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Metaphorical Space

오용석_정정주_하원展   2012_0302 ▶ 2012_0325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오용석_정정주_하원

주최 / 한빛미디어갤러리 후원 / 서울시_GL Associates_streetworks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한빛미디어갤러리 HANBIT MEDIA GALLERY 서울 중구 장교동 1-5번지 Tel. +82.2.720.1440 www.hanbitstreet.net

인간은 항상 공간 속에 존재한다. 살아가면서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끼는 등 어떤 순간이든 공간과의 연계에 유기적으로 반응한다. 이들은 나무나 돌과 같은 물리적 실체와 연관되지만 형상이 없다. 이들의 특성, 차원, 스케일은 시각적 형태와 연관되어 생성되는 비어있는 공간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 여기서 비어있음은 무(無)의 개념이다. 빈 공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無)로 꽉 차 있는 것이다. 비어 있음은 온전히 무엇이든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는 개방적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이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차지할 공간이 필요하고, 무엇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기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여백이 필요하다. 예술에서의 공간은 감각적으로 체험되어지는 경험적 공간이자 동시에 가상적인 공간을 생성시키는 작가에 의해 창조되는 허구적 공간이며, 예술에서의 여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부정적 형태와 긍정적 형태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공간을 형성하고 소멸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비어있는 공간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구체적인 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묘한 교차점 같은 것이다.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적 허상이 아니라 형상화 된 것에 의한 또 다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전시는 이러한 '비어있음'에서 출발한다. '빈방'은 작가의 작품 속을 말하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워질 장소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시공간을 아우르는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개방된 빈 공간으로, 꽉 차 있었던 것들을 비워내고 어떤 의미에도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작가만의 언어로 정적이고 깊이감있는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어 인간이 사고할 수 있게 한다. ● 말레비치(K.Malevich, 1878-1935)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으나 그 부재 자체는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비어있는 무(無)의 공간이 유(有)의 잠재성이 내재된 공간으로서의 작용력을 갖게 됨을 뜻한다. 이는 창조할 가능성을 지니는 빈 공간이 인간의 미학적, 정신적 차원의 추구를 돕는 장치가 되어,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서서 사유하며 눈에 보이는 가시화된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정주_회전하는 집 rotating house_알루미늄, 비디오카메라, 모터, 모니터_가변설치_2010

작품이 있기 위한 공간을 바탕으로, 작품이 기능하기 위해 작가는 스스로 드러나는 그 안을 채우는 내용보다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없는, 애써 마음을 내어야 하는 형식의 유지를 통한 단절과 확장의 공간 접근법을 보여준다. 작품 안에서 작가는 최초의 설명적 정의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서 혼란을 빚고 비워내기를 반복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설득하고, 그것을 새로운 창작물로 도출하는 융합의 과정을 거쳐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가의 '자기방식의 표현방법'을 은유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전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 이렇게 작가가 거쳐온 혼란과 은유의 과정을 담은 전시는 관객에게도 강력한 은유법을 빌려 새로운 형태로 진화되어 나타난다. 그 은유는 누구에게나 환유될 수 있다. 즉, 작가의 은유적 표현방식이 관객의 은유적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으로 마치 수수께끼의 문제를 풀 듯,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빈 공간 자체를 인식하는 부동(不動)과 정적(靜寂)의 조화로운 예술은유가 관객에게 특별한 시각을 요구하고, 마음으로 생생하게 진리를 그리도록 하는 것이다.

