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HARTIST-1

김은영_노정희_안경진_이희명_임장환展   2012_0302 ▶ 2012_032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302_금요일_05: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자하미술관은 2012년을 시작으로 자하미술관과 함께 성장하게 될 "ZAHARTIST"를 발굴, 지원하는 작가공모를 진행하였습니다. 신진작가와 기성작가 구분 없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작가를 그 대상으로 하며 작가들의 잠재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2011년 공모를 진행하였으며, 내부 심사를 통해 총 6명의 "ZAHARTIST"가 선정되었습니다. 김은영, 노정희, 안경진, 이희명, 윤성필, 임장환 작가가 천번째 "ZAHARTIST"이며 윤성필 작가를 제외한 나머지 5명 작가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전시뿐 아니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해외 무대로의 진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려고 합니다. 첫 발을 떼는『2012 zahartist-1』을 진행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자하미술관

김은영_이어가다_못, 용접_가변설치_2011

나는 항상 시각과 몸의 지각의 만남에 관심을 가져왔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관심을 물성을 이용한 행위누적 즉 세계와 신체와의 만남에서 감각되는 힘을 이중의 제스트(Dual geste) 통해 드러냈었다. 이 당시 나는 제작행위 이전에 주입된 여러 가지 개념, 이미지, 형태의 도식화,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어진 재료의 물성의 우연성을 최대한 이용했다. ● 물성이 중심이 된 작업 과정 중 본인은 조각의 특성이 시지각 체계와 다른 공간 지각력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아가 공간 지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조각 작품은 시지각의 파편화, 즉 프레그난츠의 해체, 시지각 체계가 주가 되는 도식의 파괴, 역장의 강화, 경계의 애매함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공간 지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 속의 사물의 재인 과정은 힘의 감각인 촉각과 시간의 지속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공간 지각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조각 제작행위는 신체 역학과 시각 체계의 만남을 바탕으로 하여 반복되는 행위 누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즉 본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시각과 신체 내부 감각의 불연속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감각되는 힘의 잠재성이라 볼 수 있다. 힘은 행위와 더불어 출현하고 시각 형태의 드러남과 더불어 사라진다. 그러므로 본인의 작품은 형태적 유형이나 어휘라기보다는 형태가 생성되는 복합적인 성장 메커니즘을 인식하고 실험하는 비선형성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 또한 몸의 원초적 감각인 공간 지각을 통해 제작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물의 세계를 명료하게 파악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행위를 통해 열린 구조, 즉 잠재적 힘의 관계를 통해 사물의 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이며 몸이 지닌 '본연의', '야생의' 지각으로 되돌아옴을 뜻한다. ■ 김은영

노정희_요즘 사는 방식 contemporary lifestyle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1

완벽을 기한 창조로 시작된 그 편안함, 명확히 그려지는 격자의 사각형과 큐브의 규격들. 빛은 사람들과 그의 창조물 그리고 그들이 사는 자연을 비춘다. 보고 싶은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이고 싶지 않은 것까지 구석구석 그대로 밝게 비추며 지켜본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보여준다. ● 편리한 창조는 어느새 우리we를 가두고 있는 우리cage가 되고 그 모든 것을 안고 있던 자연은 인내하고 적응하고 그리고 변화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것이 똑똑한 것이라 여겨 끊임없이 욕망을 실현하고 만족한다. 그러나 그 만족스러운 실현은 곧이어 변질된 자연으로, 어설프게 허물어지는 현실로 돌아온다. 어느새 사람은 그 변화를 기피하고 두려워하여 처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두려움의 몸부림을 친다. ● 그들의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빛은 괜찮은 척 가장한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그 형상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꾸미거나 감추고 싶은 곳까지 뻗쳐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두려운 결과를 그린다. 욕망에 가득 찬 실루엣의 그림자는 서로 뒤엉켜 익숙한듯하나 생소하고 기괴한 형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 노정희

