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sh Blood II

박진영_오종은_최정윤展   2012_0327 ▶ 2012_0504 / 주말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 / 샘표식품 주식회사 기획 / 샘표스페이스

관람시간 / 09:00am~05:00pm / 주말 휴관

샘표스페이스 SEMPIO SPACE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231번지 Tel. +82.31.644.4615 www.sempiospace.com

샘표 스페이스에서 올해로 제 2회를 맞이하는『Fresh Blood』展이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을 조망해보는 전시이다. 큰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신진'을 의미하는 전시 제목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다양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한국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신진 작가들을 모아 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 이번에 선정된 그 첫 번째 작가로 박진영의 작업은 세상이 우리에게 지위, 명예, 부를 위해 각자의 역할에 따른 책임을 과하게 요구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아 속 잠재 되어있는 욕망을 작업을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를 중시하며 무리를 형성해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인간들은 개개인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단점은 은폐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경쟁구조 안에 생존의 수단으로써 단점을 강점으로 엄폐시키는 형국에 자신의 치부, 더러운 영혼, 나약한 자신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박진영은 스펙 쌓기에 과열된 형상에 맞춰진 우리네 젊은이들에게 담대함을 제시해 주려 하는지도 모른다. ● 오종은은 추상 혹은 반추상의 형태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나간다. 특히 내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현실을 '꿈'을 통해 매개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을 피력한다. 단어 그대로 초현실주의의 작품 안에서는 모든 형태, 선, 색의 메시지를 담아 자신만의 감성적 기호로 풀어낸다. 감상하는 관람자는 미적 감성의 눈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대입하여 또 다른 자신만의 감성적 기호로 해석 할 수 있다. ● 최정윤은 현대를 살아가는 자아의 모습을 건축물에 투영시켜 조각내고 분산시키며 재조합 하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역사적으로 각 시대상을 반영하는 건축물은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시 속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유리로 둘러싸여, 어쩌면 상징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흐름 속 현대인의 모습을 스스로 성찰하기 용이한 조건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 이유로 간과하기 일쑤다. 최정윤은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이야기 하며 미학적으로는 기형학적이며 아름다운 패턴으로 표현해낸다. ● 이렇듯 다양한 작가들의 고뇌를 자신들의 미적인 감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신진'의 기세에 걸맞게 과감한 소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다소 거친 듯, 다소 설익은 듯 하지만 그 안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시에 이번 전시를 통해 오늘의 젊은 작가들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며, 이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 김연희

박진영_초상A_혼합재료_116.8×91cm_2011
박진영_초상A_혼합재료_162×260cm_2011
박진영_불편한 초상_혼합재료_72.7×90.9cm_2010

인간은 폭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어린아이의 잔인함을 떠올려보자. 어린아이는 생명의 존귀함을 알지 못한다. 잡은 잠자리의 날개다리를 하나씩 뜯어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선 생명은 한낱 유희의 도구일 뿐이다. 이런 점들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학대하고 어린아이를 성폭행하고 이유 없이 인간을 살해하는 어른들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들은 그것을 잠재우고 선을 행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길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사회의 규칙들과 질서, 생명의 존귀함, 우정, 사랑에 대해 배운다. 그럼에도 충동적 으로 타인을 향한 공격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왜일까. 우리는 욕망을 품고 사는 존재들이다. 무언가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선 때때로 타인의 욕망이 내 것인 것처럼 편입될 때도 있고, 부모나 타인이 나에게 갈망하는 욕망 또한 우리의 내부에 스며든다. 우리의 내부엔 나의 것, 타인의 것, 타인에게 강요 된 것 등 너무 많은 욕망이 존재한다. 과잉된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이것들은 스스로 실현되기 위해 잠자는 폭력이라는 괴물을 불러들인다. 우리의 의식 밑엔 폭력이 잠자고 있다. 억압되어 있는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틈틈이 귀한한다. 나는 억압된 폭력을 해방하고자 한다. 그러나 폭력에게 자유의지를 심어주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를 끄집어내 그것이 주는 공포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함이다. 억압된 우리의 불편한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고 있던 굴레를 벗어나려 한다. 흉측하고, 금방이라고 타인을 뚫어버릴 것 같이 중무장한 초상이 있다. 이는 우리가 인정해 주지 않은 진정한 영혼의 모습일 것이다. ■ 박진영

오종은_nuclear bomb-1_나무에 혼합재료_129.8×199.7cm_2012
오종은_time travel-1_캔버스에 혼합재료_50×244cm_2011
오종은_come back home-1_나무에 혼합재료_199.7×129.8cm_2012

