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시원 始原 2010-2011

박인관展 / PARKINKWAN / 朴仁寬 / painting   2012_0215 ▶ 2012_0229

박인관_이미지-시원2011-태초에_장지판넬에 유채_122×185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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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215_수요일_05:00pm

2012년 선화랑 기획 박인관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선화랑 · 선 아트센터 SUN GALLERY · SUN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1,2층 Tel. +82.2.734.0458, 5839 www.sungallery.co.kr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근원적 화해와 교감 ● 화가 박인관을 처음 만난 것이 15년 전 인사동에서였다. 첫인상이 모범생같이 차분하고 젠틀한 용모가 흔히 보는 예술가의 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포트폴리오엔 예상과는 다른 콘텐츠들로 꽉 차 있었다. 아마도 버몬트 스튜디오 초대에서 돌아온 직후가 아니었나 싶은데, 외모에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에너지의 작품 이미지들이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겉모습은 이지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내면세계를 열어 보인 순간 해방적이고 감각과 에너지가 충만한 디오니소스적 작가로서의 이미지가 부상하게 된다. ● 언젠가 많은 것을 말해야 하는 이는 /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다. //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하는 이는 /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디오니소스 찬가』 중) ● 그러다 재작년 부산 작업실에 잠시 들를 기회가 있었다. 전에 보았던 그림들과는 재료나 기법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작가 특유의 진지한 사유성과 의식 밑바닥에 깊이 내재해 있던 에너지를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화면이라는 점은 예의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다. 다만 훨씬 더 밝아지고 그동안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양식들을 종합하고 있는 듯한 하나의 정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내면의 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탐구해 온 큰 줄기 가운데서도, 다양한 동기들의 갈래를 재구성한 것이 근작의 상황이다. 또 하나 자신의 신앙심을 그림에 투영시키고자 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박인관_이미지-시원2011-31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97×130cm_2011

박인관 작가의 그림은 어느 한 극단에 있기보다는 중간지대 혹은 중립적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를 갖는다. 화해와 교감의 명제가 내장된 작가의 작업은 재현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 고정적인 것과 유동적인 것 등의 대립항들이 융합되어 있는 것이 작가의 화면인 것이다. 더러 구상적, 혹은 민화적 주제를 강조한 적이 있기는 하나 큰 줄기는 추상과 표현의 중간에서 자유로운 혹은 유동적인 회화양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들이다. ● 그러한 양식적인 사항뿐만이 아니라 미적 경험 자체도 다양한 성질의 에너지들이 융합되어 있거나 교차하고 있음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미의식 중심에는 고정이나 폐쇄성을 배척하며, 어떤 극단적인 것의 독점 역시 선호하지 않는 작가만의 원칙이 선명하다. 중용을 존중하며 대립적인 요소들까지 아우르거나 넘나드는 자유로움과 포용성, 유연함과 개방성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자 바람직한 효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는 안토니오 가우디를 연상케 하는 곡선이 유난히 많다. 이는 이지적인 관념의 집착을 지양하고 감성, 그리고 꿈과 상상력을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 근작에서 작가는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그림에 투영해나가는 조심스런 시도를 수행하고 있다. 생의 실존적 고뇌에서 선택된'신앙'이라는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성 짙은 주제의 도입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의 진리와 신앙을 어떻게 자신의 예술작업에 투영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박 작가도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진리'의 형상화라는 화두는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시원(始原)」 시리즈는 기독교 세계관을 투영시키고 있는 신앙고백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그림 고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경계해야 할 바를 선언적으로 다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인관_이미지-시원2011-시작과 끝_장지판넬에 유채, 혼합재료_122×185cm_2011