안경진_Pray_혼합재료_100×65×40cm_2011

사물에 빛이 가해지면 그에 대한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본인은 물체의 형상에 귀속된 그림자를 그것과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물체와 그림자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고 미묘한 관계를 갖도록 설정함으로 서로 간에 수많은 이야기의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 유기적 형태의 조각은 어느 한 시점으로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형태를 관찰 할 수 있다. 그러나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는 조각에 가려진 모습을 통해 형성되는 하나의 실루엣만을 재현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모습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형태를 포착하여 그 실루엣이 완성된 조각과 다른 형상을 취하도록 한 것이 본작업 형식의 주요한 부분이다. ●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그러한 정보는 어떠한 사건과 현상에 대하여 누군가의 의견이 반영되어 재구성되고 사실과 무관한 정보로 탈바꿈하기도 하며,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인식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현상을 파악하려면 스스로가 사건에 대하여 고민하고 분석하여 눈에 보이는 일차적 정보 이면의 내용까지 알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몇 가지의 의견으로 조합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이견과 다양성이 존중을 받고, 이러한 인식이 자연스러워 질때 다름을 편견이나 죄악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일 것이다. 이견과 다양성의 존중 이외에도, 우리가 세상을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분 이면의, 페르조나 안에 감추어진 인간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시각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 이렇듯 본인은 눈에 보이는 형상의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나 간과하기 쉬운 여백의 이미지가 실재하는 원본과 다른 모습을 자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자의 사전적 정의는 물체가 빛을 가려서 생기는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이라고 한다. 물체의 빛 받는 형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는 그 물체의 형상을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의 움직임에 좌지우지되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또한 빛과 그림자, 선과 악, 원본과 복제와 같이 이분법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그림자다. ● 그러나 조각 이면의 그림자가 실재하는 원본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보다 고귀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생성하는 작품을 통하여 기존에 형성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고,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하고자 한다. ■ 안경진

이희명_Night Queen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72×60cm_2011~2

나의 작품은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감각이란 것은 현재와 과거, 미래 사이에서 태어난 잡히지 않는 본능적 메아리다. ● 이러한 메아리를 가시화 시키려는 노력은 명백한 서술 구조의 탈피를 통해 작품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은 불확실성의 추구를 위해 왜곡된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각 작품의 이미지는 절단된 인체와 사물과의 혼용이나, 선이나 면으로 해체된 추상적 이미지의 조합으로 표출하였다. 이로써, 각각의 형상이 지닌 물질적 구조의 한계점을 이동 시키고자 하였으며, 상투적 의미에서 벗어난 이미지의 오류를 통하여, 비가시화된 새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하고자 하였다. ● 이미지가 방향을 잃을수록 오히려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는 확장 되어간다. ● 이러한 표현 양상은 '삶과 사고의 유동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이 '유동성'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모호한 결론'이다. 삶이란 것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확정되는 것이 없다. 모든 존재의 경계는 불투명하다. 즉, 모든 존재는 과정이 과정을 낳는 행위 안에 서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작품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탄생하거나, 지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흔적의 얼룩을 본능적으로, 독창적으로 담아내는 것뿐이다. ■ 이희명

임장환_Falling Star_캔버스에 유채_81.1×130.3cm_2012

영화「혹성탈출」을 보면 인간들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갔다 왔더니 원숭이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이라고 생각하고, 영화 막바지에 자유의 여신상을 등장시킴으로 과거 인간의 세계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나는 여기서 "자유의 여신상=아이콘"이라 생각했고, 지금 우리가 아이콘이라고 믿는 것들이 언잰가는 사라진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 이다. 영화에서 인간의 세상이 사라지고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상을 보면서 영원한 것은 없고, 사라질 "자유의 여신상(아이콘=인간들의 세상)"을 향한 욕망을 보았다.

아이콘을 향한 욕망 ● 내 그림은 아이콘(icon)이 사라지는 세상에 폭력과 욕망의 논아이콘(nonicon)들을 그린다. 사라져가는 아이콘들과 폭력과 욕망으로 똑같은 모습에 논아이콘들이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며 아이콘이 되겠다는 욕망을 들어낸다, 달콤하고 비비드한 색깔로 행복한 세상일 것 같지만 그런 상상을 배신하듯이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 미국의 일본연구자 찰머스 존슨은 30여년전에 일본사회를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고 명명했다. 그가 본 일본사회는 국가가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정부와 민간이 효과적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해 정교한 발전의 방도를 만들어가는 네트워크사회였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일본은 기업(도쿄전력) 이익논리 때문에 일본형 시스템이 대재앙 속에서 무력화되고 있다. 예상 밖의 거대한 재앙 속에서 정치적 지도력이 마비되고, 잘 짜여진 매뉴얼 지침에 대한 맹신이 도리어 피해를 더욱 키우고 있다. 원전 폭발은 대규모 인간파멸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당연히 초기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이미 시간을 허비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야 뒤늦게 인간특공대를 투입했다. 처참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봄의 침묵 ● 인간의 욕망이 인간을 과거에 전설로 만든다.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 인간은 결핍을 매우려고 환경를 소비하고 편의에 의해 인공적으로 새로운 물질(DDT,원자력)을 만들고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을 과거에 전설로 만들고 있다. ●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Silent Spring」의 저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말했듯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올 것이다. ■ 임장환

Vol.20120303h | ZAHARTIST-1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