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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309_금요일_06: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아라리오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 ARARIO GALLERY SEOUL CHEONGDAM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Tel. +82.2.541.5701 www.arariogallery.com
'사물과 하나 되기' 로서의 그리기 ● 그리기와 '사물과 하나 되기' 이진용의 사물들은 일체의 맥락 없이 그 자체만 클로즈-업(close-up)된다. 그것은 사물 표면의 현미경적 관찰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다. 확대된 사물의 표면은 집요하게 탐사되고 파헤쳐진다. 윤기가 흐르는 표면, 빛의 반사, 유약이 떨어져나간 주둥이, 퇴색 또는 변색, 그리고 터지고 갈라진 균열들... 파손된 모서리와 유약의 황변(黃變)은 그것들 역시 시간의 준엄한 질서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터지고 갈라진 크고 작은 균열들 역시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그것들 모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 곧 필연적 질서의 산물이다. 장력과 인력, 표면과 이면의 상이한 힘의 충돌과 공존이 만들어낸 귀결이다. 이진용의 세필은 단 하나의 균열, 색의 변질도 놓치지 않는다. 이진용은 각각의 균열, 변색, 부분파손 하나하나를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재현한다.
빛의 처리는 그것들의 질감(Matière)를 성공적으로 살려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다. 시선은 빛이 드러내는 만큼만 감각할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속성을 재현하는 것은 그것의 표면이 빛을 수용하거나 반사해내는 방식을 어느 정도까지 포착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빛의 효과를 예민하게 조절하지 않으면서, 맑고 투명한 우유 빛과 표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미세한 균열을 묘사할 수 있는 방도란 없다. ● 이러한 그리기는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정확한 관찰 뿐 아니라, 유추와 추론을 통해 대상의 특성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요인을 인지해야 하며, 그것에 부응하는 정확한 실현을 위해 붓 끝에서 작용하는 안료의 색과 톤, 양을 미세하게 조정해야만 한다. 사용되는 붓의 두께, 화필에 가해지는 힘, 붓이 화폭에 놓여지는 위치 등, 어느 것 하나에서 작은 오류라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지와 감각이 점차 향상되고 고양되는데,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이러한 과정을 '사물과 하나 된 상태(being as a thing)'로 묘사하곤 했다. 인지와 표현의 긴밀한 변증적 과정이 감각을 숙성시키고, 고양된 감각이 대상에 더 심도있게 다가서도록 허용하는 선순환이 감각을 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열림)으로 안내한다는 의미다. "이 때 우리는 무언가의 일에 몰입한 상태여서, 우리 자신을 느끼는 의식은 사라지고, 심지어 우리 몸 자체도 잊은 상태가 된다. 즉 지금 일하고 있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이는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초점의식(focal awareness)'이라고 부르는 상태와도 유사한 맥락인데, 그것은 마치 망치로 내리치기 위해 정확하게 못의 머리에만 집중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의 대상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그것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물론 이진용의 그리기는 못의 머리를 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초점의식 안에서 진행된다.
이진용이 그리는 것은 단지 용기(用器)로서의 도자기가 아니다. 도자기 백서라도 만들 요량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그것들은 그저 용기(用器)인 것도, 값이 나가는 골동 도자기도 아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그것들 자체로서 선별되고 그려진다. 마치 초상화처럼 말이다. 그것들 가운데 디자인과 문양, 색, 표면질감, 용도 등에서 동일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비슷한 형태의 것이더라도, 그 모양과 문양, 빛깔과 질감에서 모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복제성, 기계적 일치, 대량생산의 자취 대신, 사람들이 상이한 정서적, 지적 특질을 지니듯, 각각의 고유한 외양과 표정을 가지고 있다. 사물은 더 이상 사물로만 머물지 않는다. 사물로부터 인격의 자취들이 밟히고, 물성(物性)의 성실한 탐색 끝에 비물질적 차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초점의식에 기반하는 재현, 사물과 하나되는 그리기에 의한, 일종의 '사물-초상화'라 할 수 있겠다.
