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작전五人作展

이미지 가감승제異美知 加減乘除展   2012_0316 ▶ 2012_0330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임지혜_염지희_배성희_정진경_이봄이

주최/기획 / 아트 컴퍼니 긱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 컴퍼니 긱 Art Company GIG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32-30번지 Tel. +82.2.323.7395 www.artcompanygig.co.kr

사물의 물상이나 이미지에 탐구는 수세기에 걸친 것이 아닌 인류에 문명이 생긴 이후 다양한 철학사조의 갈래아래 쏟아져 나왔다. 요즈음 이데올로기나 각종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의 홍수 속에 꾸준히 순수미학적인 관점에서 접근되어 지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우직하기조차 하다. 직관적 관점에서의 물상읽기는 이미지에 대한 표피적인 탐구를 넘어 사물 그 자체, 칸트의 의식철학에서 말하는 물자체로 향하는 방향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물의 본성이나 본질을 얼마나 알 수가 있을까? 물상은 이미지라는 다른 말로 쓰이기도 한다. 본 전시는 이미지, 영어로 즉 image 이외에 언어의 유희로 異美知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미적 사물에 대한 색다른 탐구를 추적해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미추를 판단할 수 있던 없던 모든 사물들은 자기 혼자서 빛날 수가 없다. 밤이 있어야 낮의 찬란한 햇살을 그리듯이,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혼자서 빛나는 해는 빛날 수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물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묘한 긴장감이 성립되고 그 긴장감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계산과 도식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흰 캔버스 안에 옆모습의 두 사람이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무의식적인 이미지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도자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게스탈트 시지각이론에서 우리는 사물간의 긴장감을 느끼는 동시에 뺄셈이라는 수식이 우리의 머릿속 캔버스 안에서 연상이 된다. 우리의 오감은 허수가 많다. 그 허수에 잘 속고 분노하고, 기뻐하며 슬퍼하고, 즐거워한다. 재미있고 통쾌한 허수의 게임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이미지 가감승제』展은 임지혜, 염지희, 배성희, 정진경, 이봄이 이 다섯 명의 젊은 여성작가를 축으로 진행되어 진다. 배성희작가는판화와드로잉과설치예술의영역을넘나들며순백의공간에자신만의 Unit으로 복제와 반복의 모듈을 창출한다. 평면작업에서 나왔던 오브제들은 다시 끔 입체작업으로 재탄생되고 그것이 바둑판의 장기처럼 살아 움직이는 영감을 준다. 이봄이, 정진경 작가는 주위 사물들의 작은 무브먼트를 영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주의의 코드로 풀어나간다. 염지희 작가는 보이는 그대로의 재현을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추상의 세계도 거부한다. 콜라주를 이용하여 캔버스 안에 수많은 관점과 공간을 두고 관자로 하여금 사유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풀어놔버린다. 일종의 정신해체의 과정이기도 하다. 임지혜 작가의 경우 이미지를 왜곡, 변형한다. 이미지에서 흐드러지듯이 흘러내려오는 장면들은 시각적인 쾌감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이 작가들의 작품에는 물상의 변주를 통해서 보여지는 다채로운 하모니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각적인 착시를 주기도 하고, 공허한 감상을 주기도 하며 반복적인 리듬을 통해 경쾌한 호르몬을 분비시켜 주기도 한다. 작품에는 우리가 모르는, 요소끼리의 가감승제(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선을 무한히 그리고 더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여백을 나누어 요소를 대입시키고, 요소의 무한반복을 통해 곱하기를 하고 있다. 또한, 머리속의 임의의 캔버스 속에서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허수의 게임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속고 속이고 있다. ● 이 다섯 작가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게 두기도 하고 반복시키기도 하며, 왜곡, 합성. 혼합시키기도 하며 공간을 두어 마음껏 뛰어 놀게도 한다. 어릴 적 우리들은 딱지치기, 공기, 망까기 등 다양하면서 순박한 놀이문화를 통해 우리가 싫어하던 수학이라는 학문의 유희를 무의식적으로 즐겨왔다. 자칫 멀리 할 수 있는 미술작품에서 작가들의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미지의 덧셈, 뺄셈, 곱하기, 나누기가 나타난다. 본 전시의 다양한 작업을 통해서 어릴 적 추억의 순수한 유희를 즐겨보기를 권한다. ■ 아트 컴퍼니 긱

염지희_before the dust wall_종이에 혼합재료_112.2×162.2cm_2011

염지희는 존재의 분열과 히스테리를 그리면서 조금은 낯선, 음울한 세상을 구축해 간다. 이 세계는 마치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우리가 닿을 수 있을 법한 곳이다. 거대한 까마귀들과 늑대의 불편한 응시에 노출된 이들은 머리가 물에 잠긴 동물 그리고 얼굴에 사슴뿔이 이접된 여인, 시야를 가리는 고깔을 뒤집어 쓴 사람들처럼 연약해 보이면서도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이 살아있는 듯하지만 인공적인 생명체들은 텅 빈 제스처를 취한 채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양떼들은 이동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일제히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작가는 재현을 하는 과정에 집중하기보다 콜라주 방식을 선택하여 이를 유연한 가변성의 도구로 이용한다. 시점과 명암이 각기 다른 이미지 오브제들은 기존 맥락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이 조합되어 현실과 비현실이 충돌하는 낯설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주재료 중 하나인 연필은 캔버스와 콜라주 이미지 사이에서 뿌연 안개처럼 퍼져나가거나 차가운 금속판처럼 공간을 분할한다. 색의 개입을 차단한 흑백조의 화면은 오히려 그 형태와 조형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며 다른 한편으로 감상자에게 저마다의 색을 입힐 수 있는 공상의 여지를 부여한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익명의 세계는 공허함과 무기력, 침울함의 표출에 멈춰있지 않으며 심연을 응시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치유 과정으로까지 나아간다. 분열되어 뻗어나간 뿔은 도리어 위로를 위한 손내밂으로 변모된다. 결코 요란스럽지 않은 그러나 끊임없이 순환하는 응시와 욕망의 에너지를 염지희는 정제된 환영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 이은지

