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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 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나에 대한 초상 ● 작가 JI LEE(이지선)는 사진을 통해 '나'와 '나의 주변'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일견 건조하고 단순해 보인다. 사진은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가장 좋은 도구임에도, 그녀의 사진 속엔 드라마틱한 상황이나 순간적인 강렬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 있을법한 대상들의 소외감과 쓸쓸함이 화면 안을 메운다.「Faded」시리즈에는 쓸쓸한 사물들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데, 작가는 이렇게 묻혀있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하고, 과장이나 극적 연출을 배제한 채 사진에 담아낸다. 사진 속엔 시간과 공간, 남겨진 대상, 그리고 그 대상과 주변의 상황이 주고받은 영향과 변화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성향은 작가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 '나'라는 존재의 자아는 홀로 형성되지 않는다. '나'는 '남'과 함께 '우리'라는 영역에서 살아가며 그들과 동화되기도 하고, 동화시키기도 한다.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사는 지역, 날씨, 사회적 상황, 종교 등 모든 환경과 함께 한다. 결국 '나'를 표현하기 위해선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이렇게 주변과 내가 주고받은 영향과 그 변화의 기록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이 바로 '흔적'의 표현이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되는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그러한 것들이 대상에 어떠한 자취를 남겼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볼 땐, 말 그대로 바다에 관심을 가진다. 혹은 부서지는 파도나 아름다운 경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래사장에 주목한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모래위에 새겨진 '흔적'에 집중한다. 역동적인 파도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고 시시각각 모양이 변해가는 모래에 자신을 이입한다. 밀려오는 파도는 모래위에 흔적을 남기고 매 순간 변화하며, 매 순간 그 기억이 쌓여간다. 파도의 흔적 바로 옆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어져있고, 그 위에 다른 이들의 발자국이 생기고 또 덮이며 수많은 흔적들이 중첩된다. 사진의 주인공은 결국 파도와 사람들이 남긴 자취인 것이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모래지만 전혀 다른 대상의 기억을 통해 전혀 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다. ● 반대로 바람결에 뒤엉킨 풀들과 결을 이루는 냇물은 비슷한 기억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표현한다. 바람에 의해 결을 이루며 땅의 모양에 따라 비스듬히 누워있는 힘없는 풀들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흐르는 냇물의 표면 역시 다양한 모양의 결을 이루며 바람과 땅의 모습을 담아낸다. 물과 풀은 각자 자신만의 색으로 자신이 겪은 모든 기억을 기록한다. 따라서 이들이 담아낸 모습은 그저 주변의 기억을 보여주는 것이 그치지 않고, 다시 자신을 이루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다른 시리즈의 '자아'들이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다면,「Night Whisper」시리즈의 나무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밤에 찍은 나무들은 다른 어떤 자연요소보다 빛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원래 작가는 달빛이 든 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그에게 달빛이 든 나무를 찍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거리를 걷다 나트륨등이 아닌 수은등에 비친 나무를 보고 달빛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 수은등을 조명으로 한 나무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야외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촬영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명의 영향으로 대낮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인공적인 색감을 띠며, 숲의 개체로서의 나무가 아닌, 홀로 독립된 설치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Gently gentle」시리즈의 표현 방식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홀로 선 이 나무의 뽐내기는 밤과 인공조명이라는 조건이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낮이 되면 밝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수많은 나무와 주변의 사물들에 묻혀 다시 숲 속의 일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가장 돋보이던 주인공은 가장 까다롭게 갖춰진 조건과 그것들의 도움을 통해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한 것이다. 이렇게 밤하늘과 나무와 수은등이 주고받는 영향을 통해 작가는 나무의 존재를 재구성한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신만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자신의 자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기록과도 같다. 버려진 것들, 물과 풀, 모래, 나무, 꽃들을 통해서, 그들이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남겨 놓은 기억을 담는다. 같은 자리에 있는 모래가 파도와 사람에 의해 다른 기록을 남기듯, 똑같은 바람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도 물과 풀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결국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주변과 나의 교감을 나타내는 '흔적'이며, 그것을 쫓아가다 보면 다시 '나'와 '나를 이루는 것들' 대해 느끼게 될 것이다. ■ 윤병협
Vol.20120221d | 이지선展 / JI LEE / 李智仙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