으로의 집중을 가져왔고, 추상 회화는 자신의 독자성을 최고치로 획득하게 되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미술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동일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현실에서 이탈했으며 난해한 관념의 세계를 부유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80년대 이후의 회화는 모방(mimesis)을 벗어난 구상적 이미지(image)를 복원시켰고 점차 구상과 추상 이미지가 결합되기 시작했다. ● 오늘날의 화가들은 모더니즘과 추상 회화의 역사는 물론 그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평가들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회화의 독립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적 다원주의가 생소한 것도 아니기에 회화를 구상과 추상으로 이분하고 그 중 어느 한 편에 서서 순수성을 유지해야 할 부담도 없다. 이러한 동시대적 화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현수는 회화의 개념과 구조에 대한 메타적 탐구를 위해 추상 회화의 어휘로 추상 회화를 성찰한다. ● 구상 회화에서 시작된 박현수의 작업은 미국 유학과 함께 추상 회화로 전환되었다. 그는 화려한 색채와 격렬한 붓질이 주(主)가 되는 두꺼운 마티에르(matière)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위에 색지, 포장지, 한지 등을 콜라주(collage) 했다. 작가는 이 시기를 중첩과 축적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이후 축적은 검정색 종이를 매일 4시간씩 2년간 잘라내는, 수행과도 같은 장기간의 작업을 통해 비우기로 전환되었다. 구상과 추상, 쌓기와 비우기라는 양극단을 모두 경험한 작가의 최종 선택은 하나만 남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는 21세기까지 지속되어 온 모든 회화적 행위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자 그에 대한 성찰과 사색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부터 이중성이라는 진리와 작가와의 조응이 시작되었다. 박현수에게는 평면이든 환영에 의한 입체이든 모두 회화이며, 즉흥적이고 역동적인 뿌리기와 계획적이고 정적인 파내기 모두 회화적 행위이다.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큰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모두 화가의 창조물이자 세상의 일부이다. 인위적으로 하나를 선택할 필요도, 공통점을 찾아낼 필요도 없다. 그것들 사이의 위계적 우월성 역시 중요하지 않다. ● 박현수 작업의 바탕이 되는 액션 페인팅과 색면 추상(color field abstraction)은 모더니즘 회화의 정점이다. 형상과 배경의 관계가 붕괴된 캔버스는 안과 밖, 깊고 얕음 같은 시공간적인 전후가 존재하지 않는 비일상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이 관념의 세계는 '디깅'을 통해 전환된다. 각각 드리핑과 붓질로 이루어진 두 겹의 물감층 중, 위의 한 겹만을 떼어내는 행위는 미세하지만 물리적 높낮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디깅'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원색의 물감 자국들은 돌출과 함몰의 착시 효과를 이끌어내어 깊은 심연의 공간, 한 없이 빠져드는 깊이감을 창출한다. 이것은 회화의 평면성을 확고히 했던 두 기법이 만나 회화의 평면성을 깨는 모순적인 상황이자 대립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디깅'의 결과물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태는 조약돌,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과 섬, 행성 등을 연상시키며 광대한 자연과 우주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작가는 추상 회화의 방식을 이용하여 물리적 깊이감, 시각적 공간감, 내러티브를 재생시켜 모더니즘 회화를 넘어선다. ● 박현수가 물감층을 파내는 작업은 데콜라주(décollage)의 변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데콜라주와 '디깅'은 분명 모더니즘 회화를 반성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의 데콜라주가 현실의 차압이라는 모토(motto)를 토대로 강한 정치적 메시지와 사회 비판, 소비 사회에 대한 반감, 미술에 대한 공격적인 저항과 부정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박현수의 '디깅'은 모든 차이와 반대항(反對項)들의 수용이자 회화적 탐구를 위한 순수한 예술적 행위이다. 데콜라주가 박탈과 제거를 의미한다면 '디깅'은 찾기와 창조를 의미한다. ● 흥미로운 것은 '디깅'이라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의 결과물이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을 갖는, 모두 다른 모양의 형상(figure)들이라는 사실이다. 동일하지 않은 형상들이 무한 반복되는 상황을 만듦으로써 박현수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반복을 동일한 것의 되풀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했듯 동일한 것의 반복은 불가능하며 오직 차이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같은 것의 반복으로 보이는 것의 내부에는 언제나 불균형, 불안정, 비대칭, 일종의 틈새와 간격들로 구성되는 역동적인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이의 반복을 통해서만 다른 모든 시간을 포함하면서도 새로운 차이를 생성시키는 전체적 시간이자 재생산의 시간인 영원회귀(永遠回歸)에 이를 수 있다. 