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거나, 기억되지 않거나 Faded or Unremembered

2012_0217 ▶ 2012_0309 / 주말 휴관

김효정_Fore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4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효정_여승열_에테르_이선환_조상훈_차은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아트스페이스 휴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68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사라지거나, 기억되지 않거나 ● 1. 책상에 앉아 있거나 대로변을 걷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했던 경험일 수도 있고, 무언가 갑자기 북 받치는 감정 일 수도 있다. 부유하는 풍경들은 언제나 소멸하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리지 않는 이상에는 먼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순수한 몽상과 직관은 작가가 날 것을 나르는 보편적이면서도 소박한 방법이다. 최초의 감각은 작가를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시발점이다. 가슴 깊이 들어가 자신의 고독과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의식 세계를 구현하는 세상이 되어 대상과 나 사이의 간격을 빠른 속도로 소멸시킨다.

여승열_코스모스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62.2×190.5cm_2011

『사라지거나, 기억되지 않거나』는 창작자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감각의 순간과 마주하는 전시이다. 단지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것에 불과한 어떤 이미지나 사물의 호흡을 들여다보며 그 내밀한 이면을 직접 마주한다. 그리면 독백에 불과했던 감각들은 대화의 장으로 솟아오른다. 고독의 존재들은 내면과 맞닥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새로운 형식과 유행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단지 누군가에게는 크고 무겁게 생각해야하는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섬세하게 사물을 들여다보는 계기일 뿐이다.

에테르_Anticipation of an Error test 1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라스페인트, 혼합재료_46×38cm_2012

2. 빽빽한 주름과 몽롱한 색으로 가득 찬 김효정의 작업은 은밀한 촉감에서 시작된다. 마치 뇌의 주름을 연상케 하는 조밀한 주름은 마치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은밀한 기억을 소리 없는 외침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꿈속에서는 마치 바로 옆에서 말을 걸던 육성같이 생생한 현실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도 아침이 되면 한 순간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눈을 뜬 순간 보이지 않는 욕망의 전체로 느낀다. ● 차은혜는 섬과 바다를 소재로 대부도에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기억한다.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떨어진 섬과 차가운 바다는 더 이상 외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굽이치듯 온화하게 흐르는 파도와 저 멀리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섬은 작가의 기억 속에서 걸러진 온기를 지닌 부드러운 대상으로 재창조되어 새로운 감각으로 번역된다.

이선환_일상의 주술적 기록_괴황지에 경면주사_각 19×9cm_2011

현란한 색으로 뒤덮인 에테르 작업 속 인물들은 현실을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마치 환각 혹은 그 비슷한 흥분의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인 듯, 각자의 현실 속에서 불안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친다. 우아하게 짜인 작가의 최면 안에서 그 존재들은 서로와 교감하며 동시에 안심한다. ● 조상훈의 드로잉은 단단하게 지어진 의식의 성처럼 견고하다. 그로테스크한 화면은 작가의 의식구조를 설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신분석학의 설계도 같다. 외부현실과 분리된 내적인 불안, 고통, 괴리감은 조각난 개인의 기억을 하나씩 이어 붙이는 응고제가 되어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자신과의 투쟁을 지속한다.

조상훈_Being_종이에 과슈_177×132cm_2012

여승열의 그림에는 풍경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것은 여유로운 풍경이 아니라 어디론가 내달리는 분할 된 두 개의 파편의 운동이다. 그려진 대상은 명확하고 보는 이의 시선은 분열된다. 고요하고 맑은 화면은 그가 세상에 대한 환멸과 지겨움을 느낄 때 필연 동시에 우연히 눈앞에 명멸하는 순간의 장면들이다. 분열의 순간을 느낄 때, 그 순간의 외부는 뭔가 어긋나고 비틀린 세상일지 모른다. ● 이선환의 드로잉은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부적을 떠올린다.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이성적 질서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선과 악이, 절제와 혼동이 한 화면에 혼재한다. 기르던 강아지를 팔고,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를 키워 잡아먹는다. 악몽에 시달리던 날들을 뒤로하고 반성하듯, 작은 종이위에 그려진 동물과 내장, 그들을 죽였던 번뜩이는 칼날은 마치 경전처럼 질서 있는 사유와 감각을 요구한다.

차은혜_정상류(steady flow)_1_장지기법_80×80cm_2011

3. 기억의 깊이는 그 세계를 좁힐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부신 찰나는 뒤를 돌면, 밀물과 썰물의 그것처럼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것은 단지 기억의 운동에 머물지 않는다. 의미의 운동이자 존재의 솟음과 관련된다. ● 여섯 명의 작가들이 설정하고 있는 문턱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개인과 개인이 공유하는 경험의 영역도 그만큼 투명해진다. 무한대의 파동이 잠재한 작가들의 이미지와 기억들과 의미들. 움직이는 파동이 궤도를 이루어 각기 다른 배경과 고유성을 지닌 세계로 나아간다. ■ 윤혜원

Vol.20120217i | 사라지거나, 기억되지 않거나 Faded or Unremembered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