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ive

이림展 / LEERIM / 李林 / photography   2012_0301 ▶ 2012_0331

이림_Retrospective展_kasia kay art projects gallery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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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302_금요일_06:00pm

kasia kay art projects gallery 215 N. Aberdeen St. Chicago IL 60607 Tel.+1.312.944.0408 www.kasiakaygallery.com

네버 엔딩 스토리 ● 이 림의 작품은 회화와 사진 기법이 함께 공존하는 작품이다. 먼저 사진이나 비디오 작업을 한 후 기록한다. 그 안에서 선택한 이미지를 다시 캔버스에 옮기기도 하고 반대로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 림이 추구하는 것은 회화와 사진 사이 차이점을 관람객이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작업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기존 작업보다 정제된, 절제된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 중 단색조 작품들은 2011년에 제작했다. 이전까지 작가는 유화 물감으로 어떤 장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그를 대중들에게 알린 특징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 「consensus」 시리즈 이후 새롭게 등장한 작업이다.(물론 현재 보이는 시리즈를 작업하기 전에 서울 살롱 드 에이치(Salon de H)에서 이전과 현재 작업을 잇는 매개적 전시가 있었다.) 기존 이 림의 작업을 처음 대할 때 사람들은 수위를 넘지 않는 에로틱한 감성과 화면에 마음을 뺏겼다. 큰 화면에 사람 얼굴이나 신체를 일정 부분 확대하여 그린 그림으로 시선을 잡았다. 다른 방향으로 엉긴 붓터치들은 물성과 감성이 혼재되어 보는 이의 감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은 비디오 작업을 하거나 스틸 컷 작업을 한 후 화면에 옮겼던 방식을 뒤집었다. 먼저 직접 모델 몸에 칠을 하고 퍼포먼스 작업을 사진으로 옮긴 것이다. ●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 영향이 가득한 상상과 현실을 융합한다. 이 림은 학생 때부터 초현실주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드 이론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브르통은 '이미지가 잠재된 욕망을 나타내야 한다.'고 초현실주의 목표를 서술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에른스트의 작품 「발가벗겨진 신부」를 보고 그림 안에서 한 형상을 차용하여 작업한다. 에른스트의 그림에서 이 림이 가진 욕망과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에른스트는 초현실주의 대표작가다. 이 림이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연구하면서 원류를 찾아가다 보니 에른스트를 만난 것은 크게 이상할 것 없다. ● 기법 상으로도 초현실주의적인 방법적 차용이 있다고 본다. 이미 현대 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전략으로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은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 림은 특히 사진과 회화 사이 경계를 넘나들며 기법적인 데페이즈망을 시도한다. 붓자국들이 느껴지는 화면은 사진으로 작업한 것이고 사진 같은 장면을 다시 그림으로 그린다. 관람객들은 시각적으로 당연하고도 의심 없이 화면에 드러난 질감을 믿는다. 이런 믿음에 어떤 것이 진짜인가를 되묻고 있다.(회화를 전공한 이 림은 언제나 자신이 '그리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화면 가득 회화적 감성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이번 사진 작업에서도 모델 몸 위에 직접 칠을 하는 것 또한 그리는 행위가 확대된 것이다.)

이림_Beyond Max Ernst (penis envy) No.1, edition info 3/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0 Copyrightⓒ. 2012. Rim Lee. All Rights Reserved / photo by Suk Gung Min