문제는 작가가 과연 어떤 조형 요소 및 컨텍스트에 자신의 신앙을 투영시키고, 아울러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두느냐에 쏠려 있다. 물론 화면에서 '빛'(진리)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나 하트 등의 기호적 도상들이 모종의 종교적 관념을 어필하고 있으며, 창조주에 대한 진지한 자기 고백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작가의 화면이 교리를 기계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특정의 종교에 귀의한 개인적 신앙고백이 동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보편을 향한 조형의 논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른바 경험 자체의 본질은 종교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근원적으로 동일하다는 인식이 저변을 이루기 때문이다. ● 모종의 내면의 희열, 즉 종교적 법열 혹은 절정 체험(Peak Experience)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내면에서의 절정, 즉 에이브러험 매슬로가 말하는 비일상적인 신비체험(우주의식) 혹은 고원체험(plateau experience)이자 디오니소스적인 해방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여타의 종교화가들과는 다른 데가 있다. 기독교 체험과 신앙 자체를 보다 보편성 있는 미적 경험으로 환원시키고 있으며, 또한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근원적 화해와 교감, 즉 우주발생론적 에로스(eros cosmogonique)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 작가의 화면들에서 아련한 스푸마토의 공간을 유영하는 존재의 그림자들은 곧 실재와 오버랩된 것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점액질 에테르, 운석이나 원생동물과도 같은 비정형의 대상들이 기묘한 환상 속의 창조적 순간을 서술해 주고 있다. 작가의 그림에서 제한적인 재현적 형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기적 상징과 맥락을 통해서 진리를 직관 혹은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정황은 짓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떠올리게 한다. '진리는 길이 없는 곳'이라는 그의 성찰 속에는 인간이 어떤 조직, 교리, 사제 직분, 의식 등을 통해서나, 그리고 어떠한 철학적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서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오직 진리는 '관계의 거울'을 통해서만 도달된다 했던 것이다.

박인관_이미지-시원2011-성삼위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61×91.5cm_2011

작가의 화면에서 전체와 부분, 전경과 후경의 유기적인 상호작용 내지는 조합이 자주 목격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화면들이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와 여럿, 전경과 후경, 혹은 대상과 배경 등의 유기적 구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광대무변한 전체에 대한 부분들의 상상적인 풍경이면서도, 또한 공간적으로 단일의 대상이기도 한 상대주의적 공간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들이 구성면에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이 바로 이와 연관된다. 어떤 하나의 대상을 설정하여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는 경우와 여러 대상들이 화면의 가장자리에서 잘린 채 화면의 중앙은 허공을 암시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장엄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화각이 좁은 렌즈로 부분만을 조망하고 있는 것 같은 장면으로 보인다. ●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있음'과 '없음', '카오스'와 '로고스', '처음'과 '끝'이 서로 맞물려 있는 순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고정적이면서도 가변적인, 영원하면서도 지극히 찰나적인 다층적 컨텍스트까지도 확장시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성적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작가의 화면 속에서 이러한 해석들이 끊임없이 생성될 수 있는 것은 역시 작가가 오랫동안 유연하고도 변화무쌍한 미의식을 담금질해 온 결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림은 작가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깨달음의 도구'가 아닐까. ■ 이재언

박인관_이미지2010-시원 56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75×98cm_2010

1989년 이전에는 구상작업을 중심으로 사실적인 현상을 극단적인 단면을 채집하여 클로즈업 시키는 상황시리즈를 제작해 왔었다. 이 상황 시리즈는 구체적인 현실의 단면을 통하여 사회에 발언하고자 하는 나의 주장을 그림으로 표현한 시각적인 발언으로서 시대적인 상황과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고발하거나 개선코자 했던 당시의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이었다. ● 이러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새로운 창작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이러한 욕구의 발로가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게 한 것이 제 1회 개인전을 통한 비구상작품으로 전환이었다. ● 이후 나의 작품은 원과 직선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성이 가지고 있는 건조함을 극복하고자 다소 유연하고 자유로운 서정적 추상으로 변환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에서 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서정적 추상성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로움과 기하도형이 나타내고 있는 완벽한 형의 간결성과 단조로움을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 4회 개인전을 통하여 보다 더 화면의 자유를 구사하게 된 나는 두가지의 상반된 특성을 절충하는 표현 방식으로 계속 구가하게 되었고, 이것은 보다 조형적인 질서에 귀착한다는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말한다. 회화에서의 잘 조화된 조형성이란, 말하자면,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운 요소의 짜임새를 말하며, 작품에 있어서 중용의 조화가 얼마나 잘 갖추어져있는가에 귀착될 것이다. ● 5회 개인전이후 한동안 지속된 '이미지-유년시절'의 시리즈는 나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무의식의 발로로서 동심적인 자아를 추구하였다면, 1998년 말 '버몬트 스튜디오 초대 워크숍'을 바탕으로 다시금 의식의 세상으로 현실적인 인간관계를 찾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미지-기억여행'인 것이다. 처음에는 과거로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사간이 흐르는 가운데 어느덧 현재의 기억으로 시간적인 이동의 여행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새로운 기법에 대한 연구와 표현의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재료적인 고민에 의해 알루미늄판위에 스크래치를 한 다음 오일칼라로 페인팅을 하는 알루미늄그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그림은 현대적인 감각과 잘 맞아 떨어지는 듯 보였으나 이 그림이 갖고 있는 지나친 차가운 느낌은 당시 나의 미적 감수성으로는 극복 할 수가 없었다.