영원회귀 속에서는 출생과 죽음, 출발과 회귀 같은 대립적 순간들도 나선형으로 감기는 반복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가 현재라고 말하는 이 순간은 단순한 찰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뒤로는 영원한 과거가 있고 앞으로는 무한한 미래가 펼쳐진다. 순간은 대립하는 두 개의 영원이 만나는 긴장과 모순의 접점이다. 이 순간은 과거에 미래였으며 미래에는 과거가 된다. 분명 다른 이름의 시간인데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지며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오직 차이만을 기원으로 갖는 영원회귀는 우리에게 오고 가고 돌고 도는 삶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모든 것, 차이 나는 모든 것, 우연한 모든 것에 대해 긍정할 것을 주문한다. 이로써 균일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적이고 연대기적인 세계관은 그 빛을 잃는다. ● 박현수의 작품은 드리핑, 붓질, '디깅'의 반복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를 긍정하고 포용하며 종합하는 지속의 시간을 담아낸다. 지속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분리되어 운동하듯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박현수의 작품을 매개로 하여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으며 미래의 시간들을 예기(豫期)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차이의 반복 속에서 일어나는 대치되는 것들의 충돌과 조화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긍정의 힘을 만들어낸다. 하나는 전체와, 순간은 영원과 연결되며 만물은 반복을 통해 진동한다. ● 이제 회화에 대한 작가의 성찰은 세계에 대한 것으로 확장된다. 박현수의 작품에는 해가 보이고 달이 보인다. 지구가 보이고 우주가 보인다. 작은 조약돌이 보이고 거대한 산맥이 보인다. 자연이 보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보인다. 모든 것이 함께 하는 광대하고 무한한 세상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것들도 결국은 모두 세계의 일부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렌즈가 줌 인(zoom in), 줌 아웃(zoom out)으로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평상시에도 과학 실험의 예를 들면서 세상의 같음과 다름을 설명하길 즐긴다. 어떤 대상이든 멀리 조망하면 그것의 윤곽이 흐려지고 원형(圓形)에 가까워진다. 물론 이 때의 원형은 단순히 기하학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다. 원이지만 우리의 지구, 우주가 그렇듯 무수한 차이들의 무한 반복을 상징하는 원형이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만물은 언제나 같음과 다름이라는 양극을 오간다. 박현수에게 중요한 것은 대립되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에너지의 조응이다. ● 차이의 반복을 통해 모든 차원, 모든 시간, 모든 다른 존재들을 종합하고 재생성하는 박현수의 작품은 어떠한 체계와 한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역동하는 혼재소(混在所)와 같다. 박현수는 안과 밖, 미시와 거시, 정적과 소란, 문명과 자연, 동양과 서양, 음과 양, 중력과 무중력 같은 대립항들을 충돌시킨다. 대립항들의 충돌이 일어나는 그의 회화는 고요와 혼란이 공존한다. 박현수는 결코 중간 지점을 찾지 않는다. 양극을 나누고 평가해온 이분법의 경계를 해체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립항이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만나게 할 뿐이다. 그가 대치(對峙)적인 부분들을 보여주는 것은 이분법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대치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 하는 세계의 이중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회화-예술-는 이미 그 자체로 대립항들이 조응하는 모순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회화는 시각적인 것을 통해 비시각적인 것을 전달한다. 또한 외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과 내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통합되는 극적인 순간을 창조한다. 회화에는 순수한 조형적 요소들과 의미를 담아내는 상징적, 재현적 요소들이 병치된다. 예술 활동을 통해 작가와 관객, 주체와 타자가 만나며 작가와 세계가 만난다. 박현수의 작품은 반대항들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최고의 접점이다. 박현수는 잠재된 무수한 개별적 차이들이 생성되고 현실화되는 회화적 표현(expression)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표현이 완성될 때 작가와 세계 사이의 조응이 완성된다. ■ 이문정
En 『travaillant』 l'un de ses bien-aimés problémes, fût-ce celui du velours ou de la laine, le vrai peintre bouleverse à son insu les données de tous les autre. Méme quand elle a l'air d'être partielle, sa recherche est toujours totale. Maurice Merleau-Ponty. 1964. L'Œil et L'Esprit. Paris: Gallimard. 1985, p. 89.
Vol.20120327f | 박현수展 / PARKHYUNSU / 朴顯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