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展 / MINBYUNGHUN / 閔丙憲 / photography   2012_0317 ▶ 2012_0506 / 월요일 휴관

민병헌_WV022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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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317_토요일_05:00pm

갤러리이레 3주년 기획展

관람료 /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이레GALLERY JIREH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8-12(법흥리 1652-405번지)Tel. +82.(0)31.941.4115www.galleryjireh.com

민병헌의 사진을 처음 접하게 되면 가슴이 먹먹하고 잔잔한 감동이 전해진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짙은 안개가 가득한 꿈속을 거닐듯,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될 때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련히 보이는 희뿌연 빛깔을 담은 화면, 긁힌 듯 맺힌 듯 엉켜있는 미묘한 자국들, 그리고 배경과 피사체가 구별되지 않는 평평한 표면 등 그의 작품들은 회화적 요소가 많은 듯 보인다. 즉 민병헌의 사진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사진에서 기대되는 것들을 과감히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눈의 직관'을 좇은 스트레이트 사진을 찍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광원이 없는 중간 톤의 밋밋한 빛에 의지하여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기고 인화도 중간 톤의 인화를 좋아한다. 그의 작업에서 인화는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정통적인 사진 제작과정을 가감 없이 수행한 그의 사진은 아무런 인위적 조작을 가하지 않은 매끈한 프린트 자체임에도 매우 촉각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만져 보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그것은 섬세하면서도 균형이 심하게 흐트러져 얼핏 보아 중심을 상실한 듯 허약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미묘한 톤의 변화와 완벽히 통제된 듯한 작은 흔적들에 의해 극도의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섬세한 색조의 변화와 얼룩의 정체를 감지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 "자유롭게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_민병헌 그는 빠르고 날카로운 직관으로 "사진 작업이 아니고는 결코 표현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사진적 대상"을 추구한다. 이 대상은 크고 거창한 것, 혹은 기념비적이고 극적인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작고도 별거 아닌 것, 의미 없는 것들 그리고 풍경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해석은 '문명의 현상보다는 자연이 자연을 변화시키고 있는 현상들'에 더 이끌리는 사진가인 것이다.

민병헌_DF040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98
민병헌_SL107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5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여「섬 Island」,「잡초 Weeds」,「깊은 안개 Deep Fog」그리고「Snow Land」와「숲 Trees」,「인물 Portrait」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전형적인 자연의 소재들을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사유화하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 프로세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듯 하얗게 부서지는 찬란한 나뭇잎, 부드럽게 번지듯 스며드는 짙은 어둠의 숲, 심연처럼 온 세상을 감싸 안은 짙은 안개를 담은 흑백의 계조는 소재를 뛰어넘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에게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어왔다. 그는 작품에서 온전하게 자유롭다. 자연 앞에서 그가 느낀 바에 따라 톤을 조정하는 것일진대 그 미묘하고 섬세한 몰입의 경지가 감탄스럽다보니 자유롭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사진 앞에서만 서 있어도 작가가 겪어낸 엄밀한 선택의 순간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해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민병헌_FF013-1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10
민병헌_MG364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10

그의 사진에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민병헌의 작품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지점이 있다. 「Snow Land」 연작에서 눈은 흰색과 밝은 회색의 톤을 사진 전면에 부여하여 전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눈보라는 숲을 덮으며, 운무는 나무 꼭대기에서 하얀 장막을 드리운다. 눈은 빛을 대체한다. 눈에 덮인 세계는 사진을 최소화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나무와 산비탈의 흙은 마치 가볍게 긁힌 자국들처럼 희미하게 화면을 덮고 있다. 눈이 내린 세계는 어디를 보아도 균일한 거리의 음영(陰影)들만을 드러낼 뿐이다. ● 「폭포 Waterfall」연작 중의 많은 작품은 수직으로 하강하는 물줄기를 중립적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해서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동감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사진들은 셔터를 길게 늘려 물의 흐름이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셔터를 아주 짧게 끊어서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그의 사진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딱 '중간'으로 흘러내린다. 운동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물줄기에 집중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물의 흐름과 반대로 내 몸이 끌어올려지는 듯한 착시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물줄기를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물줄기 그 자체를 사진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함에 몰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물줄기 사이에도 회색이 자리 잡고 있다. 정서 혹은 가치 판단으로부터 중립적인 좁고 세밀한 범위의 회색 층이 만들어낸 엄정성이 정적인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 사진의 기계성에도 불구하고 민병헌의 작품의 시선 속에는 어떤 다른 것이 내재되어 있다. 시선의 욕망이라는, 상투적인 표현 대신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인물 Portrait」연작은 다른 풍경사진처럼 텅 빈 공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여성을, 그것도 옷을 반쯤 걸쳤거나 벗은 여성의 누드를 찍은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피사체인 여성들의 모습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에로틱하다. 이 사진들은 다른 민병헌의 사진들과 달리 구체적인 욕망의 대상을 직시하고 있다. 피사체인 여성의 몸은 마치 목탄으로 그린 것처럼 상대적으로 뚜렷한 부분들과 흐릿하게 번진 듯한 모호한 그림자들로 묘사된다. 포즈는 바로 이 정지 상태에 의해 구성된 또 다른 대상(반투명한 스크린)에 대한 시선의 욕망이 사진의 이중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생생한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것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모호하게 만든다. 남은 것은 사진의 표면과 그 표면에 기록된 시선의 흔적이다.

민병헌_TR124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8

이와 같이 민병헌 연작시리즈를 살펴보면 그의 작품들이 지니는 힘은 오히려 그 어느 곳에서도, 언제라도 우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상상의 세계의 주인이 되라고 청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 속에서 감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감각적 몰입을 통해서 내적 상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 갤러리 이레

Vol.20120317d | 민병헌展 / MINBYUNGHUN / 閔丙憲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