이 림이 작업에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완전함'이다. 인간의 완전함뿐만 아니라 정신적 완전함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초기작에서 보이는 장면은 나른한 듯 눈을 감은 인물 표현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떤 감정에 있어 극점을 경험하는 듯 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신과의 교감에서도 드러난다. 최고 합일의 완벽한 순간을 바로크 조각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희열」에서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신비주의에 착안하여 종교적 내적 경험(ecstasy)에 의한 상태를 성적인 황홀경의 상태와 같이 보았다. 작가는 이러한 극단의 감정을 이전까지 여성으로서, 개인의 감정에 중점을 두어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들은 보다 발전된 보편적 감정으로 작품에 싣고자 한 것 같다. ● 대략적으로 화면 중앙에 캔버스가 놓이고 양쪽에 인물 두 명이 서 있는 장면이 있다. 캔버스에 있는 이미지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에른스트 작품 「발가벗겨진 신부」 시리즈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을 차용, 변형하여 그린 것이다. 머리에 새 모양 가면을 쓰고 두 사람이 그림 앞에 서 있다. 인물들이 쓴 가면은 머리 윗부분이 둥글게 보인다. 이들은 아마도 여성으로 추측한다. 그 이유는 가슴이 나오고 남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나는 이 시리즈 작품들이 마치 서양 고대 연금술을 설명하는 그림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서양 연금술에서 완전한 무언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물질과 물질이 만나는 '합일(coniunctio)'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마치 남자와 여자가(보통 왕과 왕비로 표현하곤 했다.) 커다란 욕조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혹은 관 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욕조나 무덤이나 서로 다른 물체가 만나 합일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물질로 탄생하는 장소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그림에서 인물 뒤에 서 있는 캔버스가 바로 이러한 융합의 장, 재생의 장이라 본다. 에른스트의 그림이 이 림에게서 다시 태어났다. ● 나는 화면을 멀리서 본다면 이 형상은 여성의 음순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것은 여성의 질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이 림이 보여주었던 다른 드로잉을 보면 털 조직 같은 천 안에 검은 잉크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면 옷자락과 같은 사이 다리 모양 같은 물체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에른스트의 원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인데, 이 다리는 마치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나는 이 그림은 여성의 성기와 남성 성기 모양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고 본다. 서양 연금술에서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결과는 완전함이었다. 한 장소에서 합일의 과정 후 '완전함'이란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함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의 모든 신체 기관이 살아 있는 자웅동체라 할 것이다. 자웅동체 형상은 연금술에서 완벽한 순간을 상징한다. ● 두 여성은 같은 모습이며 새 머리 모양을 쓰고 있다. 새는 부엉이 혹은 올뻬미인 듯 보인다. 에른스트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올빼미 형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올빼미는 전통적으로 도상적 입장에서 보면 지혜를 나타낸다. 밤에 활동하기에 나쁜 징조, 혹은 죽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마도 이 림의 작품에서 무언가 쾌활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죽음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금술에서는 죽음이 있을 때에만 부활이 있다고 믿었다. 금은 도가니에 들어가야 새롭게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사흘을 지냈을 때 부활했다. 따라서 죽음이란 이 그림 안에서 새롭고 완전하게 되는 긍정적 죽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두려운 느낌을 수반하는 것뿐이다.(이 두려움은 남성적 시각에서 봤을 때 드러나는 감정일 것이다.) ● 여성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림의 그림은 기존 여성에 대한 시각을 해체하고 있다. 그의 초기작에서는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을 느끼게 한다. 대상 인물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눈을 감는다거나 손을 포갠 후 머리를 기댄 모습은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작품은 과거 모습에서 한층 진화된 여성의 모습이다. 화면에 있는 두 여성은 당당히 정면을 바라본다. 또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변한 새의 머리는 동그랗게 크게 뜬 눈으로 앞을 응시한다. 이 새 머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두려움 없이 쳐다본다. 의미적으로 남성의 머리를 가져왔지만 완전히 내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자신도 남을 바라보고 남도 나를 바라보는데 두려움이 없어졌다. 즉 시각적으로 응시의 주체, 객체를 다 담당하고 있다. ● 두 명의 여성은 같은 성을 가진 인물 구성 때문에 얼핏 동성애적인 혹은 나르시시즘적 표현이 엿보인다. 앞서 설명한 연금술적 의미에서 본다면 두 형상은 이미 남, 여가 합쳐진 완벽한 개체이다. 자웅동체인 개체가 다시 둘로 나뉜 것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생각 할 수도 있다. 현상학적으로 볼 때 거울 이미지는 또 다른 자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여성은 한명은 작가, 다른 한명은 작가의 동생을 의미한다. 작가에게 동생이라는 의미는 또 다른 '나'이다. 생물학적으로 생각하면 한 어머니에게 태어난 생명을 나누어 가진 존재이다. 그에게 동생이 태어난 것은 각별한 사건이었다. ● 이 림은 서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에게 태어나고 교육 받았다. 그의 부모는 한국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았지만 전통적인 의식과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 가정은 대를 잇기 위한 '아들(남근)'을 원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몇 번 실패 후 여동생을 낳는다. 물론 작가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 기뻤지만 전통적 가치관에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사람은 여성과 남성 차이 없이 평등하다는 현대적 개념과 남자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 사이 모순에 대해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이 림이 무의식적으로 남근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욕망을 해소하지 못한 또 다른 '내'가 태어나게 되었고,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되면서 작가에게는 동일한 감정이 동생에게 이입되었을 것이다. 이 욕망은 작가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자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 나는 그가 추구하는 완전함이 '욕망'이라고 보고 싶다. 욕망이란 라캉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남근에 대한 선망과 부재에 대한 강력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새 머리를 뒤집어 쓴 형상은 사람이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을 봤을 때 남근의 형상이다.(프로이트는 긴 막대 형상을 거의 남근으로 해석했다.) 서양에서는 남성의 남근이 거세당했을 때 머리가 잘린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성경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왕에게 바친 것은 거세와 동일하게 여겨진다. 이 점을 감안하면 작품 속 새 모양 가면은 이미 거세된 남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새는 프로이드에게는 여성을 상징했었으나 에른스트의 경우 부리의 모양, 형태 등으로 남성 페니스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림의 작업에서 조합하여 생각하면 새 머리는 거세된 남성 성기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뒤집어 쓴 새 머리 가면은 화면 속에서 모델이 이미 남성의 몸을 지배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라는 특징 안에서 극복하지 못한 욕망(남근)을 상징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아버지에 대해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반감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한다.) 작가의 욕망은 아버지로부터 발생한다. 작가가 진정으로 벗어나고, 이기고 싶어 하는 존재는 사실 아버지(대타자, The Other)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권위에 상응한다. 작가 가족 중 유일한 남성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로서 사랑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다. 이것은 이 림의 경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에른스트의 경우 다섯 형제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심한 압박을 느꼈다고 한다. 에른스트는 프로이드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향한 반항적인 태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으로 정당화 시켰다고 한다. 작가가 에른스트를 선택한 것이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 림은 자신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림_Beyond Max Ernst (penis envy) No.3, edition info 3/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0 Copyrightⓒ. 2012. Rim Lee. All Rights Reserved / photo by Suk Gung Min

