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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306_화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기획프로잭트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8번지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www.seoulartspace.or.kr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 ●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술가로서 작품에 대한 깊은 사색과 통찰은 고사하고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는 나 자신에 대한 얕은 후회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철면피처럼 행동하고 어린 아이처럼 떼쓰고 울기 시작했다. 모든 본능적인 감각들에 자신을 맡기고 음란물에 심취하여 피상적인 인터넷 기사에 시간을 팔고 있다. ● 어느 순간 옴짝달싹 못하는 지하철에 매달려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곳에 수많은 내가 몸을 부대끼며 퍼스널 네트워킹에 골몰하고 있다. 쏘셜이라는 이름의 나는 언제나 깨어있기를 갈구한다.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짜증석인 목소리로 띵똥거리는 애인들, 나 자신들이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내가 잠든 시간에 너는 깨어 웃고 떠들며 내가 들어야 할 잡담을 생산한다. 나는 충혈 된 눈으로 어제 듣지 못한 너의 잡담을 듣는다. ● 시계는 쉼 없이 째깍거리고 있다. 표준시간이 나의 온 지체들을 흔들어 깨우고 국가산업발전에 이바지할 경쟁력 강화를 재촉한다. 세상에 단하나 뿐인 표준시간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국 인류 공통의 규약이다.
이제 신은 하늘에 있지 않다. 인간의 해부된 뉴런 속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안에 계시는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아이돌을 숭배하듯이 손안에 펼쳐져 있는 표준시간에 경배한다. 이제 신은 표준시간이 되어 우리가 타인과 사랑에 빠지는 위치를 추적하여 그의 인구정책에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도 있게 되었다. ● 이 순간 나는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은 표준시간이 해결해 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준시간을 할당하는 존재가 해결해 준다. 그리고 할당되는 시간은 휴식과 여가마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를 위한 선택이다.
나는 이렇게 인류를 위한 선택을 할 만큼 똑똑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나는 화가로서 현대미술이론을 알지 못하며 데미안 허스트가 왜 그런 동그라미들을 그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하여 고민하던 학부시절의 철없는 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내가 고민하더라도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 어린 시절의 나 이전의 내가 될 수는 없다. 나의 고민은 이제 하나다. 나의 그림이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이다.
예술은 이제 발전 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예술이 끝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술은 계속 자기를 혁신 할 것이며 자기 발전의 동력을 자기 내부로부터 그리고 실질적 동력인 자본사회로부터 얻어내고 그 동력을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예술이 자기를 반성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혁신이나 발전은 그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그 어떤 분야나 사회 혹은 개인도 마찬가지로 자기 성찰과 비판이 없는 성장은 없을 것이다. 예술계와 예술 자체도 자기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시대는 우리가 이루고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존재와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는 신선한 발상, 인간이 배재된 예술자체 혹은 예술의 역할을 종속화 시키는 현실담론 등은 인간 존재와 본성에 미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을 도구화시킬 뿐이다. 자본주의가 예술을 상품화 시키는 것보다도 더 냉정한 태도로 예술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보잘 것 없는 그림이 예술이라는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그렇다고 잘 팔리는 상품이나 고도의 사변적 능력을 갖춘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나의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다. 예술이 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숱한 답변들 중 하나는 그것이 인간 본연의 충동이자 욕망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충동과 욕망은 중요하다. 나는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처럼 자유로이 말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인간 사고의 전 영역이 언어를 통해 형성되고 전달되는 것이라면 나의 충동과 욕망 또한 이 언어적 부자유스러움에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다. 인간이 언어를 쓰고자 욕망하였던 바로 그 시점의 그도 나처럼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가 그의 그림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나의 그림은 그저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다. 그가 두려움과 경외, 평화로움과 만족감 속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느끼며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는 표현하고 싶었다. 나의 그림은 그저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표현할 뿐이다. ● 인간이 종교와 철학을 만들기 이전부터 예술은 인간이 언어를 형성하는 원리가 되었다. 인간이 저마다의 종교와 철학으로 분리되고 대립하기 시작하였을 때도 예술은 저 마다의 언어를 뛰어 넘어 공통의 언어를 제공했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혹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예술은 그 표현의 공통언어를 발견한다. 나는 그림으로 그 공통언어를 표현하는 아주 오래된 화가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표준시간이 엄습하는 4인치짜리 세계에서 살아가는 쏘셜들에게 눈동자를 15도 각도로 들어 올리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바로 그곳에 가장 지적인 자연인 사람의 눈동자가 빛나고 회색도시의 광활한 풍경이 펼쳐지며 멀리 푸른 산맥이 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방법,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언제나 어디에나 내려있는 하늘, 두려움과 초월, 자유와 경외의 표상인 하늘, 그러나 그 자유로운 표정으로 인간언어를 창조한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같은 말을 쓰며 서로에게 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 문승현
Vol.20120306d | 문승현展 / MOONSEUNGHYUN / 文勝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