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316_금요일_07:00pm
후원 / (사)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주최 /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형광등이 눈부신 밤이다. 복도 가장자리에 위치한 내 작업공간은 빛이 좋지 않은 탓에 십자등을 박아 두었다. 네 개의 형광등이 제각각 차가운 빛을 내뿜어 스산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어느덧 나무껍질과도 같은 텁텁한 날개를 가진 나방이 한 마리 들어와 형광등에 탁, 탁 하고 제 몸을 부딪쳐댄다. 텁텁한 날개를 가진 나방은 패널 위를 서성거린다. 패널 위에는 지독한 냄새를 내뿜는 그녀가 듬뿍 얹혀 있다. 그녀는 끈적끈적하고 아름다운 진홍색을 가진 페인트이다. 이윽고 나방은 얇고 가녀린 한쪽 다리를 헛디디고 만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쪽 다리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푸드덕 거리며 발광하던 나방은 빠르게 집어삼켜 진다. 다리와 왼쪽 날개, 몸통, 머리, 더듬이에 이르러 마침내 오른쪽 날개까지. 날개가 삼켜질 때 즈음, 이미 나방의 발버둥은 멈추어져 있었다. 지독하고도 아름다우며, 무섭고도 고혹적인 광경이다.
그녀에게는 나방을 집어삼키는 것과 같은 힘이 있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빛깔은 강렬하고도 매서운 것이 실로 압도적인 까닭에 다른 어떤 질료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빛을 뿜어내기도 바쁜 탓이다. 또한, 여정의 목적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기 일쑤임은 물론, 고집은 또 어찌나 세던지 타협할 줄을 모른다. 다른 질료가 접근해올 때, 그녀는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동물처럼 돌변하여 질료들을 몰아내어 쫓아내거나 말살시키곤 하는 것이다. 그녀는 모래사막의 소용돌이와 같은 존재여서 두려움과 동시에 눈을 뗄 수 없는 매혹 감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에게 홀린 나는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패널들을 눕혀댄다.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지고 있던 페인트를 모두 꺼낸다. 가빠진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가 곧 작업을 시작한다. 페인트에 쑤셔 박아 놓았던 붓을 잡아들고 패널 위로 들이댄다. 붓은 번갯불 마냥 단숨에 패널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지면 위를 지나듯 기어가기도 한다. 붓 끝에는 항상 페인트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려 놓은 채로 깐작깐작하게 매달려있다. 페인트의 강인한 점성은 중력에 경고라도 하듯이 붓으로부터 쉽사리 꼬리를 끊을 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패널 위로 떨구어진 페인트의 조각들은 끊어진 꼬리를 다시 찾으려는 듯 겹겹이 쌓여 위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때로 페인트는 쉬이 패널 위에 안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표류한다. 그 움직임에는 정처도 없고 규칙도 없다. 마치 안락한 선착장이 보장되지 않는 항해와 같다. 그럴 때면 나는 그녀에게 조롱당하기라도 하는 듯 한 기분에 휩싸인다. 두 귀에서는 그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꼬물거리는 그녀들을 보며 잠시 허리를 바로 세운다. 시간이 멈춘 듯, 패널 위를 뚫어져라 응시해 본다. 그러다 또다시 눈을 감아 본다.
아무도 없는 이 건물의 밤은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날카롭다. 몸을 의자에 눕히고 열어놓은 창밖을 바라본다. 방충망도 없는 저 작은 창문에서는 무중력의 어둠이 곧 삼켜버릴 듯이 나를 쏘아본다. 그곳에서 또다시 잡다한 날벌레들이 날아 들어와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형광등에 제 몸을 부딪쳐댄다. 형광등 아래에는 여전히 진홍색의 아름다운 그녀가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다. 시시각각 까르르 웃어대며 매혹적인 향을 내뿜기도 한다. 형광등에 제 몸을 박아대다가 그녀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은 비단 날벌레뿐만이 아니다. ● 차갑게 곤두선 형광등이, 검은빛이 들어오는 저 작은 구멍이, 그 구멍에서 날아와 페인트에 집어삼켜진 나방이, 나를 더욱 뜨겁게 하는 그런 밤이다. ■ 제이킴
Vol.20120316d | 제이킴展 / J.kim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