임지혜_at_the_bed_1001_메조틴트_30×35cm_2010

깨끗하고 하얀 여백 위를 떠다니는 무채색의 무인도 같은 공간. 임지혜는 모노톤의 메조틴트와 애쿼틴트를 이용하여 휴식을 주제로 한 흑백의 공간을 그린다. 그녀가 그리는 휴식의 공간은 시작과 끝이 없고,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 버리고, 철저하게 고립된 상황, 현실에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위치한다. 이것은 우구나 한번쯤 혹은 늘 마음속에 그려봤음직한 내면의 안식처로서의 공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러한 공간의 특징은 여백을 활용한 화면처리와 작가가 휴식의 공간으로 선택한 오브제, 그리고 표현기법 간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 동양화의 여백이 그렇듯, 임지혜의 여백은 공간의 깊이를 자유롭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생기와 즐거움을 준다. 작품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연잎을 통해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고, 하얀 여백을 향해서 사라져 버린 난간의 끝자락이 역으로 공간의 무한함을 드러낸다. 또한, 여백은 작품의 중심이 되는 모노톤의 이미지와 극명한 명암대비를 이루는데, 흑과 백이 만나는 경계는 이미지의 형태를 구축해나가면서 작품의 조형적 미감을 전달한다. 이와 같이 여백을 활용한 화면처리는 작품 전반에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동시에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오브제에 시각을 집중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한다. ■ 황정인

배성희_urban park_펜 드로잉_66.5×91.6cm_2011

하얀 화면에 나무와 울타리들이 질서 정연하게 그려져 있다, 아니 대칭구도를 이루며 펼쳐진 화면을 자세히 보면 이것은 그려진 것이 아니다. 찍혀서 표현된 것, 즉 복제된 것이고 대칭의 구도는 중심을 기준으로 좌우를 찍어서 만들어진 흔적일 뿐이다. 하얀 화면 역시 하얗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색종이 그 자체의 모습이다. 점차 작아지며 종이 가장자리에 의해 잘려진 구도는 아련한 화면에 깊이를 더하며 그 복제된 이미지의 무한한 반복을 암시한다. 배성희가 판화의 매체적 특성을 매우 적절하고도 영리하게 운용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밖에도 디지털세대의 감성인 것일까? 구체적인 작업방법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복제와 반복의 모듈을 떠올린다. 백색의 화면 위의 반복되는 물체는 반복성 자체로 이미 unit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인물이 없는 하얀 바탕은 고요하고, 반복된 나무와 울타리의 이미지는 감상의 과정에서 운율을 자아낸다. 이러한 운율은 입체로 제작됨으로 하여 가변적이 되었다. 배성희의 이번 전시에서 유난히 눈이 많이 온 이번 겨울 순백의 종이 위로 장식없이 기술된 시를 또 감상하고 읊을 수 있는 시간이 기대된다. ■ 김도희

정진경_틀린게 아니라 아주 조금 다른 것 뿐_종이에 펜 드로잉_35×50cm_2011

정진경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점은 판화기법 그 자체를 통해서 생산되는 조형언어와 더불어 자신이 표현하려고 했던 대상의 상황과 형체 및 무늬에서 기인되는 이미지 조합지점이다. 어쩌면 너무나 일상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사물들에 불과하지만 정진경의 화면 속의 사물들은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마치 사물에 말을 거는 것과 가은 방법으로 화면에 옮겨진다. 어딘가에 버려진 듯한 플라스틱 병과 컵, 그리고 그릇 등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대상들이기에 그들은 그려지고, 찍혀지면서 특별한 것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그가 자신의 화면에 옮기는 대상들에 대한 인식은 그 사물에 본연의 모양을 비롯한 고유한 특성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화면 속에서 가지각색의 사물들은 표현되기 이전에 사물과의 기습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그 사물에 적정한 공간성과 더불어 사물 본연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과 면을 극적인 구도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정진경은 어떠한 궁극적이거나 특정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사물 그 자체에 자신이 순간적으로 느낀 감각적인 것들과 사물의 물리적인 공간성 및 현상을 연결짓는 작업을 이끌어내고 있다. ■ 이은주

이봄이_stillness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1

이봄이 작가는 우리 주위를 둘러쌓고 숨 쉬는 자연이라는 어머니 같은 존재와 그 품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과의 합일정신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각각의 오브제들을 캔버스 위에서 살아 숨쉬는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도한 작품에는 프레임의 측면을 정면으로 보이게 활용한다던가 프레임을 매달아놓아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제시하는 등, 회화가 가지고 있는 공간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시각의 관점을 바꾸어 놓는 작가의 시험정신이 계속 시도하고 있다. 작가에게 캔버스 안에서 흙은 단순히 흙이 아니라 자연의 양분이며 인간의 터전이다. 질료와 물성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과 소통, 결국엔 합일로의 길을 제시한다. 프레임을 버리고, 캔버스를 뒤집고, 천을 찢는다는 것... 찢겨진 천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정체에 대해 고민을 해보면 작가의 생명주의와 환원주의 코드를 읽어볼 수 있다. 작가는 이 빛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공간과 시간과의 함축적인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작품을 통해 창출하고자 한다. ■ 김지환

Vol.20120316a | 오인작전五人作展, 이미지 가감승제異美知 加減乘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