본다는 것, 무의식과 꿈을 통해 현실을 보다... 꿈: 내면의 시선을 따라간 일상과 꿈의 기억을 통한 부조리한 현실 보기.1. 나의 작업의 한가운데는 늘 '인간'이다. 그들의 내면과 소통방식, 관계성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들은 욕망과 결핍의 관계와 더불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인간의 이중성. 본다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 삶의 모호성과 갈등에서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의 간극. 모든 사회가 주는 경계 안에서의 부조리함을 발견하고 그것은 꿈속의 이야기, 기이하고 파열된 시선의 분열을 통한 응시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들은 나의 무의식을 통해 깨어지고 또 열려지면서 깊은 심연 속으로 이끈다. ● 2. 본다는 것. 꿈으로 가는 욕망과 결핍의 열차. - 보는 것이 아는 것인가. 아는 것이 힘인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중성. 그 안과 겉의 진실과 거짓, 아픔, 시선의 배신, 무엇을 본다는 것의 회의, 어느 순간부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기고부터 인간 내면의 모습과 보는 것과는 큰 상관관계가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본인에게 가장 큰 환상의 공간은 꿈이고 그 꿈을 통해 현실의 결핍과 욕망을 본다. 꿈과 환상은 주체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다. 꿈은 현실이 주는 무의식의 연장이기도 하다. 꿈은 우리를 숨쉬게 해주는 정신의 탈출구이자 또 다른 세계와의 조우이다. 우리는 꿈 꿀수 없는 현실을 꿈꾸지만 그것은 현실이 주는 무의식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 이상스럽고 기이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또 다른 현실을 말해주고 있으니 꿈이야말로 인간의 총체적인 관계와 역사를 말해주는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이다. 결핍과 환상-욕망은 살아 있는 한 충족되지 않는 결핍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환상이 필요하다. 환상은 주체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며 비록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신기루가 없이는 사막을 걷지 못하는 인간은 추구하는 대상이나 목표없이 살아가지 못한다. 환상이란 주체의 시선과 대상의 응시가 교차하는 어느 시점이 생긴 이미지이다. 그러나 주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이미지를 실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욕망의 본질이요, 실재계의 난 구멍이요, 삶의 근원적인 허무이다. ● 3. 미란 언제나 기이한 것이다.(le beau est toujours bizarre)_보들레르 -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에 대해 알아보면, 일시성, 순간성, 우연성이다.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그야말로 변덕스러운 미의 표현들, 여기에서 그가 말한 현대의 미(美)의 정의를 나타낸다.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변덕스럽고 변화가 많은가? 우연히 만들어진 약간의 기이함, 천진하고 비의도적이며 무의식적인 기이함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들레르의 bizarre는 다양하고 변화가 심한 아름다움으로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는 정신성의 요소이다. 보들레르의 이 이론은 본인의 작업에 큰 영감과 공감을 주었다. 요즘 작업들은 꿈속의 자연의 모습을 많이 그린다. 등산을 하면서 자연에 감사함과 경외의 마음을 배웠다. 나무의 껍질 색, 잎새의 모양, 물방울, 꽃, 여러 동식물들이 모두 날 매혹시킨다. 그것들은 부드럽게 유영하고 흩어지듯 사라지고, 어느새 우리들 곁에 있다. 그것들은 희고도 검고도 푸르고도 붉은 물결로 다가온다. ■ 오종은

최정윤_Intimate Union01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1
최정윤_ailleurs02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1
최정윤_ailleurs03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1

도시라는 숲에 / 빌딩이라는 나무 사이에 / 그렇게 서있었다. // I feel this city where I exist in is a forest / that was made buildings like trees / And I'm standing alone between there. // 현대사회로 올수록 개인에게 주어지는 역할 - [ role , 役割 ] 사회질서 속에서 차지하게 되어 있는 개인의 자리 또는 지위에 따른 정상적인 행동양식 - 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은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모습도 반영된다. 또한 연령과 성(sex), 공적/사적인 자리, 선천적/후천적인 역할에 직면하게 되어있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고정적이기도 매번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듯 개인은 '여러 조각'인 동시에 '하나'의 자아로 존재한다. 우리는 조각난 자아를 나열하기도 하고 분절과 재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하루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나를 분화시켜 보이지 않는 설계도에 따라 또 다른 나 혹은 그 무엇으로 재조립하다 보면, '지금의 나'와 '또 다른 나'가 모호한 경계 속에서 만난다. 이것은 나에게 부정적인 불안함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의 새로운 파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자아의 모습을 건축물에 투영시켜 조각 내고 분산시키며 재조합 한다. 현대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건축물 또한 홀로 존재 한다기보다 그 표면엔 비추어진 주변 건물과 풍경들과 공존한다. 어제 있었던 건물이 오늘 사라지기도 하는 요즘은 다각화 된 풍경도 고정적이지 않고 여러 이유와 목적, 필요에 의해 변화한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한 건물의 고유한 모양(shape) 재현해 보이는 것이다. 모양(shape)을 파편화시켜 펼친 다음 이어 붙이고 나열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 하게 되고 건물이라는 한정적 공간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머금은 확장된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들을 반복하며 잠재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어떤 나, 혹은 다른 무엇과 만나게 될지 기대해본다. ■ 최정윤

Vol.20120327c | Fresh Blood II-박진영_오종은_최정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