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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222_수요일_05:00pm
포스코미술관 공모선정 작가展
주최/기획 / 포스코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8:00pm / 토요일_10:00am~03: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Paradise Lost - 고자영의 失樂園 ● 여러 생각 끝에, 작가 고자영의 포스코미술관에서의 개인전 평문 제목을 "실낙원"이라 붙였다. 물론, 밀튼의 대서사시에서 따온 제목이지만 종교적인 함축성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동안 꽃과 잎새, 나무 등 식물성의 이미지들을 비교적 화려하게 펼쳐 놓았던 그녀의 작품들이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으려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꽃이 없는 이 세상을, 꽃이 사라져가는 이 세상을, 그것은 실낙원을 향한 작가 내면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그린 식물들은 이 세상을 향한 몸짓이자, 역설을 담아 이상으로 향한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절규 같은 것이다.
이제, 거기에서 작가는 인생을 보려한다. 선대들의 관념적인 개똥철학에 깃든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저마다의 인생. 개똥도 잘 쓰면 약이 된다고, 거기에 깃든 바람결 같이 스쳐가는 진리의 목소리를 들으려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樂園"의 이미지는 식물성이었다. 거기에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의 낙원은 특히 "봄"의 자연이었다. 물론, 그 낙원은 그 지역의 신앙과 믿음에 기초한다. 기독교의 낙원은 봄의 에덴동산이었고, 도교의 낙원은 복숭아 꽃이 만발한 武陵桃源이었다.
또한, 옛 현인들에게 이 사계절은 곧 인생 그 자체였다.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기쁨과 희망의 봄은 곧 사람의 유년 시절이었고, 여름의 무성함은 젊음과 사랑의 청년기를 상징했다. 원숙과 결실의 장년기인 가을을 지나, 고뇌와 죽음의 노년기는 겨울로 묘사되곤 했다. 이 사계절의 순환은 인간이 겪어야할 모든 인생의 순환으로 치환되었고, 이 순환의 고리가 반복된다는 것이 서양 고전주의(classicism)의 절대적인 관념이 되었다. 즉, 문화의 형식(style)과 내용(content)도 기실 시대에 따른 그 겉옷을 베껴 버리면 이러한 절대적 반복의 순환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재-탄생(Re-naissance)"했다고 보는 유럽의 르네상스도 이러한 절대적 관념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화가들은 이 사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아 그들의 인생과 철학을 말하곤 했다. 한 예로, 푸생(Poussin)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노니는 봄의 풍경과 "노아의 홍수"를 세속적 재앙의 겨울풍경에 담아낸 푸생의 아이디어는 시공간을 초월한 지금 이 순간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 어느 시대에나, 어디에나 탄생의 희망과 죽음의 고통은 교차하며 존재하는 법. 고자영은 "쓰나미"에 휩쓸리는 외딴집의 표정에서 이 시대의 종말론을, 실낙원을 읽으려했으며, 꼬마 소녀와 함께한 꽃과 나무의 풍경은 분명한 미래의 표정임에 틀림없다. 미래의 표정과 종말의 표정은 이 지구가 없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반복되며 순환할 것이다. 그 반복과 순환의 표정 또한, 항상 인간이 처한 자연과 환경, 더 나아가 생태와 관련한다. 얼핏 본 아름다움의 꽃과 식물들의 푸르름을 그린 고자영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그림 너머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실낙원은 종교가 아닌 자연에의 문제라는 것. ■ 정영목
Vol.20120223h | 고자영展 / KOHJAYOUNG / 高子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