촉감과 동작을 통해 손으로 획득하는 지식 ● 이진용은 단지 도자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었던 도공(陶工)의 손길을 재현하려는 듯하다. 그만큼 섬세하고 진지하고 성실하다. 그는 도공의 것을 그리는 것 뿐 아니라 도공처럼 그린다. '화가처럼'이 아니라, '도공처럼' 말이다. ● 이러한 이진용의 그리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전후(前後)가 극명하게 갈라서는 회화사(繪畵史)의 갈림길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중세의 장인(匠人)에서 르네상스의 예술가가 갈라져 나오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예술은 천년의 세월의 중세를 뚫고, 개인의 주관성을 선포하는 특권적인 장이었다. 장인의 시선은 외부를 향해 있고 그가 속한 사회와 동료인간들을 바라보았지만, 예술가는 시선을 내부로 향해 자신만을 보는 신인류였다. 여기서부터 이른 바 자아에 모든 것을 거는 과도하고 위태로운 근대예술의 기반이 만들어져 온 것이다. 이 역사가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의 1846년 저작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연설』를 거쳐 '나는 창조자다'를 외쳐대는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에 이르면서, 닻줄 없는 뗏목처럼 표류하는 자아와 넘쳐흐르는 자의식으로 주조된 예술을 주류로 정착시켜 온 바로 그 역사다.
이런 근대회화사적 맥락에서라면 이진용의 회화는 표면과 표현에 대한 식상한 집착으로 간단하게 범주화될 수 있다. 자의식과 내면세계의 결핍-또는 부재-의 불가피한 반증이거나, 정신과 사유의 가능성이 손과 시선의 협착한 노동으로 대체되어버린 빈곤한 예술로 이해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과 관점은 심각한 오류의 결과일 뿐이다. 노동이 정신을 위협하거나 손이 사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은 근거가 박약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성실한 그리기'를 빈곤한 자아의 귀결로 읽는 것은 도가 지나친 넌센스다. 사실은 그 반대다. 행동(노동), 그것도 반복적인 행동이 오히려 사고를 자극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설계도면을 그리는 자신의 일을 '하고, 다시 하고, 다시 또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동안, 즉 하고 또 하는 동안, 최초의 개념스케치에 대한 반성과 완성된 건물의 상상이 번갈아 개입한다. 생각과 행동은 동시진행형이고 순환한다. 반복적인 노동 사이사이에 사고가 기입되고, 그리기의 과정 틈틈이 반추와 기대가 끼어들고, 손작업과 정신이 교환되면서 끊임없이 변형되어 나가는, 이 순환성이야말로 예술의 질을 담보하는 긴요한 특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순환성이 소멸되거나 허용되지 않는다면, 수단과 목적이 정태적인 관계로 고정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진용의 회화는 자의식이 아니라 노동이, 사유가 아니라 사유와 손의 협력이 미적 성취의 적장자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여기서 얼핏 재료를 잘 다루는 방법과 손기술, 성실한 노동으로 무장한 근대 이전의 예술가, 장인으로 불렸던 예술가의 모습이 스친다. 오늘날엔 이렇듯 '촉감과 동작을 통해 손으로 획득하는 지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작업과 사유 사이를 오가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때, 오히려 문제를 더 잘 찾을 수도 있다는 지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이해한 것을 그릴 때보다, 그리기 안에서 이해할 때, 이해의 심도 또한 더 깊어진다는 지혜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화가의 방식인데, 이진용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 심상용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진용 작가의 "Time Collected_수집된 시간" 전을 개최하며 작가 이진용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합니다. 30년 넘게 작업해 오며 20회 넘는 개인전을 갖고, 끊임없이 작업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 이진용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도자기 작업을 소개합니다.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 세계와 인간적인 작가의 면모를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Artist talk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012_0317_토요일_02:00pm, 04:00pm 장소 / 아라리오 갤러리 3층 전시장 인원 / 10-15명 담당자 / 임지은 (t. 541-5701 / m. [email protected])
Vol.20120309c | 이진용展 / LEEJINYONG / 李辰龍 / painting.installation.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