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321_수요일_05:00pm
후원 / 주한 러시아 대사관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목인갤러리 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2.722.5066 www.mokinmuseum.com
이승은이 우리에게 보내온 마뜨료슈까의 연인들 ● 마뜨료슈까는 달걀 모양의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겹겹이 들어있는 러시아 민속인형이다. 양파처럼 한 꺼풀 드러내면 그 안에 똑같은 모양의 인형이 들어 있다. 단순하면서도 정감이 가고, 그러면서도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나무의 재질은 참피나무. 그래야 터벌어지지 않고 뒤틀리지 않는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가 바로 이 피나무를 두고 노래한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자라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많이 자란다.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100여 년 전 러시아의 한 기업가의 아내가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평소 보던 것과는 모양이 다른 배불뚝이 목각인형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 인형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힌 처녀의 모습으로 제작해 러시아에 들여왔다. 그리고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해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이 되었다. ● 그리고 100년 지난 다음 한국의 한 상사맨의 아내가 남편을 따라 모스크바에 갔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녀는 그곳에서 이제까지 보았던 것과는 다른 배불뚝이 인형을 만난다. 러시아 민속의상을 입은 인형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아주 색다른 것들도 있다. ● 제일 바깥에 푸틴의 얼굴로부터 시작해 차례로 옐친, 고르바초프, 체르넨코, 안드로포프, 브레즈네프, 스탈린, 그리고 제일 안에 인형세트의 씨앗처럼 땅콩 크기만한 레닌이 그려져 있는 것도 있고, 그 무렵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클린턴의 경우 부인인 힐러리보다 한때 그의 애인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의 얼굴을 두 번째에 그려 넣어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풍자하기도 한다.
예술은 그것이 어느 분야의 것이든 그 예술가의 남다른 상상과 열정의 소산이다. 러시아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마뜨료슈까를 러시아의 민속인형으로만 보고 관광상품으로만 대할 때 한국의 한 동양화가는 거기에 러시아적인 것과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결합하면 어떨까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질적인 두 요소의 융합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의 창조다. ● 그는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은 마뜨료슈까 세트를 들여와 거기에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를 담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작업시절 나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그의 마뜨료슈까 작업이 이미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은 매우 신들려 있었다. 이 러시아 민속인형이 100년 전 일본 목각인형에서 출발해 한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콘이 되었듯 그는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가장 러시아적인 마뜨료슈까를 통해서 가장 한국적인 작업, 그리고 가장 자기다운 작업을 할 수는 없을까 연구하고 모색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블로그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지는 그녀의 작업광경과 그때그때의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마뜨료슈까의 연인'을 보내온 이승은이다.
그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우리가 동양화에 대해 막연한 환상처럼 가지고 있는 '일필휘지'와는 전혀 다른 풍의 그림을 그린다. 나의 화단 교류가 넓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나는 이승은만큼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를 거의 본적이 없다. 예전에 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꼼꼼하게 작업했고, 그것이 단색 삽화인데도 그녀의 그림은 늘 화려한 색상들을 바탕에 깔고 있는 듯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마뜨료슈까의 연인'들 역시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황진이도 있고, 매창도 있고, 계월향도 있고, 홍장도 있다. 이승은의 '연인'은 화려한 색감의 섬세함으로 그들의 생의 아픔과 예술적 혼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위로한다. 그래서 이 '연인' 시리즈가 보여주는 색감의 화려함은 언뜻 그들이 가졌던 기예만큼이나 도발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화려함 속에 오히려 이들 가슴 밑바닥에 쌓여 있는 슬픔의 우물 같은 처연함이 배어 있다. ● 화가에게 그림은 곧 그의 마음이다. 저 양파 같은 저 연인들의 제일 깊숙한 가슴 속엔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그녀들의 사랑이 숨어있다. 열고, 열고, 또 열어도 다 열리지 않는 조선 연인들의 사랑과 향기와 그리고 화려하여 더욱 처연한 생의 근원과 같은 슬픔이 있다. 예술의 슬픔이며 연인의 슬픔이다. ■ 이순원
Vol.20120321b | 이승은展 / LEESEUNGEUN / 李承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