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사물

조혜진展 / JOHYEJIN / 趙惠珍 / installation   2012_0223 ▶ 2012_0322 / 일,공휴일 휴관

조혜진_Mineral water_화강석, 대리석 조각, 트레싱지에 일러스트_가변설치_2009

초대일시 / 2012_0223_목요일_06:00pm

유중아트센터 우수신진작가 장학지원 공모 선정작가展 II

후원 / (재)유중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유중갤러리, 유중아트센터 3층 서울 서초구 방배동 851-4번지 Tel. +82.2.599.7709 www.ujungartcenter.com

재단법인 유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중아트센터에서는 조혜진의 개인전 '유용한 사물'展을 오는 2012년 2월 23일부터 3월 22일까지 본원 3층에 위치한 유중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유중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장학사업 가운데 시각예술분야의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수여되는 '우수 신진작가 장학 지원 사업'의 2011년도 공모 수상자로서 선정된 조혜진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조혜진은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있는 신예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조혜진_생각하는 의자_의자, 조명, 화분, 거치대 등 오브제 조합_120×60×60cm_2009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며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합목적성이라 일컬어지는 이러한 원리는 쉽게 말하면 사물은 각각 쓰임에 적합한 기능과 형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주전자를 예로 들면 음료를 담고 따르는 기능을 위해 항아리 모양의 몸체에 부리와 같은 귀때와 손잡이가 달린다. 이때 구멍의 높이와 크기, 손잡이의 위치와 비율 등의 조형적인 요소는 곧 기능의 탁월함과 직결되는데, 구멍이 뚜껑보다 낮게 뚫려 있을 경우, 안에 든 음료가 흘러넘치고 또 손잡이가 작을 경우, 주전자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워 사용상 불편을 초래한다. 때문에 기능과 형태의 유기적인 조화는 사물의 올바른 소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서 미의 기준점이 된다.

조혜진_생각하는 의자_의자, 조명, 화분, 거치대 등 오브제 조합_60×60×120cm_2009

오늘날과 같은 산업사회에서 고도의 합목적성은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잘 발휘된다. 대량생산 체제에서 기능적, 심미적 적절성을 확보하는 것은 재료의 선택, 기술의 투입, 작업 단계 등 공정 전반과 결부되는 일로서 시장논리에 따른 기업의 이윤추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혜진은 이 같은 공산품을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며 사물의 존재 방식과 원리를 탐구한다. 작업은 내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조혜진_교환을 위한 탁자_방부목, 천정몰딩, 철물부속_40×90×50cm_2011

첫 째, 사물의 본래의 용도에서 색깔, 질감, 형태 등 조형적인 요소를 분리시키는 작업이다. 「휴대가 간편한 일회용 티스푼(2009)」에서 작가는 일회용 티스푼의 제작과정을 추적하여 가상의 설계도를 만든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일회용품은 말 그대로 한번 사용한 후 버려지는 물건이므로 기능성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형성이 부과되어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티스푼에서 기능을 배재하고 오로지 물건에 남은 극소의 미적 요소들에 의존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관념적인 유추 과정을 거쳐 결국 도면에 그려진 티스푼의 제작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작품과 같은 장인적인 노동의 프로세스로 나타난다. 생수병을 소재로 한 「Mineral Water(2009)」나 「조각을 위한 세트(2010)」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능은 무시된다. 오직 물통 표면의 패턴과 도식화된 이미지들만이 주목되는데, 동일한 무늬의 자연물과 함께 병치되거나 혹은 산수화 같은 풍경으로 재구성되어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의 태생적 근간으로부터 생산방식, 소비방법 등의 차이를 드러내는 한편 보는 이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유미주의적 접근과 가치 평가를 유도한다.

조혜진_넓고 큰 화분으로 쓰이는 욕조_트레이싱지에 색연필_29.7×42cm_2011

둘 째, 사물이 가진 성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기능화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다기능화는 두 개 이상의 기능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공간을 절약하고 일의 연속적인 수행을 통해 동선을 줄여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 때 기능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능들 간에는 위계가 설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주요 기능은 외형 전면에 강조되는 반면 하위 기능들은 제스처로만 드러나게 된다. 「생각하는 의자(2009)」는 생각을 위한 맞춤형 의자로서 생각을 촉진하거나 보조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혼합되어 있다. 의자 앞으로는 테이블과 커피 받침대, 아래로는 짐을 놓을 수 있는 수납대와 측면으로는 집중도를 높이는 스탠드 조명 등이 나름 조화롭게 부착된다. "유용성(Utility)은 미의 한 부분이다"라고 했던 알프레드 뒤러(Albrecht Durer)의 말처럼 기능만을 따진다면 일면 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각적인 면에서 다소 조악하며 복잡기괴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이 의자는 "기능에 따른 형태, 구조, 소재를 고려한 디자인은 스스로 미를 가진다"는 합리적 기능주의의 주장을 재고해 보게 한다.

조혜진_지붕의 천막을 고정하는 기와_트레이싱지에 색연필_29.7×42cm_2011

마지막은 사물이 지닌 본래의 용도가 폐기된 채 환경에 따라 변경, 변형되어 사용되는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형태는 쓰임의 가능성을 표출함과 동시에 그것의 한계도 드러낸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쓰임이 다한 후 본연의 가능성과 한계를 넘어 그와 유사하거나 반대로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되기도 한다. '발견된 사물에 관한 드로잉'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넓고 큰 화분으로 쓰이는 욕조(2011)」, 「비탈길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탁자(2011)」, 「파이프를 연장하는 두 가지 페트병(2011)」 등의 서술적인 제목으로부터 우리는 물건의 전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들은 흡사 버네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과 같이 주로 일상의 범주 내에서 야기되는 필요나 불편에 의해 제작되는데, 계획이나 목업(Mock-up) 없이 단지 문제점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실용화 된다. 완성된 결과물은 대부분 보통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세련미는 덜하지만 지역의 기후, 지형, 식생 등 풍토성을 반영하며 인간미를 지닌다. 한편 작가는 수집된 사례들 바탕으로 전문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발견된 사물의 대체품을 만드는데, 실 사용자들과의 물물교환 그리고 주석으로서 인터뷰를 통해 물건에 얽힌 풍부한 이야기를 들추며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한다.

조혜진_유용한 사물展_유중아트센터, 유중갤러리_2012

조혜진이 지속하고 있는 유용(有用)한 사물 그리고 그로부터 유용(流用)되는 사물에 대한 고찰과 분석은 외관상 합목적성이라는 존재의 원리에 해체하고 그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오히려 전체적인 내용을 아우르는 합목적성은 더욱 강조되며 덩달아 합목적성을 포괄하는 예술의 본질로서 '미(美)'가 함께 부각된다. 결국 사물에 대한 지난한 탐구의 과정 가운데 작가의 조형 의지가 향하고 있는 하나의 지점은 바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 즉,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 강안나

Vol.20120223a | 조혜진展 / JOHYEJIN / 趙惠珍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