박인관_이미지- 시원2011-빛 29_알루미늄판에 유채, 혼합재료_72.5×91cm_2011

이러한 감수성이 극복될 때 까지 잠시 보류하고, 2001년 10회 개인전을 계기로 또다시 연구를 하여 찾아낸 것은 화면의 이분법을 통한 인물과 기억이 어우러지는 이미지의 표현이었다. (2001년 미국 갤러리 360의 초대전을 통하여 화랑의 주문사항이 인물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었다) 이것은 한 면에는 인물을 표현하면서 단순하고 개성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 특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드로잉을 하였고 다른 한 면에는 그 인물과 연관된 기억들을 수집하거나 전혀 엉뚱한 내용을 대비시킴으로써 내용적으로 다른 두 이야기를 연결시켜 상상하게 하는 결합미술을 2009년까지 제작하였다. ● 2002년 이후 2005년까지 이러한 표현방법에서 귀착된 이분법적인 작품을 지속하다가 2006년에 들어서면서 과감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것은 2000년에 중단된 알루미늄화의 새로운 표현방법에 의한 재 시도였다. 당시 알루미늄화에서 느낄 수 있는 차가움의 느낌을 기법적으로 극복하고 보다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표현의 완급에 의한 부드러움과 예리함, 그리고 차가움을 아우르는 자유로운 혼용이었다. 그리고 보다 많아진 공간적 표현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었다. ● 2007년 13회 개인전(인사아트센타 2층) 작품은 그동안 10여년간 기억을 통해 일기를 쓰듯이 제작해온 그간의 '이미지-기억여행'을 마무리 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시공간을 마치 유영(遊泳)하며 미리 경험하듯이 단순한 평면적 형태로 화면을 구성해 나가며 표현하였다. 때로는 현실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기도 하고 간략화 하여 공간속에 포치함으로써 화면의 이중적 분할로 오는 비례의 조형적인 배치와 재료와 기법적인 차이를 대비시킴으로써 환상이나 기억에 의한 상상의 이미지가 병치되고 무의식의 세계가 중첩되고 충돌하는 시공간이 다른 두화면의 세계를 연결하고 함께 공존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였다.

박인관_이미지-시원2011-생성2_알루미늄판에 유채, 혼합재료_지름 33cm_2011

이번 전시작품 제작에 따른 나의 소고 ● 2008년 김재선 갤러리 초대전 이후부터 나의 그림은 색채에서부터 현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신앙생활에 의한 정서적 안정과 변화에 따른 밝은 화면의 구성이었다. 빛에 의한 내면의 희열과 감사함에서 표출된 영적 구원의 해방감이 손끝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투영되었고 지금까지 희미하게만 보였던 진리의 깨달음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 까닭이기도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예술세계에서 풀 수 없었던 미학적인 이데아가 믿음에 근거한 영혼의 구원으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11장1절)라는 말씀을 통하여 더욱 명확해졌다. 그동안 내안에 갇혀있던 빛의 감성이 무한한 공간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조형적인 표현의 방법(공간포치, 표현재료, 색상, 명도, 채도 등)과 의지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 특히 창세기의 말씀이 근간이 되어 무한한 창조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그 말씀은 시원(始原)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미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꽉 붙들고 괴롭혔던 온갖 세상적인 욕구와 죄의 속성들이 여지없이 다 허물어져 버리고,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8장1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8장32절), 이 말씀으로 내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영적 자유함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 이제 앞으로의 작업방향은 이러한 믿음과 진리를 바탕으로 조형의 요소들을 빛 가운데 나타내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동안 종교와 예술이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으나 이야기 중심의 서술적인 주제만을 다뤄 왔던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볼 때, 내용뿐만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본질을 주제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일정부분 그러한 변화가 구체화되었음을 고백한다. ■ 박인관

Vol.20120215l | 박인관展 / PARKINKWAN / 朴仁寬 / painting

2025/01/01-03/30