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기획 / 센텀아트스페이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센텀아트스페이스 Centum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505번지 센텀호텔 Tel. +82.51.720.8041 www.centumartspace.co.kr
분절된 구성, 내면의 지도 ● 김선화 작품은 서술되지 않은 의미를 뜻밖에 만나게 한다. 개인적인 은밀함마저 노골화 하고 그것을 심리적 서술로 취급하거나 상품으로 치장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풍조에 대항하듯 그녀는 자신의 심리적 층위를 공간이동을 통해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작품 「층」은 네 개의 캔버스를 하나로 조합한 것이다. 계단이 있고, 출입문이 열려 있다. 빈 방에 의자 하나가 덜렁 놓여 있고 의자 위에는 얼굴과 팔다리가 없이 무릎만 드러난 인물이 앉아 있다. 사람인지 마네킹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온전한 형태가 아닌 것들로 어떤 것들로도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을 가진 것들이다. 그리고 복도 쪽으로도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다리가 셋이다. 얼른 보면 독립된 의자인데 다시 보면 의자 등받이가 바깥으로 이어지는 창으로 보인다. 그 아래로 머리가 없고 팔이 없는 희미한 인물이 옆으로 누워있다. 네 개의 분절된 공간에서 연관이 없는 장면들이 조합을 이루며 서로 충돌한다. 그녀의 사물인식의 단면을 보게 된다. ● 다른 작품 「책상 속」에서도 이런 맥락을 목격하게 된다. 크게 좌우로 나눠진 왼쪽 상단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그 의자 등받이가 계단으로 이어져 공간을 바깥으로 열어준다. 의자 뒤쪽 창으로 내다보인 장면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의자이면서 벽이고 창이며 계단으로 이어지는 그녀 특유의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밝게 처리된 맞은편 공간에는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몇 개 부유하듯 바닥에 자리하고 있고, 화면 위쪽에는 이 공간으로 올라오는 작은 계단이 보인다. 이런 단조로운 형상을 제외하고는 화면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러다 화면 아래쪽 가장자리로 시선이 가면 의외의 공간이 작품 전체의 공간을 반전시킨다. 그곳에는 조금 열려진 서랍이 보이고 그 옆으로 굳게 닫힌 서랍이 한 조를 이루고 있다. 그 순간, 보아왔던 모든 형상들이 서랍 위 천판에서 전개된 환상적 형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마치 정물대 위의 오브제를 보듯, 실험실의 비커를 관찰하듯 그녀는 자신의 심리적 층위를 그렇게 보아내고 있는 것이다. 뜻밖의 만남이란 이런 순간을 말한다. ● 캔버스라는 방형의 공간은 언제나 이해 가능한 논리적 공간인식을 요구하고 그 안에 세상을 담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학습과 요구에 익숙해서 어떤 다른 공간도 꿈꾸기를 두려워한다. 그런 중에 그 공간을 벗어나게 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작품이다. 그녀의 분절된 공간은 하나의 통일된 시점이 아니라 각각의 공간구성을 꿈꾸면서 자신의 독자적 형상을 불러들인다. 그 독자적 공간들은 서로의 분절을 가속화시키고, 충돌하고, 어긋나는 비합리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화면은 흔히 볼 수 없었던 기묘한 공간으로 정경화 된다. 그것은 실내와 실외가 공존하는, 안팎이 뒤섞인 공간이자, 현실과 비현실, 여기와 저기, 현실과 내면을 오가게 한다.
그녀의 작품 구조는 캔버스를 가로나 세로로 계속 이어주는 데로 공간 확장이 가능하고, 시선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다. 한 개의 사물과 공간이 화면이라는 수면에 떨어져 파문이 이듯 이미지 연상이 자연스럽게 퍼져간다. 서사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그 서사를 받아서 다음 이야기로 이어가고 공간이 증식된다. 가로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구조적 특징은 그녀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적의하게 움직인다. ● 그것은 각기 다른 캔버스를 조합해서 분절된 공간을 구성할 때뿐 아니라 한 개의 캔버스 안에서도 몇 개의 부분으로 분절시켜 구성한다. 분절된 공간이 다른 캔버스로 이어지면서 그것 자체가 분절이자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된다. 구조를 반복하는 어법이다. 그런 구조는 온전하게 앞뒤가 맞게 전개되는 원근감을 보여주거나 논리적 아귀가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를 담아내기에 효과적이다. 그러니 이야기나 이미지를 이어가는데 시간이나 공간적 논리가 현실 토대의 구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일관성에서 자유롭다. 자동기술적 서술이나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고 자유로운 연상에 의해 이미지의 역동적 비약과 조우를 만들어낸다. 단절된 화면구성이 이야기와 의식의 분절을 자연스럽게 형식적 특징으로 만들고 풍부한 상상의 여지를 준다. 만나지 못했던 어떤 것을 만나게 한다. 그 ‘어떤 것’이란 그녀의 작품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일상의 내밀한 만남이다. 일상적인 것들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물의 가역성이다.
전시되는 몇 작품에서 보아낼 수 있듯 그녀의 작품을 이끌고 있는 것은 실내라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대부분 비어 있음, 고립, 어둠, 밝음, 계단, 의자, 파이프, 인물 등이 형상과 구조로 한 조를 이룬다. 그리고 실내의 사물들을 집요하게 탐색하고, 그 사물들은 언제나 분명한 형태로 완결되지 않고 어딘가 결핍과 변형의 부분을 가진다. 사물로서 존재감을 갖기보다 하나의 기호로 여기저기 놓여 있다. 그것은 마치 한 문장을 이루기 위해 단어들이 모이듯, 한 장면을 이루기 위해 사물들, 기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어휘의 조합이 어떤 사실적 현상과 등치되지 않아도 문장으로 성립되듯, 그의 화면은 어떤 현실적 사건도 표상하지 않으면서 독자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 계단이나 의자가 그곳의 공간적 특징이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인 것도 이런 특징의 하나이다. 실내의 모든 사물들은 한 개의 사물로서 독자적 공간을 가진 독립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과의 경계에 있는 터미널인 셈이다. 화면에 항상 나타나는 계단이 전체 공간의 연속성에 관계하면서 화면을 분절하고, 현실감을 주면서 비현실을 불러들인다. 파이프라인까지 가세하여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온전하게 완성된 사물들이 아니다. 어딘가 모자라는 결핍의 존재들이다. 온전치 못한 의자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의자야말로 다른 세계로 공간을 이동시키고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는 전이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결핍이 다른 공간,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내에서 벗어나려는 통로 찾기의 탐색은 여전히 실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단은 있어도 어떤 통로도 확보하지 못하고 창이 있어도 창밖이 보이지 않는다. 파이프라인도 통로로서 보다 분절로서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독특한 상상력과 구성력이 그곳에서 생성되지만 실내를 벗어나기를 꿈꿀 뿐이다. 그녀의 심리적 층위가 겹쳐진다. 만일 그녀가 실외의 풍경을 꿈꿀 수 있다면, 실내가 실외와 연결되는 구체성을 갖는다면 어떨까. 실외를 바깥 풍경이라고 한정짓지만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서술되지 않은, 자의식에 갇혀 있지 않은 내면의 지도가 아닐까. ■ 강선학
Vol.20120312c | 김선화展 / KIMSEONHWA / 金善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