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EOGRAM

김성실展 / KIMSUNGSHIL / 金誠實 / installation   2012_0307 ▶ 2012_0313

김성실_YOOSUNG'S MOBILE_worn-out clothes, yoosung's drawing, cotton_250×250×25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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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3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공휴일_11:00am~06:00pm

바움아트갤러리 BAUM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원서동 228번지 볼재빌딩 1층 Tel. +82.2.742.0480 www.baumartgallery.co.kr

여기 다섯 살짜리 아이의 드로잉(drawing)이 있다. 스케치북에는 상어, 거북이, 개구리, 춤추는 사람, 잠수함, 비행기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아직 정확한 형태를 그리는 것이 서툴지만 아이는 동물원, 그림책, 텔레비전 등에서 보았던 것들을 정성껏 그려냈다. 이제 작가가 아이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봉제 인형을 만든다. 변형 없이 최대한 아이가 그린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완성된 인형은 작품 정보가 담긴 태그(tag)가 붙여진 뒤 작가의 작품으로서 전시된다. 알록달록한 천으로 만들어진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의 예술 작품-봉제 인형-들은 자연스럽게 유년기로의 회귀를 이끌어낸다. 김성실이 인형 연작에서 만들어내는 이 달콤한 시간 여행은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선물이다. 작가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이끌어내는 유년기의 분신이자 순수한 상상과 판타지(fantasy)의 상징물인 인형을 통해 상처 입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김성실展_바움아트갤러리_2012

인형 연작에서 김성실은 다음의 두 가지에 집중한다. 첫째는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지금까지 학습했던 형태에 관한 지식, 손에 익숙해진 재현의 기술과 기교들을 절제한다. 두 번째는 봉제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바느질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치유 효과이다. 작가는 바느질을 통해 자기 자신, 더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향한 위로와 치유를 시도한다.

김성실_A SHARK_worn-out clothes, yoosung's drawing, cotton_250×120×50cm_2012

김성실은 치유의 방법을 찾기 위해 세상을 마주하는 아이의 태도에 주목한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어린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밝고 활기차다. 아이가 그리는 세상은 꾸밈없이 솔직하고 명쾌하다. 아이에게는 세상을 관찰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운 놀이이다. 현실에서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없던 것들이 아이의 세계로 들어오면 놀이로 바뀐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세상의 모습에 대한 순수한 관찰과 이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두려워하고 감추는 것 혹은 무시하고 놓치는 것까지 여과 없이 담긴다. 인생의 문제를 위한 해결책이 찾아지거나 실현 불가능한 꿈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 안에는 풍자와 상징이 있고 고도의 익살이 숨어있다. 이에 작가는 우리가 유년기에 세상을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해내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어른의 삶을 사느라 망각한 어린 시절을 되찾기 위해 다섯 살 아이의 그림을 매개물로 선택하고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했듯 망각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시각적 경험을 통해 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놀이는 예술로 전이된다.

김성실_THE UNIVERS_worn-out clothes, yoosung's drawing, cotton_160×160×20cm_2012

사실 아이들의 놀이는 이미 그 자체로 예술가의 창조 활동과 닮아 있다. 아이는 놀이에 애착을 갖고 몰두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자신의 질서와 취향에 맞게 배열한다. 아이는 현실과 자신이 만들어낸 유희적 세계를 명확히 구별하지만 현실 세계의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사물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보강하기를 즐긴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예술적 성향을 갖는 최초의 모습들을 아이들의 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으며 최종적으로 아이의 놀이와 예술가의 창조 행위를 동일한 것으로 설명했다.

김성실_A CHAMELEON_worn-out clothes, yoosung's drawing, cotton_130×100×20cm_2012

작품의 근간이 작가가 아니라 아이라는 사실은 창조자인 예술가의 정체성과 예술의 권위에 대한 작가적 고민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예술가들은 모더니즘의 엘리트(elite)적인 거대 담론을 탈피하기 위해 개인의 작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과부하 된 예술의 아우라(aura)를 유희와 놀이로 되돌려 소통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김성실 역시 전문적인 교육의 결과물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일상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다. 미술과 일상과의 결합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뤄내는 것은 헌 옷의 리폼(reform)이다. 새 것, 특별한 것만이 주목받는 이 시대에 낡고 평범한 사물을 선택하여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작가의 행위는 무가치해 보이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치유와 재생을 극대화시킨다.

김성실_WEAPONS_worn-out clothes, yoosung's drawing, cotton_130×100×20cm_2012

사실 작가는 이전부터 펠트(felt), 면(cotton), 털실 등을 매체로 작업해왔다. 작가는 스웨터의 올을 풀어 동물 형상을 만들었고 결혼을 앞두고 펠트로 예복을 만들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여성 미술 혹은 부드러운 조각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섬유는 부드러움과 유연함 때문에 시각적인 다양성뿐만 아니라 촉각을 자극하는 매체이며 보호와 치유를 연상케 한다. 이것은 제작 방법인 바느질도 마찬가지이다. '바늘은 손상을 치유하는 데에 쓰인다. 그것은 관대하다. 그것은 결코 호전적이지 않다. 그것은 핀(pin)이 아니다.'라는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말처럼 바느질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적 양상은 인간을 문명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켰고 많은 사람들은 타인과 사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소외된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체성의 상실과 주체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작가 역시 보통의 어른들이 그렇듯 많은 상흔(傷痕)들을 안고 산다. 특히 정신적 상실감과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공허감은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이자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그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우리의 육체가 다쳤을 때 수술을 통해 상처를 봉합하듯이 바느질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봉합한다. ● 바느질에는 일정한 리듬으로 한 땀 한 땀 수놓는 행위의 반복이 수반된다. 그 속에서 바느질 하는 주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재인식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또한 바느질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완성되면 내면에 존재했던 은밀함이 밖으로 표출되었다는 쾌감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마법처럼 치유 효과가 일어나고 작가는 자신을 치료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김성실展_바움아트갤러리_2012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의 목적으로 감상이나 장식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미술은 언어 없이도 내적인 경험과 상태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소통의 방법이다. 김성실은 봉제 인형을 통해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순수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우리가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체온을 선물한다. 아이가 되어 그녀의 인형놀이에 참여하고 감정의 치유를 함께하는 순간 우리는 그 동안 망각했던 우리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되찾게 될 것이다. ■ 이문정

Vol.20120309f | 김성실展 / KIMSUNGSHIL / 金誠實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