정정주_응시의 도시 city of gaze_나무, 아크릴, 모터, 3대의 비디오카메라, 프로젝터_90×120×120cm_2009

정정주는 견고한 건축적 공간과 긴장된 시선의 영상을 결합시켜 이중공간을 만들어낸다. 실제 거리이든 은유적 거리이든 공간은 움직이지 않으며, 작품 속 담담한 고요함은 공간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으며, 작품이 말해주지 않는 부분을 관객으로 하여금 추측하게 한다. 무언가 숨겨진 것의 존재감, 확실히 있긴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의 존재감, 주체인 듯 하지만 결코 한번도 주체가 아닌 적도 없는 미묘한 존재감을 전하는 것이 작가의 공간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꽉 짜인 구조의 건축모형과 작품에 관객의 개입을 유도하는 영상작업은 모든 이가 그 통로 안에서 활동하고 사유하며 연상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미지로 빈 공간을 채워가게끔 한다. 영상 속 공간은 건축물 모형을 그대로 반영하여 교묘히 역전시키는, 관객의 요구에 따라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공간인 것이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가 서로 벽을 허물고 연속된 세계에서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관계를 형성하고 작용하여 울려 퍼짐으로써 작가의 공간은 무한한 공간의 초월성을 갖게 된다.

오용석_Classic No. 1978_단채널 비디오, 스틸&무빙 이미지_2009
오용석_드라마변주_단채널 비디오_00:04:00_2008

오용석은 과거와 내가 있는 곳의 연결짓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그 기억의 저 편 그 어떤 너머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시선의 개입과 전복 그리고 존재의 흔적을 축적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상상과 은유의 흐름으로 시작되어 시공간의 융합으로 표현되며, 여러 시점의 공존으로 화면에 불연속면을 만들어 다각도에서 바라본 하나의 공간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공간을 와해, 정지된 시점의 파괴 그 자체를 드러내어 시각적 고성을 탈피한다. 이는 기억과 현실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을 넘어서 전달할 수 없는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숨어있는 낯선 공간을 찾아내게 한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중첩, 정지된 사진과 움직이는 영상의 결합이라는 숭고한 창작행위는 두 상반된 관계의 소통을 꾀하여 몸 안의 공기를 밖으로 방출하고 외부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공간 안에서 무한히 호흡하게 한다. 이러한 호흡을 통하여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는 차별화된 시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오용석_러브레터_2채널 비디오, Siamese scope, Divx player_00:01:54_34×40×25cm_2008

하원은 암흑의 실내 바닥과 천정에 하늘 풍경을 담아낸다. 하늘은 그 자체로 커다란 우주이자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감싸 안고 있는 공간으로, 강렬한 부동감이 묘사된 작품 사이 사이를 걷는 동적인 행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관객은 평정에 조용히 다다르게 된다. 그 순간은 자신의 것이 되어 정적 안에 잠시 멈춰 있다. 관객을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는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 긴장감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작품 속 미세한 변화는 시각과 청각의 영역에서 지각의 심화를 가져다 준다. 이렇게 작가 내면이라는 주체공간에서 관객이 작품 속 침묵과 대면하고 점점 작가의 침묵에 공감하는 것은 절제된 언어로 공간을 그려내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은유적인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인간 개인의 사고가 의식의 장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돕는다.

하원_A Drop of Sky in the City_빔 프로젝터, 사운드, 스크린, 아크릴 거울, 영상설치_가변설치_2012

이렇게 작가들은 빈 공간 자체를 인식하여 정신적인 물질로 표현해내고, 하나의 은유적 공간을 구축해간다. 예술에 있어 '비어있음'은 작품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완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시각이 바탕이 되어, 비어있는 공간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비어있음'은 숨어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공간적인 언어임을 전시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 본 전시는 인간과 공간과의 상호작용에 집중하여 공간의 안과 밖, 비움과 채움, 보여짐과 지움의 관계가 더 이상의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경계선 내에서 소통의 주요한 언어로 사용됨을 보여준다. 이는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예술작품 속 가상공간에 관객을 위치시켜 공간을 읽어냄으로써 전시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인간의 심리에까지 도달하여 더욱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며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이끌어내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자, 이제 비어있는 마음으로 충만한 세계로의 유희를 즐겨볼 시간이다. ■ 조희승

Vol.20120303b | 빈방의 빛 Metaphorical Space-오용석_정정주_하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