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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展 / LEEKYOUNGHEE / 李京姬 / print.installation   2012_0215 ▶ 2012_0221

이경희_components_설치_150×480×175cm_2012

초대일시 / 2012_021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2층 3전시실 Tel. +82.2.738.7555 www.topohaus.com

사물의 다른 얼굴 1. 단면을 깊이 응시하기 기계의 부품과 재료들이 하나하나 분해되어 놓여있다. 절단면을 통해 드러나는 대상은 구성요소의 수직적 수평적 위계 없이 동등하게 드러난다. 모든 요소들이 동일한 시각성, 존재론적 위치에서 보여 진다. 전사적으로 드러나고 감각. 인식에 각인되는 것. 부품사진의 확대를 통해 하나의 요소를 독립적인 존재로 드러나는 것. 판, 종이, 재료가 접촉하면서 또 다른 시점과 시각을 갖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미적 수단이 된다. ● 일일이 해체된 부품들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각과 태도를 반영한다. 마치 사람과 눈을 맞추듯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배치되어 있다. 절단된 사진 속 부품은 기능과 디자인과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단지 하나의 사물이 된다. 겉이 아닌 내부에서. 대상들은 기능을 상실한 그러기에 그 가치가 사라져버리자 비로서 대상과 기계는 하나의 실재(Reality)로 직립할 수 있다. 대상은 유령처럼, 기계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접신(接神)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경희_component-b03_코튼지에 엠보싱_80×50cm_2012

대상은 더 이상 감상이나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장소이다. 응시의 대상이 됨으로써 기계부품과 재료는 명명되지 않은 익명의 사물이 되어버린다. 작가, 대상, 작품, 관객의 응시는 상호적이다. 응시의 주체는 복수이다. 그것은 작가의 의식과는 아무 상관없이 무엇이건 의식하고 관계하는 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서서 더 깊이 응시한다. 그것은 아주 낯선 태도이자 낯선 사유이다. ● 그 과정에 작가 자신이 드러난다. 작가에게 기호나 언어로서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 재료, 분절된 이미지, 새로운 얼굴이 현상한다. 얼굴은 정신을 은유한다. 그러니 한갓 기계부품이 높이 띠어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떠올린다. 작가가 가려는 길은 물론 브랑쿠시와는 다른 길이나, 전통적인 예술형이상학의 한 갈래처럼 영원성과 무한성과 접촉하려는 우주적 몽상의 경로에 있다.

이경희_component-e82_코튼지에 판화_25×25cm_2011

2. 무한성은 도처에 있다. ●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또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결핍의 존재다. 부재이거나 불안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가 속한 세계로부터 매순간 확인받고 싶거나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과거의 것 특히 유서 깊고 고전적인 것에 대해 선망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인정하고 동의해온 것들을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 것과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와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태도가 공존한다. ● 그러나 또 그렇지 않은 세계도 있다. 매 순간 과거의 것, 고전적인 것,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정신이 모이는 곳이다. 소위 미술계가 그렇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또는 도처에 편재해 있으나 간과하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안정된 세계를 흔들고 해체하여 새로운 질서와 관계로 재편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공유하려는 것이 또 다른 태도이자 욕망이다.

이경희_section-14_디지털 프린트_80×80cm_2010

그 과정에 오랫동안 성공해온 것이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이미 고대로부터 무수한 작가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조형에 적용해왔고 르네상스기, 브르넬레스키나 알베르티 같은 이들에 의해 조형예술의 유일한 규범으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획득했다. 더욱이 르네상스이후 서구의 미술사는 바로 이 원근법의 해석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시대마다 고전적인 원근법의 원형에 당대의 해석, 인식과 감각을 가미해왔다는 것이다. ● 이경희의 작업 또한 원근법의 또 다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원근법이란 사실 하나의 방법론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미적 형이상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째든 전형적인 시각과 태도의 변경, 시점의 변화와 그 과정은 사물의 인식과 사물 그 자체의 변화를 이끈다.

이경희_section-08_디지털 프린트_45×100cm_2010

시각문화가 크게 변화하는 시기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우리의 시각성을 결정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식의 변화와 발명이 이루어졌다. 세계의 문화전반에 걸친 이 혁명적 시기에 인간의 시각성, 시각문화에 대한 변화 가운데 원근법의 새로운 해석과 해체, 그리고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미학이 있다. 이경희의 배경은 이러한 시각성의 결정적 변화에 대한 관심과 자기화가 있다고 보인다. ● 이러한 시점과 인식과 태도의 변화 과정에 외형에 얽매이지 많으며 대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것이 기존의 인식과 태도에 대한 존재론적 또는 도덕적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새로운 조건과 관계의 감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길임엔 분명하다.

이경희_component-p103_디지털 프린트_120×120cm_2012

이경희의 작업은 기계부품을 분해하고 또 부품 자체를 절단하여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원근법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새로운 감각의 완정성과 진정성을 찾는 길처럼 보인다. 많은 창작자들이 욕망하는 궁극적인 실재와 그 인식의 개방을 향한 길이다. 과거로부터 받아들인 예술, 그 방법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 김노암

Vol.20120215m | 이경희展 / LEEKYOUNGHEE / 李京姬 / print.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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