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ASHAMED

정세인展 / JUNGSANE / 丁世仁 / mixed media.installation   2012_0310 ▶ 2012_0404

정세인展_갤러리 보라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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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보라 GALLERYBORA 서울 은평구 진관동 279-35번지 Tel. +82.2.357.9149 www.gallerybora.com

물신화된 정체성 담론과 사유-정세인 작품론 ● 현대인의 물신숭배적인 경향성은 특정 대상에 대한 미학적 의미부여와 그에 따른 자기 합리화시킨 욕망의 투사의 과정을 거쳐 대상 자체의 본질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소유와 탐닉의 세계를 객관성으로 표면화시킨다. 이것은 사물뿐만이 아니라 소위 자기 삶의 외부에 있는 타자들에게 특히 강력하게 적용되는데, 이런 상황은 타자들에 대한 연민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현대인의 분열적인 자기연민의 근거가 된다. 정세인의 이번 전시에서 관객이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모든 것이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되고, 또 현실의 한계를 넘어 물질 자체가 삶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몰가치적인 구조에 쉽게 감응하는 젊은 작가의 반응이 드러내는 불협화음적인 상징들의 충돌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작가는 이 충돌을 대위법적인 조화나 평행성과 같은 전통적인 미학적 가치들을 자신의 예술형식으로 전치(displacement)시키지 않는다. ● 정세인의 불협화음적인 표현의 근저에는 몇 가지 등식화시킬 수 있는 이시대의 정신적 방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 번째는 21세기 한국에서 왜곡되어 있는 자유주의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무차별성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서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주체들이 하나의 그물망 안으로 던져지고, 그 안에서 다수의 주체들이 스스로의 방향을 찾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실에서 여성은 어머니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주체이기도 하고 사회의 노동을 담당하는 개체로서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개인의 고유성과 역할은 사라지고 여성은 스스로를 사회의 부속품처럼 파편화시키게 된다. 여기에서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무차별성이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왜곡시킴으로서 스스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여성과 그들 삶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정세인_I AM NOT ASHAMED_람다 프린트_79.3×118.8cm_2012
정세인_Self-portrait of the other 타인의 자화상_C 프린트_44×60cm_2012

첫 번째가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드러나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특성에 관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특성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존재론적 정의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유발되는 보편적인 '불안' 같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허버트 마르쿠제는 우리 주변에서 비속어 문화가 보편화되는 것을 커다란 사회적 변화의 전조로 보았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어떤 폭력성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폭력성은 작가가 이시대의 정신적 상황에서 스스로의 예술언어를 찾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제도화되어 고착된 미술의 전통성이 가지고 있는 박제화된 가치들에 대한 당시 젊은 세대 작가들의 도전이라고 설명된다. 어쨌든 모든 시대에 새로운 모든 것은 아방가르드라는 보편적인 이름으로 통칭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경쟁력을 지닌 문화적 코드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젊은 작가들의 노력과 투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경직성은 예술의 생산성과 시대정신의 표현을 억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런 억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모든 작가들에게 내재화되어 각인되어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적 존엄성과 삶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세인에게 작가적인 존엄성은 개인을 사회적 혹은 문화적 테두리 안에 종속된 개체로서가 아닌 스스로의 인간적 개성을 지닌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로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개인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 성취해 가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주체적인 사유의 중심에는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점들―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윤리적인 관점 등―이 작용하게 되고, 그런 작용성의 기반에는 생산성이라는 모더니즘적인 가치들을 통해 분열되어져 있는 가치들을 통합하려는 개인으로서의 작가의 반응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은 예술에서 각 영역들이 가지고 있는 경계에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정세인_My Precious: In Red_레디메이드 마네킹_2012
정세인_Nothing Happens: Gallery Rules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람회 규칙_ 골판지에 래커 스프레이 페인트_110×110cm_2012

이렇게 3가지 관점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20대 작가인 정세인이 스스로 자기 세대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제시하려는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재료는 레디메이드, 회화, 사진, 텍스트,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재료들의 다양성만큼이나 작가의 이 시대의 삶과 일상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적인 문화, 즉 히이퍼텍스트적인 인덱스 형식으로 구성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감각적 직접성으로 전치시킬 수 있다. 정세인의 작품에서 감각은 회화가 되고, 이미지는 텍스트가 되고, 텍스트는 그림이 되고, 영상은 언어가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작가에게서 예술적 원칙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작가가 이 시대의 정신들에 대해 정의적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든 것을 촉각적 차원으로 '변형'(transform) 시킨다. 이 지점에서 정세인의 예술적 방향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작가들에게 감각은 의미를 넘어서 있는 현실이다. 특히 예술적인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주체와 마주하는 대상, 현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삶의 여정 자체는 의미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세인은 다수의 정체성을 자신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일관성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일관성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언어분석철학자 비트겐스타인의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대상을 의미한다. 대상은 이름의 의미이다"(3.203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라는 주장을 상기시킨다. 의미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이름은 하나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이해한다. 비트겐스타인의 주장은 원칙에 관한 언급이다. 그리고 예술의 다양성은 그런 원칙성을 넘어 있지만 또한 원칙의 영역 안에 있다. 마치 다양하게 변형된 원형(prototype), 혹은 하나의 어원을 가진 다양한 단어들의 예처럼 단지 유적으로 분화되어 있을 뿐인 대상들의 유사성이 보이지 않는 일관성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비트겐스타인은 이를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라고 정의한다. 정세인의 작품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이 시대 우리 삶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작가가 그런 이야기들을 어떤 강력한 아이콘으로 재현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작가가 인간적인 삶의 차원, 즉 실천적인 윤리성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인간들의 행동양식과 마찬가지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직관할 수 있는 윤리성은 특히 21세기의 인간행위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삶에 대한 절실한 관심은 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세인은 예술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정체성 자체를 담론화 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시대의 물신주의, 성, 욕망 등등과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예술적 경계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정세인_Unconscious: Touch My Bread 무의식: 나의 빵을 건드리세요_ 비디오 설치, 혼합매체_가변설치_2012
정세인_Holy Art 거룩한 예술_비디오, 사운드 없음_00:07:51 loop_2012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듯이 보이는 욕망과 사유는 이제 이시대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나는 욕망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사유하기 때문에 욕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이 안에서 21세기의 다른 그림들을 상상하고 있다. 이것이 작가 정세인이 예술적으로 사유하고 실천적으로 행동하고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기 삶의 현실인 것이다. 그녀는 욕망에 희망을 부여한다. ■ 정용도

Vol.20120310m | 정세인展 / JUNGSANE / 丁世仁 / mixed media.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