이 림은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꺼내어 놓았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지만 용감하게 드러내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비교적 평등한 세상이 왔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전통적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아들에 대한 선호, 교육열 등 오히려 더 현대인의 이기심과 함께 응축되어 간다. 부디 바라건 데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 림이 아직 이야기 하지 못한 많은 여자 이야기들을 영리하게 풀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해소되었다고 믿었던 욕망들이 사실은 덮힌 진실이라는 것도 밝혀 주길 바란다. 여성들이 현실에서 소심하고 비겁하게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작가가 붓이라는 칼로 거세해 주길 응원한다. ■ 이주리

이림_Beyond Max Ernst (penis envy) No.4, edition info 3/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0 Copyrightⓒ. 2012. Rim Lee. All Rights Reserved / photo by Suk Gung Min

Retrospective ● CHICAGO, IL: kasia kay art projects gallery is pleased to announce our first solo exhibition for Rim Lee entitled Retrospective. The artist's work finds primary source material within the realms of performance and photography while her oeuvre focuses on the intensity of human emotions. The exhibition presents Lee's self-portraits - large oils on canvas and photographs - in which she references certain works of Max Ernst. Lee's works emphasize a visualization of the conceptual values of inherent human emotions, as a result of which the artist provides a portrayal of human sentiment within the context of art discourse. ● Lee's self-portraits on canvas begin as performances. The process starts by applying black and white paint either onto her or another model's nude figure, and then having a photographer take pictures of the performance. Both media serve as a vehicle to transform a stylistic female form onto canvas in order to convey her personal message - feelings of intimacy, isolation and suffering. By incorporating the theme of invisibility into her work, Lee stimulates the viewer's curiosity about the unknown. This obscurity is exemplified in how she captures the movement of the paint on the body, providing a motif of comprehensive feelings that cannot be seen. ● Although the "Beyond Max Ernst (penis envy)" photo series are Lee's tribute to the work of the surrealist artist, she also internalizes this work. An interest in spiritual aspects of life, direct her to search for the innateness of human emotions, a universal truth, one that not only addresses a question of identity, but also: "what is the universal and primitive of the human being?" To Lee, it's going back to basics. ● Adopting Max Ernst's work elements serve only as a vehicle to help Rim Lee in defining her own story. Following in Ernst's footsteps, Rim Lee experiments with different techniques and complicated productions. Her aesthetic process involves photographic reproduction, color reduction, collage and duplication, painting in a realistic way, cutting out parts of images and creating 3-D models, and again a photo-work at different angles. Thanks to these tactical steps, Lee arrives at the work where the origin of the separate elements is submerged in the complete enigmatic image. The links of various sources of materials remain invisible. ● Rim Lee is becoming an important upcoming internationally Korean artist having recently participated in Korean Eye at MAD, NYC, as well as in Korean Eye-Fantastic Ordinary (2010) and Korean Eye-Moon Generation (2009), both at Saatchi Gallery in London. She has also been nominated in 2010 for the Perrier Jouet Award. ■

Vol.20120304b | 이림展 / LEERIM / 李林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